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 질까, 뉘 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찬송가 339장).'
십자가(十字架)는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동시에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의식에서 십자가 성호를 긋는 것은 신앙고백, 기도, 봉헌 축복 등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기원 전 1세기 말, 로마에서 식민지 주민들에 대한 처형 방법으로 공식 채택됐습니다. 처음에는 노예들을 나무에 묶어놓고 고통을 주는 가혹한 체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기원 후 1세기부터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자들에 대한 처형으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실제로 70년 티투스 장군은 유대 독립전쟁을 진압하면서, 포로들을 매일 500명씩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따르면, 더 이상 십자가를 세울만한 공간과 나무 십자가를 구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형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로마 제국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형으로 죽인 이유도, 예수를 로마 제국에 반대하는 위협 세력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십자가는 로마 제국에 항거하거나 악랄하고 악질적인 사형수에게 내려지던 형벌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와 악한 죄인들이 진 십자가는 동일한 나무의 재질이더라도 그 성격은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이나 관리 소홀 혹은 육신에 병마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쉽게 '십자가'를 언급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서 겪게 되는 고난이나 아픔을 '십자가'라 부르기도 합니다. 집 안에 말 안 듣는 자식, 가정을 소홀히 하는 남편, 철없는 아내의 행동, 그리고 사업이 잘 안 될 때나 원하는 바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 모두를 십자가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이나 힘든 일들을 나 아닌 상대방을 위해 스스로 기꺼이 짊어질 때 겪게 되는 그 아픔과 고통이야말로, 예수님의 십자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완성작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자신이 몸담은 당에서 직책을 맡으면 '당의 발전과 정권 타도를 위해 무거운 십자가를 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교나 기관 모임에서 회장으로 당선되신 분, 친목회에 총무나 회장을 맡게 된 분들도, '무거운 십자가를 진다'고 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십자가를 함부로 사용하는 성도들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함부로 십자가란 이름을 갖다 붙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요?
십자가는 그야말로 흉악한 범죄자들이 짊어지고 가는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당시 흉악범들이 지고 가는 십자가와 비교해선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인간의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참혹한 것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십자가는 인간이 표현할 수 없는, 깊고 깊은 내면 안에서 울러 퍼지는 고요한 사랑의 몸부림이 아닐까요.
우리는 십자가를 내 편의에 의해 사용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의 힘든 일들을, 그리고 찾아온 불행을 십자가로 부르면서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구나 십자가는 아무나 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주님 지신 십자가는 아무나 질 수 없습니다.
그만큼 십자가의 의미는 우리 인간으로서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최고의 비극이면서 소망의 불빛입니다. 십자가는 베어 놓은 나무에 불과하지만 주님을 만난 십자가, 나무가 주는 교훈은 힘들고 지친 우리의 삶에 위로와 참 평안을 선물해 줍니다. 그 십자가는 분명한 주님의 복음이며, 구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짊어지신 십자가의 참 뜻을 헤아려, 주님의 축복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보다 더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귀와 마음이 그 분께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십자가와 상대방의 십자가를 비교하며 샘내고 질투하느라 지친 성도들에게, 선물하고 싶으신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각 교회 안에서 문제가 되는 모든 현안들이 속히 해결되지 않을까요? 주님이 짊어지신 십자가를 제대로 인식할 수만 있다면, 교회 안에는 참 평안의 천국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많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참 평안을 주고, 결국 인간의 죄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했던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나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해드린 것 같아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짐을 느껴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마음 속 깊은 내면에서 못 박고, 매일 매일을 순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배우고 깨달으며, 흉내라도 내는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자아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결코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일부 신앙인들 중에는 십자가가 주는 참 교훈을 깨닫지 못한 채 십자가를 우상화하기도 하여 실로 안타깝습니다. 십자가 처형 당시 최단기간에 구원을 맛본 강도처럼, 십자가의 의미는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