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지사정
한민족복지재단 소속 분당 샘물교회 선교팀 23명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지난 7월 19일 납치되었다. 협상이 마무리 되지 않아 샘물교회 선교팀은 아직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두려움과 공포, 탄식과 눈물로 채워지던 당사자와 가족들의 치열한 시간들을 들여다 보며 지난 며칠간 함께 가슴을 찢었다.

불행하게도 인질이 된 선교팀 중 2명이 살해되었고 자매 2명도 병에 들어 생사의 기로에 있다는 최악의 소식만이 들려 온다. 이제 탈레반 납치범들은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한 명씩 죽이겠다는 최후 통첩을 해왔지만 뚜렸한 협상의 진전이나 실마리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모든 협상과정에 관여하시고 섭리하셔서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보여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비난과 조롱에 무색해진 아름다운 발걸음들
그런데 정작 믿기 어려운 일은 이 복되고 아름다운 발걸음의 주인공들인 선교팀에게 쏟아지는 비수같은 비난들이다. 한국의 일반사회에서, 언론에서, 교계에서, 소위 선교전문가들이란 사람들에 의해 한결같이 퍼부어지는 비난과 성급한 판단에 가족들은 너무 아프다. 납치된 현실보다 이 날 세운 비난과 조롱이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

놀랍게도 비난의 화살촉은 납치범들이 아닌 젊은 선교팀을 향하고 있다. 어려운 지역에서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고 자신들이 받은 재능으로 어려운 자들을 도우려는 젊은이들을 향한, 이해할 수 없는 비난의 홍수는 정상이 아니다. 온전한 이성적 사고로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시대의 한국사회와 교계에는 이런 악다구니의 모습들만 있었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우선 대표적인 비난과 정죄의 목소리들을 보자. 선교를 모르는 비기독교인들의 비난은 주로 선교 자체에 대한 것과 위험지역에 굳이 왜 갔나 하는 근본적인 시각과 기독교 전체에 대한 조롱들이다. 한국에도 불쌍한 사람들 많은데 왜 거기까지 갔냐, 위험하여 가지 말라 했는데도 갔으니 모든 접촉과 해결에 드는 정부 비용을 샘물교회와 부모들에게 청구하라, 잘난 것들 지들이 좋아서 갔으니 죽든 살든 놔 둬라, 정부의 정책에 반한 자들이니 살아오더라도 숨죽이고 와라,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샘물교회는 악마의 땅 아프간에서 순교자 많이 냈다고 성전을 넓히고 땅 투기 할 것이다, 그렇게 위험지역이라고 가지 말라 했는데 가서 이게 무슨 꼴인가, 전지전능한 야훼께 빌어서 돌아오라, 무대뽀 기독교인들에게 더 이상 할 말 없다, ‘내가 대신 죽겠소’ 하는 목사와 샘물교인 왜 없나 등이 주된 비난의 목소리다.

기독교인들의 또 이렇게 비난한다. 믿음으로 갔으니 믿음으로 견디라, 정부에서 관여 말라, 순교를 감당하고 간 것이니 죽든지 살든지 정부에 압력 넣지 말라, 죽으면 바로 아버지께 갈 것이니 국민에게 폐 끼치지 말고 믿음으로 감당해라, 봉사하러 아프간까지 갔다는 거 이해할 수 없다, 봉사를 하고 싶으면 여행경비를 그냥 송금해 주지 진짜 봉사가 아니라 만용부리러 간 것 아니냐, 아프간 위험한 지역이라고 수차례 경고했는데 선교적 영웅심에 문제만 일으키고 있다, 꼴 좋다, 선교니 뭐니 설칠 때 알아봤다. 그냥 조용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랬지 등이다.

