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는 죽음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했다. 노인에게 죽음의 문제는 최후에 직면해야 할 문제이면서도 심리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파생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노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죽음의 관한 전반적인 이해와 더불어 노인에게 더 긴요하게 필요한 노인 자신의 심리적인 상황과 고통, 노인을 둘러싼 가족들의 위기와 심리적인 고통을 일차적으로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1. 죽음에 대한 노인의 심리적 반응
죽음에 대한 노인의 심리적 반응은 어떻게 나타날까? 그에 대한 답변은 단순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여기서는 학자들의 특징적인 견해를 중심으로 하여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하여 기술하려고 한다.
1)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예측을 불허하는 미래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 때부터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에서 어른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이른다. 죽음을 앞둔 노인은 "가까운 장래에 자신이 죽는다." 라고 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갖는다. 죽음에 대한 무지(innocence of death)는 다음과 같은 두려움을 가져온다. "이 세상 후에는 어떤 운명이 될 것인가?", "죽은 후에 나의 육체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른 이들은 나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등이다.
이런 것은 죽음을 앞둔 인간의 기본적인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를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본능일 수 있다. 죽음을 직면한다는 것은 바로 한 개인이 지닌 모든 것 존재자체를 잃어버린다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이다. 자기를 끊임없이 보존하고자 하는 이 같은 본능이 죽음에 앞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삶, 즉 영생(永生)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죽고 나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을 초월할 수 있다. 따라서 사후에 "영생이 있다.", "영원한 미래가 있다."고 하는 긍정적인 자세는 죽음을 앞둔 노인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2) 인과응보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은 대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생각을 갖고 살고 있는 편이다. 이런 인과응보와 관련하여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믿고 있는 생각은 모든 인간이 죽고 나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좋은 일을 했으면 보상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그에 대한 벌을 받는다고 하는 보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나 혹은 다른 종교에 있어서도 천국(天國)은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장소이고, 지옥(地獄)은 벌을 받는 장소라고 하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죽고 나서 벌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것과 관련하여 특히 노인들은 본인 자신이나 타인의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용서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노인의 마음이 절대자가 자신의 죄를 용서해 준다는 것을 믿는 경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준다는 것을 확인하는 경우에는 더 평화로운 죽음을 맞게 될 뿐 아니라 과거의 삶이 불성실했거나 미완성으로 인해 남은여생을 포기하려는 마음에서 보람 있게 최선을 다하는 노력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시된다. 이런 불안은 물론 죄책감에 대한 용서이므로 여기서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상당한 장점을 갖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로 복수하는 하나님, 벌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모두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성서에 등장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절대로 심판하고 벌을 주는 분이 아니라, 용서하시고 모든 것을 감싸주고 이해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죽음을 앞둔 노인들에게 주지시키므로 심리적인 평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3) 심령의 허약함에 따른 영적인 갈등
인간이 건강할 때는 여러가지 해야 할 많은 일들 때문에 영적인 요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다가, 질병으로 자신에게 불구의 몸이 되거나 죽음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인간은 자기 존재의 통합성에 강한 애착을 갖는다. 그래서 영적인 측면에서의 신체적 질명은 영적위기를 초래한다고 말 할 수 있으며, 이것을 극복할 때에는 현격한 인격발달을 가져오게 된다.
펀프리(J. Punphrey)는 노인이 질병과 치료과정의 진행, 종교의식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 죽음에 직면한 때에 영적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다고 하였으며, 스톨우드(Jean Stallwood)는 인간이 절대자와 사랑의 관계가 결핍될 때, 건전한 자기애와 타인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되었을 때,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소외감으로 인한 신뢰의 부족, 내적 공허로 인한 생의 의미와 목적의 결핍이 있을 때 영적인 갈등을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런 경우의 영적 갈등은 인간의 영적인 안녕과 관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신앙의 유무(有無)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궁극적 관심사가 되는 것으로서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타인 그리고 신과의 관계에서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으며,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고 용서를 받고자 하는 영적 기본요구라는 점에서다. 이런 것은 신과의 개인적이고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영적 요구가 충족될 수 있고, 그런 영적 기본요구들이 충족될 때는 개인의 안녕감과 온전함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들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상실하거나 부족할 때는 영적인 갈등을 갖게 되기에 죽음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노인을 상담하는 상담자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노인의 영적인 갈등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2. 죽음에 대응해야 하는 노인의 자세와 태도
죽음을 앞둔 노인에 대해서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그에 대한 답변은 물론 차분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맞는 말이지만,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응해야 하는 노인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 다루어야 한다. 특이하게도 죽음을 앞둔 노인은 정상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강력한 욕망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이 체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단계에서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앞으로의 세계에 대한 불만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다음의 몇 가지로 그 대응책을 알아보기로 한다.
[1] 죽음의 5단계를 참고한 예방적인 자세와 태도
퀴블러 로스(E. Kubler-Ross. 1977)의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심층적 연구는 너무나 유명하여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의 연구 결과 죽어가는 과정에는 다섯 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노인이 똑같은 순서로 이 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일부분이 중복되고 어떤 단계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노인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이런 단계를 예방적인 차원에서 활용하기로 한다.
