5년 전쯤, 청년부 소속 한 신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상담을 신청했다. 이 청년은 전도를 목적으로 지역 청년들과 함께 주말 기도 및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새로 모임에 나온 세 명의 청년들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성경 말씀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기는 한데, 주장하는 내용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듣고보니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세 사람은 침례 요한을 실패한 선지자일 뿐 아니라 아예 배도자로 단정했다. 이 대목에서 세 사람이 신천지 청년들임을 확신하고 상담을 신청한 모임 인도자에게 대처 방법을 일러주었다. 성경을 근거로 신천지 교리가 이단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성경공부 모임 때 이 부분을 강조해서 가르치라고 지도해 주었다.
그 후 두 주 만에 세 명의 청년들은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들었다. 신천지를 주의하자는 방향으로 모임의 방향을 이끌어 가니, 그들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고 한다. 모임을 말씀으로 공략할 틈이 보이지 않으니 그들 입장에서의 '전도'를 포기한 모양이었다.
당시는 한창 신천지가 교회들의 내부 분열을 획책하고 신자들을 미혹하는 데 열심을 내던 시기였다. 이단의 공격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지만, 진리의 말씀이 바로 서 있다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이 때의 경험을 통해 몸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토록 내적 모순이 가득한 가르침에 왜 많은 청년들이 미혹되고 있는지 의아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8월 초부터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구해줘>는 이단이 사람의 마음을 옭아매는 방법을 세부적인 부분까지 치밀하게 분석해서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교훈적 가치를 가진 내용들도 다수 엿보인다. <구해줘>는 이단들의 강점이 말씀의 엄정한 논리에 있지 않고, 사람 마음의 약한 부분을 교묘하게 얽어매는 위선적 행태와 기복적 종교성을 자극하는 감정적 위로에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구해줘>라는 제목은 본의 아니게 이단에 얽어매여 삶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인 한 여학생의 구조 요청에서 나왔다. |
◈이단과 카리스마: 구선원, 한국형 이단의 종합 완성판
드라마 <구해줘>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개인적 트라우마와 심적 갈등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극중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 '구선원'은 이런 난관들을 극한 비극으로 몰고 가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삶의 애환'과 '사이비 종교'가 얽히고 있다는 점에서 플롯 설정상 클리셰적 면모가 엿보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약점을 간단히 무마할 만한 치밀한 이단 묘사를 선보이고 있다.
극중 사이비 종교 구선원의 영부(靈父, 영혼의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교주를 가리킴) 백정기(조성하 분)는 기독교 계열의 이단 교주를 대표하는 '페르소나' 같은 캐릭터다. 백정기라는 캐릭터는 일견하기에 세 가지 방면으로 이단 교주들, 혹은 논란 대상이 된 기독교계 사역자들의 특성을 집약해 표현하고 있다.
백정기라는 인물이 반영하고 있는 첫 번째 이단 교주는 영생교의 조희성이다. 영생교는 신자들의 노동력 갈취, 감금 폭행, 배교자 처단(실제 살해) 등의 악행으로, 한국의 대표적 이단 사례로 지목되어 왔다. <구해줘>의 교주 백정기(극중 66세)는 어린 나이의 여고생 임상미(서예지 분, 극중 17세)를 소유하기 위해 불행에 빠진 그녀의 가족을 심리적으로 옭아매는 흉계를 꾸미고, 결국 영생교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신변마저 강압적으로 구속하는 방책을 취한다.
상미의 가족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나 처지상 심각한 약점을 가진 이들에게서 노동력과 금품을 갈취하는 모습은 영생교의 행태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종교적 권위를 이용하여 어린 나이의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한다는 측면에서는 JMS의 수뇌 정명석의 모습도 연상된다.
둘째는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수뇌이자 세모그룹 회장이었던 유병언이다. 극중 백정기는 사뭇 폐쇄적인 지방 소도시라는 입지를 활용해 지역 유지 및 공무원들과 긴밀한 친분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종교집단을 사업적 방식으로 운영해 간다. 위선적 속내는 철저히 감춘 채, 품격 있는 종교지도자의 가면을 쓰고 각종 이권을 획득하는 백정기와 추종자들의 모습은 종교 지도자이면서 기업가로 활약했던 유병언이나 통일교 지도자 문선명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구해줘>의 최고 악역이자 이단 교주 백정기(조성하 분). 그의 외모와 인상은 구원파 수뇌였던 유병언을 모티프 삼아 연출된 것으로 보인다. |
셋째는 교계에서 논란이 되었던 일부 오순절∙성결교 계열 신유사역자들이다. <구해줘>의 구선원 신유집회 장면은 2000년대 초반 큰 논란을 일으켰던 할렐루야기도원 김계화 원장의 '성령수술'을 패러디한 것이다. 암환자의 환부에 손을 대니 피가 흘러나오고, 암덩어리가 교주의 손에 잡혀 나오는 장면은 김계화 원장의 집회 행태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에 연출된 집회 장면에서 백정기에게 투사된 흰 정장 일색의 모습은 미국의 유명 오순절주의 신유사역자 베니 힌 목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베니 힌 목사의 집회장면은 미국에서도 <기적 만들기(Leap of Faith, 1992)>와 같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패러디된 바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구해줘>의 사이비 교주 백정기는 흘러 넘치는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사회의 주류 인사들에게는 아부를 일삼는 반면,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서는 갈취와 사리사욕 충족을 자행하는 전형적 소인배이자 사기꾼이다. 한국의 대표적 기독교 계열 이단 교주들의 모습이 이 한 배역에 모두 집약되어 있다.