선교 전문가들은 전문가답게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현지를 너무 몰랐다, 현지 상황과 문화를 존중하고 위험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야 했다, 단기선교는 지속성이 없다, 현지 선교사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해야하고 현지 사정에 대한 사전 정보수집을 해야 되는데 이런 점에 너무 소홀했다, 사역을 하기보다는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 하고, 특히 위험지역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사역을 해야하는데 너무 드러나는 사역을 한 것이 화를 불렀다, 단기선교자들은 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바른 사역을 감당하기 어렵다, 선교사역을 관찰하고 평가할 때 좁은 안목과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여러 가지 오해로 인해 단기선교를 다녀온 후 선교지의 사역에 대해서 나쁜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선교에 나쁜 영향을 초래하는 예가 많다. 각 교회는 단기선교 재고하라 등의 조언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타임지에서는 비디오 카메라 선교, 디카 선교라 하면서 한국의 선교를 낮춰보고 있으며 여러 미디어의 보도와 논평도 한결같이 시니컬하다. 이러한 소름끼치는 비난과 조롱의 소리들은 사랑하는 자녀와 남편과 아내를 살리려는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과 처절한 가슴에 결정적으로 박히는 절망의 대못이 되었다. 현지인을 긍휼이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품고 떠난 천사들을 향한 말 치고는 그 도가 너무 심했고 너무 성급했다.

특이한 것은 납치범들에 대한 비난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테러하는 집단을 향해서는 침묵하고, 선량한 젊은 선교 팀원들에게는 저주와 비난이 홍수를 이룬다. 우리 한국사회는 비난과 정죄, 부적절한 조언이 너무 많고,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처럼 비춰친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중보의 마음
어려운 일을 만날때, 힘겨운 고난의 순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내 신앙의 현주소이다. 환경을 탓하며 세상적 가치관으로 평가하는 것은 참 신앙인의 자세라고 볼 수 없다. 고난과 고통의 시기에 그 어려움에 함께 참여하고 아파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교제라고 티모시 로브네트와 알렌 퀴스트 목사(The spirit driven church의 저자들)는 말하고 있다. 또한 중보기도사역으로 유명한 신디 제이콥스는 참된 중보자의 마음을 “술취하여 벌거벗은 노아의 하체를 옷을 벗어 뒷걸음질하여 가려준 셈과 야벳처럼 상대의 부끄러운 부분을 보지도 않고 덮어주는 것이다, 무너진 담을 막아서 주는 행위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런 참된 중보의 마음이 그들에게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탈레반 무장세력에 인질이 되어 있는 선교팀과 잠못 이루고 애타하는 가족들과 샘물교회에 필요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저급한 비난과 정죄, 성급한 조언들이 아닐 것이다. 잡혀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그들을 구명하려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는 교회와 가족들과 힘을 합치는 일이다. 위로의 말 한 마디, 격려의 말,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

그들이 위험한 지역에 여러 가지 경고에도 불구하고 들어가 이러한 위험을 자초했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안전한 귀환과 협상이 잘 진전되도록 돕고 그 어려움에 동참하고 같이 아파하는 것이 우선 참된 형제로서 취해야 할 모습일 것이다. 그들에게 혹 오류와 부끄러운 부분이 있다면 막아서 가려주고 덮어주어야 하는 것이 이 다급한 시점에서 국민들과 기독교인들이 보여야 할 모습일 것이다.

혹 그들의 오류에 대한 비평과 조언이 필요하다면 안전하게 돌아온 후에 겸손히 조심스럽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권면하면 될 일이다. 모든 단기선교팀은 사후 평가회나 보고회 시간을 갖는다. 이 때 다루면 될 일이다. 한민족 복지재단과 샘물교회 선교팀은 선교의 이해와 노하우가 매우 깊은 전문기관이다. 그들도 선교에 대한 충분한 기도와 연구로 피선교지에 대한 전문지식과 뜨거운 열정을 소유한 기관이다. 위에서 본 무절제한 비난과 조언들을 이미 충분히 고려하고 숙고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우선 안전하게 그들을 구출하는 데 힘을 모으고, 위로와 격려와 희망적인 말로 가족과 당사자들에게 힘을 북돋워 줄 때이다.

