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소리치고 싶을 때: 욥기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 송동민 역 | 이레서원 | 128쪽
고난에 대한 해석에 있어, 하나님은 악을 통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미학적 신정론과 하나님은 환란을 통해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한다는 교육적 신정론이 있다. 그리고 고난에 대한 책임이 죄를 지은 인간에게 있다는 주장과 하나님에게는 피조물이 항변할 수 없다는 논리를 지닌,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신정론이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오래된 방법은 더 이상 고난을 풀어내는 충분한 설명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 같다.
신정론이라는 말은 약 삼백년 전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고안해 낸 용어로, 하나님의 정당성에 대한 변호이다.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여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원치 않는 고난의 시절을 지나거나 악인들이 득세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변호가 필요하다. 아우슈비츠와 킬링필드, 그리고 1980년 광주와 세월호와 같은 사건들도 하나님의 설명이 필요하다. 하나님께는 이런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일에 대한 변호가 필요하고, 그것을 담당하고 나선 것이 신정론이다.
어디 하나님의 변호가 필요한 영역이 이뿐이겠는가?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이나 아직도 우리로 하여금 소름끼치게 하는 수많은 비극들과 전쟁들은 도대체 신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항변하게 만든다. 더구나 내전이나 테러가 일어나는 지역에서 겁에 질린 어린아이, 죽어가는 생명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하나님은 저들을 보호하지 않고 무엇 하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또한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과 억울함 앞에 우리는 수많은 질문과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악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다. 죄와 악의 조성자는 아니지만, 그것을 허용하시고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이해로는 다 알 수 없는 신비이고, 믿음만이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이다.
이 책은 욥기를 통해 욥의 신앙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께서 고난이라는 풀무불을 통해 하나님을 듣는 것을 넘어 보는 자로 성숙시켜 주신다. 우리는 피하고 싶은 고난인데 하나님은 피하지 못하게 하시고, 더 큰 계획 속에서 자신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신다.
어찌 이것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욥기는 우리 인생에서 심각한 질문이고 큰 주제인 고난과 싸운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신비를 가지고 친구들과 논쟁하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답을 듣는다. 욥은 야곱이 밤새 하나님과 씨름하듯 그렇게 하나님과 힘을 겨루고,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고 의심하고 항변하듯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다 바쳐서 지친 상태로 눈물을 쏟고 답을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고통의 과정은 매우 지루하고 길고 지친다. 욥기 3-41장이 더디게 진행되듯, 고난은 우리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본 책은 지혜서와 해석학 전공자인 저자가 고난의 용광로를 지나가는 욥을 우리의 실존과 연결시킨다. 예수님의 고난과 욥의 고난도 비교하며, 예수님께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미덕을 보이며 숭고한 내면으로 승화되었듯, 욥도 고난을 지나며 주님처럼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꽃으로 변화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고발하는 자와 감옥 같은 환경과 고립되는 자아 속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알 수 있다.
성경에서 보듯, 욥의 세 친구들은 마치 고발하는 자 같다. 욥을 더 죄인으로 만들고 절망하게 만들고 소망의 뿌리마저 뽑으려 한다. 그들은 신명기적 역사관에 근거해,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벌을 준다고 한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이 또한 성경적이며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를 절대적 기준과 명제로 여기며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악인이 흥하고 의인이 큰 고난에 처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신명기적 관점만 고수하다 보니, 의인임에도 고난 받는 것만으로 욥은 죄인이 되고 고난은 당연한 형벌이 된다.
이것이 일반적 현상인데, 고난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과 인간의 고통과 희망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신학화하는 방법이다. 세 친구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했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무시간적이고 무상황적으로 적용한다. 물론 그들의 주장을 다 없앨 수는 없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일부는 죄에 대한 벌로서 인과응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모든 고난이 형벌은 아니다. 죄로 인한 고난도 있고 성숙과 연단을 위한 고난도 있다.