▲<구해줘>의 사이비 이단 구선원의 신유집회 장면. 한국과 미국에서 논란이 됐던 신유사역자들의 모습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
사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백정기가 집회를 열고 사이비 단체를 운영해 가는 모습을 보면 서글픈 실소를 자아내는, 이른바 '웃픈' 장면이 여럿 목격된다. 일단 일반의 눈에 비친 기독교 계열 이단들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이단이라 해서 오직 기독교인들만 관심어린 시선으로 지켜볼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할 듯하다.
<구해줘>는 이단들이 사람을 미혹하는 전략을 극히 현실적으로 조명해 주고 있다. 기독교인들보다 비기독교인들이 오히려 기독교 계열 이단들의 모습과 정체를 더 명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처럼 <구해줘>에서는 한 사이비 종교 지도자를 향한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냉담한 시선이 과연 이단에게만 향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단의 모습을 빌어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기독교계 전체를 풍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떨치기 어려운 이유는 백정기를 비롯해 드라마 속 구선원 교인들이 보이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이 정통 기독교계 내부의 불의한 모습들과 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물욕이 없는 척 점잔을 빼면서 뒤로는 헌금을 유용하는 지도자, 믿음의 모습을 가장한 체 여신도들을 성적으로 탐하는 지도자, 그런 지도자 밑에서 호가호위하는 중간급 사역자, 불의한 행각을 눈으로 보면서도 혹시 교리에 저촉될까 두려워 목소리 내기를 포기하는 중간급 사역자들과 평신도들의 모습.
이는 비단 이단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정통 기독교계 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들이다. <구해줘>가 그려내고 있는 이단의 비열한 행태들로부터 과연 현재의 한국교회가 자유롭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구해줘>의 비판적 시각은 단지 이단만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계 전체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점은, 사이비 교주 백정기가 부르는 신의 이름이 "새 하늘님"이라는 것이다. 신천지(新天地)가 사이비 이단이라는 사실이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되었다는 것을 이 명칭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해줘>의 교주인 영부 백정기와 그의 추종자인 사도 강은실(박지영 분). 근엄한 종교인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노략질하는 이리"(마 7:15)들이다. |
◈이단과 부흥: 동전의 양면이자 빛과 그림자
기실 정통 교회의 부흥과 이단의 발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물론 양자의 본질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쪽은 영원한 구원을 향하고, 한쪽은 영원한 멸망을 향한다. 양자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은 그 발생 양상을 말하는 것이다. 정통 기독교가 부흥을 경험하는 곳에는 반드시 이단이 발생한다. 이는 성경의 가라지의 비유(마 13:24 이하)에서도 확인되는 불변의 진리다. 알곡이 뿌려지는 곳에는 반드시 가라지도 덧뿌려진다.
초대교회, 즉 주의 열두 사도들이 직접 목회를 담당했던 이상적 교회조차 이단의 발생이라는 암영(暗影)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당시 기독교가 직면하고 있던 가장 위험한 이단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할례를 중시하며 유대교 율법으로의 회귀를 추구하던 이단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플라톤주의 영-육 이원론(body-soul dualism)에 깊게 영향 받은 영지주의(Gnosticism) 이단이었다.
신약의 서신서에는 이 두 가지 이단들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가 수없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만큼 진리의 가르침을 버리고 미혹되는 교인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도 시대 이후의 기독교는 오랜 기간 가톨릭 교회의 왜곡된 성서해석을 추종하다,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비로소 초대교회가 추구하던 성서해석과 실천으로 방향을 돌리게 됐다. 그리고 18세기 유럽의 경건주의(Pietism)와 영국 및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제1차 대각성운동(Great Awakening, 1735-1755)을 경유하는 여러 차례의 갱신 노력을 통해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고 하는, 원숙한 수준의 기독교 정통주의가 확립됐다.