단기선교, 한번 가본 사람이 계속 간다
왜 그들은 위험하고 힘든 열악한 지역으로 자꾸 가는 것일까? 정부의 수 차례에 걸친 만류에도 왜 굳이 그곳으로 가야만 해을까? 혹 하와이나 발리, 피지등과 같이 아름답고 쉬기 편한 천혜의 휴양지를 도통 모르는 바보들은 아닐까? 아니면 그들은 타임지가 비판한 대로 선교 경쟁심리 때문이거나 비디오 카메라에 담기 위한 여행성 선교를 간 것인가?

그들은 고통받는 지역과 그곳의 사람들을 향해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가는 것이다. 하늘 아래 그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거짓말처럼 만나는 순박하고 아름다운 현지의 영혼들이 그리워 다시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거룩한 발걸음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은 축복을 고난의 백성들에게 나누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복의 근원으로 그곳에 서는 것이다.

100여년 전에 동방의 미개한 국가 한국땅을 찾아온 수많은 선교사들, 당시 자신들의 나라에도 헐벗고 굷주린 사람들이 많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인을 가슴에 품고 몇 개월 동안 태평양을 건너왔던 아름다운 발길들, 그들의 숭고한 섬김과 순교의 피가 없었다면 오늘 한국의 발전과 기독교의 부흥은 생각할 수도 없다(이용남 선교사 저서 「복음에 미치다」 중에서). 결국 벽을 넘어 열방으로 향하는 선교사의 아름다운 발걸음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위와 같은 비난과 조롱과 정죄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선교지로 인도하는 발걸음도 하나님의 지배와 섭리하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장단기 선교 프로젝트 매니저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교의 구체적 진행을 준비되지 못한 미련하고 늘 실수하며 부족한 우리 인간들을 통해 이루어 가신다. 이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반응하여 동참한 장단기 선교사들은 부르심의 소명에 감사하며 주어진 사명을 감당케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어찌 어떠한 특정지역으로 가면 된다 안 된다 쉽게 말하며 비난할 수 있겠는가. 모든 선교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선교의 총체적 위기냐 새로운 출발이냐
이 사건이 선교의 총체적 위기를 초래할 것인가 아니면 더 강한 새로운 출발을 가져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믿음과 태도에 달려있다고 본다. 참 믿음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내가 함께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어떠한 일을 아프간에서 행하시기 원하시는가? 이 일로 아프간을 향한 선교의 발걸음과 영적 전투의 향방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는 아프간 현지인이 원치않는 모든 선교를 중단하겠다 발표하였다. 많은 교회들이 단기선교의 위험성과 단점들을 다시 살펴보며 계획된 단기선교를 취소, 보류 혹은 신중히 재고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단기선교로 인해 생긴 이 중차대한 도전과 위험의 중심에 서서 많은 기독교인들과 선교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들여다보며 고민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깊은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사실 위와 같은 비난들은 선교를 담당해 온 각 교회 선교담당자나 선교단체들은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들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것이다. 아프간 사건은 분명 선교에 대한 총체적 도전이며 교묘한 사탄의 전략이다. 그러나 선교사령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전투에서 이미 승리하셨다. 그의 이름으로 우리는 나가서 승리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오랜 선교의 역사에서 숱한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승리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우리는 지금부터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마지막 세대에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은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더욱 악해져서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진다는 경고를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하나님의 마음이 웃고 있는 선교지의 백성들에게 보석처럼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발길들이 지속되길 기도한다. 예배가 없는 백성 가운데 예배가 회복되기를 기도한다(이상 John Piper 목사의 ‘선교에 대한 정의’ 인용). 세상 모든 민족이 드릴 예배와 찬양이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아름답게 빛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 가운데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말씀과 기도가 회복되고, 찬양과 예배가 회복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이러한 심령의 회복이 그 민족들 가운데 주어지는 참 부흥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열방을 가슴에 품고 복음과 문화의 벽을 넘는 아름다운 선교의 발걸음들이 지속되길 소망하며 분당 샘물교회 선교팀과 가족들께 주님의 사랑과 축복과 위로를 전한다. 특히 순교를 당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형제 가족들에게 주님의 신실한 위로하심이 있기를 소망한다. 이들의 순교의 피로 아프간 백성들이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