욥이 항변하고 반발하는 것은 부재한 것 같은 하나님도 아니고 불의로만 보이는 하나님의 정의도 아니며, 바로 '죄-고난'이라는 프레임으로 뒤집어씌운, 사랑이 증발된 독단적 교리이다. 욥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 앞에 하나님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하나님의 성품이 왜곡되며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항변이 아닐까? 또한 그 하나님 앞에 현존하는 인간의 고통과 믿음이 결부하여 소리치는 것이 아닐까?
얇은 책이지만 욥기 읽기를 잘 도와준다. 존재와 인생과 고난과 신에 대한 주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무엇으로 풀어야 하는지 핵심을 짚어준다. 욥기의 문학성과 시적 언어가 신앙으로 승화되는 특징도 소개한다. 영혼의 어둠을 지날 때 무엇이 그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도와주며 해답이 되는지 보여준다. 욥이 하나님에 대해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실존적으로 체험하는 지혜와 변화의 과정으로 독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또한 필자에게 한 가지 감동이 되었던 것은 욥의 고난을 제자도와 연결시키는 부분이었다. 얼핏 보면 고난과 제자도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고, 더구나 현대처럼 복음이 피상적이고 기복적이고 자기번영과 성취적으로 왜곡된 시대에서는 더 외면하게 만드는 주제이다. 그러나 저자는 고난을 제자도에 있어서 필수이고, 사람마다 강도와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모든 신자가 거쳐야 하는 십자가요 자기부인으로 생각한다.
실제 제자가 되기로 한 사람에게는 모든 고통과 슬픔이 면제되지 않고 반드시 고난이 있다. 그러나 제자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사람이다. 고난 자체가 축복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큰 그림과 맥락 속에서 고난을 이해하고 고난이 선이 되도록 창조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다. 고난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이 인생을 변화시키는 진리를 보게 된다. 그게 욥이고 제자이다.
끝으로 기독교 신앙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운명이라 체념하는 나약한 사유가 아니다. 오히려 욥처럼 질문하고 때로는 항변하고 토론하고 새로워지고 영광의 찬송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모순된 것은 고치고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모든 부조리하고 어처구니 없는 고난을 죄의 결과로 용인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나약한 사유가 아니라 제자로서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또한 신앙은 우리를 더욱 책임 있는 존재가 되게 하니, 인간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진리를 이루게 한다. 비록 악이 창궐할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니, 우리를 지키시는 그분을 믿고 신뢰하며 세 친구와는 다르게 타인의 아픔까지 참여하는 것이다. 성경의 뜻과 땅의 현실은 언제나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그 끝없는 변주 가운데 가짜 소망을 버리고 참 소망이신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다.
욥의 인내는 믿음이고 신실함이며 이 과정 가운데 자신이 성장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넘어 보게 된다. 제자에게도 찾아오는 그 불가피한 고난을 하나님께 질문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의 세계관으로 이해한다. 물이 바다를 덮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 때까지 그 진리의 바다에 들어간다. 그리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게 아니라 하나님이 계셨고 인간의 악 때문에 생긴 고난이지만 하나님 덕분에 이겼노라 송축한다.
우리의 존재의 변화와 인생을 새롭게 보도록 도와주는 욥기, 많이 읽히지도 않고 외면하며 설교도 거의 하지 않고 지루한 책으로 대표되는 욥기, 그러나 인생에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소중한 교훈과 도움을 주는 책이다. 우리의 영혼과 일상에 누구보다 하나님이 관심이 많으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고립되어 소리칠 때도 하나님만은 함께하는 분임을 보게 된다.
성경을 향하게 하고 숲의 목적지를 가도록 인도하는 작지만 큰 뜻을 담은 이 책, 독자들에게 인생의 기쁨을 도와주리라 여겨진다. 앞으로 출판사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변화시킨다는 확신 아래 '일상을 변화시키는 말씀'이라는 주제로 펼쳐질텐데, 앞으로 어떤 책이 어떤 주제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성경을 초대할지 기대가 된다. 성경을 사랑하여 읽기 원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 믿어진다.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열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