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백석대 채영삼 교수
(Photo : ) ▲백석대 채영삼 교수

구원의 탈락'이라는 표현 칭의론 논쟁에서,용어나 개념의 사용이 혼란스럽다.  '구원의 탈락'이라는 표현 자체가 문제적이다.

 

'탈락'은 '합격'을 전제한 것이다. 일단 '합격' 했는데, 나중에 '탈락'했다는 것이다. 그래야 일관되다.

그래서 구원 받은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탈락했다'는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차원의 개념들을 한 차원에 놓는 실수이다.

'합격'한 것이 아니라, 합격한 줄로 '착각'한 것이기 때문에,'탈락'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알았다는' 것은 주관적 확신의 영역이고, '탈락했다'는 것은 사실이  바뀌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의 탈락'이라 할 때, '합격'을 결정한 것은 하나님인데, '탈락'을 결정한 것은 사람의 행함이고, 하나님은 나중에 '합격'을 번복하여  그의 구원을 '취소'하셔야 된다. 성경은 이를 지지하는가?

주님의 가르침은 일관되다. 주님은,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리라'고 하셨다. 구원의 시작과 끝이  생명적 관계에 놓여 있다. 포도나무가 올리브를 맺을 수 없고,가시나무가 포도를 맺을 수 없다. 

(마 7:20; 약 3:12)

칭의와 구원의 문제에서, 차원이 다른 개념들을 한 차원에서 쓸 수 없다. 


처음부터 칭의 받지 못했음이 그의 불순종과 열매 없음으로 드러나고 증명된 것이라고 해야, 성경적 증거들에 일관된 것이다.

반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칭의 받았다면 동시에 성화된 것이고, 또한 성화되어 간다. 비둘기로 태어났는데, 비둘기가 되지 않고 무엇이 되랴. 

장미 씨앗이 땅에 떨어지듯,처음의 칭의는, 장차 오는 칭의의 선취적인 성취이다. 

다른 것이 아니다.

'첫 열매'가 나왔다면, 그 열매가 나온 '나무'는 반드시 그 '열매들'을 맺을 것이다. 그 나무의 생명이 실패할 리가 없다는 것이 복음이다. 


그 '생명'은 죄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참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이고, 진실로 믿었다면, 그와 연합한 것이다. 진실로  연합했다면,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에게 주어지고, 그의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의와 거룩의 완성은그가 다시 오실 때에, 그와 함께 나타난다(요일 3:1-3).

무엇보다, 죄와 죽음과 허무를 이기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 무엇으로도 분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실패하는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롬 8:28-39)

그런 것은 없고, 그런 주장이라면 복음, '기쁜 소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