(1) 부정(Denial)과 고립(Isolation)의 단계와 대응
일단 회복 불가능한 불치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노인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첫 반응은 "난 아니에요!", "아니 내가 그럴 리가 없어요!"라는 강한 부정을 한다는 것이다. 이때 이들의 부정은 일시적인 방어 수단이기에 조금 있으면 부분적인 수용으로 대체된다. 무의식 층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불사불멸하는 존재이기에 "나도 죽음을 마주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일이 상상도 되지 않지만, 서서히 이런 부정을 포기하고 덜 격한 방어수단을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상담자는 노인이 죽음에 대하여 거부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수용할 것을 권하는 지혜가 발휘되어야 한다. 실제로 퀴블러 로스는 이 '거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충격적인 소식을 받은 뒤의 완충작용을 하며, 죽음을 앞둔 노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가다듬게 만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덜 강경한 방어수단으로 대체하는 여유를 준다"고 하였다.
이런 경우에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갖는 죽음에 대한 거부는 일종의 방어수단이기에 상담자는 이때 노인이 말하는 것을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노인에게 너무 많은 반응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다만 상담자는 그가 용기를 잃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상담을 해야 한다. 그것은 노인이 자신의 외로움을 나눌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죽음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노인의 마음이 열어지기 때문이다.
(2) 분노(Anger)의 단계와 대응
죽음 통보의 반응으로 부정의 단계 이후 대부분의 죽음을 앞둔 노인들은 "그렇구나, 사실이구나!"라는 느낌이 들면 새로운 반응으로 대체시킨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이 불가피하게 죽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아남는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는 점에서다. 이것은 한마디로 "왜, 하필 내가?"라는 원망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는데..." 또는 "나같이 할 일이 많은 사람이 벌써 죽어야 하다니..."와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 분노의 단계는 죽음을 앞둔 노인들만 아니라 주변의 가족과 의료진도 감당하기에 대단히 힘이 드는 단계라고 한다. 이때 노인이 분노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여 노인이 존중, 이해, 관심을 받고 시간을 할애 받게 되면 노인은 더욱 안정될 것이며, 스스로 아직 가치 있고 보살핌을 받는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분노의 단계에의 대응은 자신의 불가피한 죽음에 분노를 느끼는 동시에 노인 자신도 살아있다는 확증을 얻으려 한다는 심리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죽움을 앞둔 노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기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 대응이 잘 되면, 이때부터 노인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 시작하게 된다. 대부분의 죽음을 앞둔 노인은 대개 '살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에 그 작은 희망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자기만 눈앞의 죽음에서 제외되는 특수한 경우를 기대하기도 한다는 점에서다.
(3) 타협(Bargaining)의 단계와 대응
죽음에 대한 부정한 분노의 시기를 거치면서 죽음을 앞둔 노인은 자신에게 아무런 소득이 없으며, 죽음을 모면할 길이 없음을 점차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노인은 자기에게 아직 처리해야 할 과업이 남아 있으므로 그러한 일이 끝날 때까지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타협을 하게 된다. 이것은 물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절대자와 타협하기를 원하는 현상이다. 이런 원리는 비단 죽음에서만 아니라 모든 경우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타협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타협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취하는 마지막 수단인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때로는 심각한 경우의 타협도 쉽지 않지만, 막다른 죽음을 앞에 두고 하는 타협이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상담자는 이런 경우에 직면하게 되면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고 담담하게 수용하는 지혜를 갖도록 권면할 수 있다.
물론 이 시기의 노인은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연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타협을 하게 된다. 하나는 생명연장에 대한 소망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과정 중에 겪게 되는 육체적 고통과 불편함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상담자는 이러한 행동이 정상적이며 죽음에 직면한 노인에게서 나타나는 한 단계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오면 그렇게 담담하게 수용할 것을 권하자는 것이다.
(4) 우울(Depression)의 단계와 대응
우울의 단계는 죽음을 앞둔 노인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결과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자신의 죽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면 노인은 "어쩔 수 없지!"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때 노인은 과거의 상실과 이루지 못한 일,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슬퍼하게 된다고 한다. 이때는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노인이 깊은 침체에 들어가 말도 안 하고 자기 혼자서 씨름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노인은 "그래 내 차례"라고 자신의 죽음을 더 부인하지 못하게 되고, 증상이 더 악화되며 쇠약해지면 극도의 상실감을 겪게 되면서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는 점에서 이 단계를 우울의 단계라 한다.
이런 우울의 단계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도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을 상실한다는 심리, 심지어 가장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마지막으로 잃게 된다는 데에 따른 심리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에 직면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우울해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상담자는 인간이 종국에 가서는 이렇게 모든 잃어버리는 상황에 다다르게 될 것을 미리 인식하여 대응하는 태도를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은 물론 살아 있을 때에 이런 단계를 미리 인식하게 되면, 그 때에 조금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생애 동안에 끝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하도록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것에 대해서 사전에 인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죽음을 미리 깨닫는 데서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말을 새겨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5) 수용(Acceptance)의 단계와 대응
수용의 단계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죽음의 마지막 단계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의 운명에 대한 분노나 침울은 모두 사라지고, 그 대신에 죽음이 오는 것을 어느 정도 차분히 기다리는 상태가 된다. 이 시기에 죽음을 앞둔 노인들은 언어보다도 무언의 대화로 바뀌게 되는데, 곁에서 침착하게 노인의 침묵을 잘 활용하도록 하여 사랑으로 돕는 태도와 자세가 필요하다.