19세기 초 찰스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 1792-1875) 등의 주도로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제2차 대각성운동(1790-1840)은 이 원숙한 정통주의가 부흥으로 빛을 발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역사상 단기적으로 가장 많은 수의 이단이 발생한 시기 중 하나가 바로 이 때였다. 몰몬교(Mormonism), 제칠일안식교(Seventh-day Adventist Church)의 전신인 밀러주의(Millerism)가 처음 발생한 시기도 바로 제2차 대각성운동이 막바지 국면에 이른 1820-40년대였다.
▲현대 부흥주의(revivalism)의 아버지로 알려진 찰스 피니(왼쪽)와 뉴욕 주 서부의 '불탄 구역(오른쪽, 붉은 색)'. 부흥의 불길이 거셌던 만큼이나 이단의 발흥도 활발했던 지역이다. |
몰몬교와 밀러주의 외에도 단적인 사례로 뉴욕 주(State) 서부 '불탄 구역(Burned-over district)'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용어는 찰스 피니가 그의 자서전에서 언급한 것으로, 자신의 부흥집회 대상지였던 뉴욕 주 서부 지구를 가리킨다. 피니는 이 지역에 이미 부흥의 불길이 완전하게 타올라 더 이상 연소시킬 연료(회심시킬 영혼)가 남아있지 않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했다. 그만큼 이 지역에서 부흥의 불길이 뜨겁게 타올랐다는 뜻이다.
문제는 부흥 이후에 있었다. 부흥집회는 한 지역 기준으로 보면 단기적 행사였기 때문에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보다 장성한 수준의 양육과 훈련이 필요했는데, 이 필요를 지역 교회들이 충족시키지 못한 탓에 한껏 흥기한 부흥의 틈새로 수많은 이단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주로 가정에서 자생해서 소규모 그룹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교회도 유사한 사례를 자주 경험했다. 급격한 부흥이 일어나면 잠시 후 틈새를 노리는 이단들이 속속 등장했다. 단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고, 인맥에 대한 의존도가 미국보다 높은 탓에 이단의 규모가 한국 내 전체 기독교 인구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라는 특징이 있다.
1907년의 평양대부흥을 기점으로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의 고난 속에서 큰 양적 성장을 일궈냈다. 교회의 부흥이 어느 정도 정점에 이르자 즉시 이단이 발생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1927년 원산(당시 함경남도)을 중심으로 시작된 '원산파'였다.
▲한국 신비주의계 이단 계파도. 원산파를 기원으로 해서 김백문을 통해 여러 계파로 분화되었다. |
원산파는 예수가 자신에게 친림(親臨)했다고 주장한 감리교 신자 유명화로부터 시작됐고, 백남주, 이용도 등의 유력 목회자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한국 장로교와 감리교는 즉시 원산파를 이단으로 판정했다. 그러자 주요 인물들이 원산파라는 울타리를 포기하고 다른 이름으로 이단을 파생시키기 시작했다. 특히 원산파 주요인물이었던 백남주는 김백문이라는 사람을 제자로 삼았는데, 이 김백문이 바로 원산파의 이단 신비주의 신앙을 문선명(통일교)과 박태선(전도관, 천부교)에게 전수한 사람이다.
김백문 이후로 한국 이단의 주요 계보 가운데는 이른바 성적 타락을 '피가름'으로 씻어내는 독특한 교리가 하나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었다. <구해줘>에서 나이 60이 넘은 영부 백정기가 10대에 불과한 고등학생 임상미를 영모(靈母, 영혼의 어머니, 즉 교주의 반려라는 뜻)로 삼으려는 모습은 바로 김백문이 체계화한 원산파의 신비주의 교리에서 그 모티프를 찾을 수 있다.
원산파가 1900년대 초반의 한국교회 부흥기를 틈타 발흥하였다면, 1960-1970년대 시작된 영생교 및 구원파(권신찬, 유병언) 계열 이단들은 분단 이후 이승만 정권 하의 한국교회 부흥기를 기회 삼아 발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교회사의 흐름은 이단의 발흥이 정통 기독교가 왕성하게 부흥하는 데 따른 그림자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게 해 준다. 교회가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한 뒤, 거기에 세심한 질적 성장이 따르지 못할 경우, 부흥의 틈새 곳곳으로 부패한 이단이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정통 기독교회의 부흥과 이단의 발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현상들이다. |
그러므로 이단의 발흥이라는 현상은 한편으로는 교회 부흥의 표지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부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교회의 내적 무능력과 불의의 표지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일지 모르지만, 건강하지 못한 교회의 부조리한 모습은 이단의 불의한 행태와 대단히 흡사하다. 바로 이 점이 드라마 <구해줘>가 기독교인들에게 선사하는 불편함이다.
<구해줘>는 기독교 계열 이단의 악행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실질적으로 정통 기독교 내부의 장성하지 못한, 불의한, 회개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단과 정통: 거짓된 공동체와 참된 공동체의 구별
비록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기는 하나, 사실 이단들의 악행 가운데는 정통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파생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력 착취와 금품 갈취, 강제 합숙, 그리고 맹목적 순종이다.
노동력 착취와 금품갈취는 원래 기독교적 헌신(Christian commitment)이라는 가르침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가운데 인생과 물질을 모두 헌신하는 것은 아름다운 신앙의 실천이다. 이는 곧 초대교회 사도들과 전도자들의 삶이었다.
이 아름다운 신앙의 실천 방식을 거짓과 사리사욕으로 왜곡해서 망쳐버린 것이 이단들의 소행이고, 바로 그 이단의 소행이 <구해줘>에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로써 헌신의 정신은 왜곡된 모습으로 비춰진다. 이단들을 비판하는 폭로 프로그램이나 <구해줘> 같은 드라마를 접한 대중은 그들에게 익숙한 자본주의적 사고를 기반으로 기독교의 헌신 개념을 비판하게 된다.
▲<구해줘>의 이단 종교 구선원의 신유집회 장면. 헌신과 순종으로 대표되는 신앙의 열심은 원래 기독교 신앙 고유의 정신이나, 이단들은 수뇌부의 이익을 위해 이 정신을 왜곡해서 활용한다. |
강제 합숙과 신변 억압이라는 행태도 원래는 공동체 생활(community life)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유래되었다.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신약학 및 초대교회 역사를 강의하고 있는 데니스 맥도널드(Dennis Ronald Macdonald) 교수는 초대교회 교인들의 삶이 공동체 생활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들에게 공동체 생활이란 단순한 모임 이상의 것이었다. 기독교인의 공동체는 그 속에 속한 신자 개개인이 믿음을 통해 변화를 체험하는 강력한 기구이자 구원의 완성을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기실 완벽하게 자발적이고 헌신적이어야 할 공동체 생활이라는 개념을 폐쇄적 부조리와 이탈자 방지 및 처단을 위해 악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내 기독교계 이단들의 현실이다. <구해줘>는 이 현실을 특별히 이단 교주들의 성적착취 행태와 연관지어 그려내고 있다. 한국형 이단들의 고유한 특징, 즉 원산파와 김백문으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는 특유의 이단적 사상이 생성하는 폐해를 극적인 방식으로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분개와 답답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주에 대한 맹목적 순종 역시, 원래는 목회자가 가르친 진리에 대한 순종이라는 개념이 왜곡돼 정착된 것이다. 이 순종이라는 의무 안에는 대단한 긴장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교회 지도자에 대한 순종은 그 가르침과 권면이 온전히 복음의 진리를 대변하고 있을 때만 정당화된다. 진리가 아닌 것, 특히 이단적 가르침을 전하는 이에 대한 순종은 맹목적 순종이다.
<구해줘>에도 이 맹목적 순종이라는 주제가 숱하게 반복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임상미의 아버지 임주호(정해균 분)가 교주 백정기에게 세뇌되어 젊은 딸을 영모로 바치는 데 앞장서는 장면이다. 이 대목에서 시청자 대부분,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분노어린 반응을 보인다. 극화된 콘텐츠가 가진 장점, 즉 감정이입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구해줘>가 일반적인 이단 폭로 시사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상당한 수준의 감정이입을 무기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단의 병폐를 한 발짝 떨어진 방관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과, 직접 피해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반응을 일으킨다.
▲첫 만남에서부터 기도를 핑계로 은근하게 상미의 다리를 만지며 성추행하는 백정기. 한국 기독교 계열 이단들 고유의 특징인 구조적 성적 착취의 일면을 보여준다. |
<구해줘>의 세밀한 이단 묘사는 기독교계 이단의 정체와 본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단들이 악을 저지르는 방식이 정통 기독교의 가르침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점 때문에, <구해줘>가 감행하는 폭로는 결국 기독교 자체에 대한 일반의 거부감과 조롱으로 전환될 소지가 크다.
기독교의 정신을 깊이 알지 못하는 자들, 그리고 안다 하더라도 직접 체험하고 실천하지 못한 이들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발로로서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순종하는 삶의 모습을 세뇌에 의한 어리석음으로 단정할 가능성이 높다. <구해줘>는 그런 측면에서 강력한 촉매 역할을 담당한다.
결국 정통 복음주의 기독교계가 이단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이단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고스란히 그리스도의 교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앞서 지적했듯 이단의 발흥은 기독교 부흥이 일어나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는 인력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통 기독교계 입장에서는 이단과 정통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참된 신앙의 실천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만이 근본적인 대처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 내부의 온갖 불의와 비리 행태가 언론을 통해 만방에 공개된 상태에서, 과연 정통 교회들이 스스로를 이단과 현저하게 차별화할 힘을 갖추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