수용 단계에서 노인은 자기 범위가 좁아지며, 외부 문제로 인하여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때로는 문병객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나눌 기분이 아닐 때가 많다. 이것은 죽음이 임박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수용의 단계에 도달하면 의사소통은 무언의 대화로 바꾸지만, 어떤 노인은 수용 단계에서 문자 그대로 평화로운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이 이 단계에서 공포와 절망을 극복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용의 단계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음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 단계에서는 더 이상 죽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투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실제로 죽음이란 이 세상의 모든 고생이 끝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저 유명한 베토벤의 일화가 떠오른다. 베토벤이 죽음에 직면하여 주변사람들이 슬퍼하면서 울 때에 베토벤이 "왜들 그렇게 슬퍼하고 웁니까? 나의 모든 고통을 끝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누구나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감사함으로 맞이하는 자세와 태도가 훨씬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2] 노인의 심리적 외로움에 대한 치료
죽음을 앞둔 노인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순간 찾아오는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은 노인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일 것이다. 노인이 겪는 이 2가지 큰 어려움은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데, 죽음을 앞둔 노인이 경험하는 고통은 복합적인 것으로 신체적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과 심리적인 갈등, 정신적 고통, 영적인 요구, 사회적인 고통, 경제적인 문제, 가족문제 등이 있고 이것들이 서로영향을 주어 노인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킨다.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이란 신체의 어떤 특징 부위의 아픔이나 전신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으로 감각 신경의 말단에서 생성된 흥분이 대뇌피질에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경험하는 증상 분포는 신체적인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이 82%로 노인이 겪는 가장 큰 고통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노인이 느끼는 신체적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은 그 자체가 하나의 질병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은 계속적이고 끈질기며 다양하고 또한 시간제한이 없이 날이 갈수록 더해지며 낫지 않는 잔인한 만성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 신체적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이 노인에게 최대의 고통이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이런 경우 근심과 걱정과 불면증이 노인의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상담 및 심리치료를 통하여 해소해야 한다. 전문적인 치료는 그만큼 효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담치료를 한 후에는 노인이 관심을 다른 일에 쏟게 하는 방법 등으로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사람은 노인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심리적으로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원봉사를 하는 것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남을 위해 돕는 자원봉사는 노동의 대가를 받으면서 일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정도의 커다란 만족감과 기쁨, 그리고 좋은 정신적인 에너지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다.
카플란(Harold I. Kaplan)은 노인들이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과 함께 우울한 정서를 갖게 되는데, 우울이란 인간의 지속적이고 내적인 정서 상태(emotional state)인 하나의 기분의 측면이라고 했다. 기분이란 정상적일 수도, 상승할 수도, 그리고 우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이란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과 대단한 고통을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특징을 가진 임상적인 조건들의 한 집단이다. 우울이란 일종의 자아반응(ego reaction)이다. 우울한 상태에서 자아는 거의 전체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므로, 우울한 죽음을 앞둔 노인의 자아는 수동적 방법 외에는 기능하지도 않고 반응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 심리적, 신체적 기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3) 가족의 이해와 대응
심각한 질병으로 고생하는 노인, 죽음을 앞둔 노인이 있는 가족의 이해와 대응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노인에 대해서 가족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노인의 질병과 죽음에 대한 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치매를 겪는 노인에게도 가족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증상이 완화되기도 하고 더 심한 경우로 이행되기도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이런 노인의 경우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너무도 크고 심각하다. 더욱이 암으로 진단받은 사실을 노인에게 알려야 하는지 아니면 비밀로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그 가족들이 감당하기 힘든 문제 중의 하나이다. 이런 점에서 노인들의 고독과 절망과 더불어 그 가족들의 고통은 극심한 것이다.
가족 중 이런 노인이 발생하여 중병으로 진전될 때, 그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대개 이런 노인으로 진단이 나오면 의사는 보호자를 찾는데, 가족들의 불안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가족은 노인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슬픔과 두려움을 억누르며 남다른 표정과 감정처리를 해야 한다. 또한 경제적인 부담과 가족 구성원들 간에 변화가 따르며, 노인의 가족도 노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노인의 태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해하는 실체이다.
가족들도 노인 못지않게 충격과 부정, 협상을 거쳐 사별을 수용하며 적응하여 간다. 충격은 마치 무거운 물체에 일격을 당하는 것과 같은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때의 반응은 "그럴 리가 없어!"라는 부정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감정적 마비라는 비(非)인격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른다는 공포를 갖기 때문이다.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진행되지 않도록 손을 써야 한다. 불안과 공포는 정신적, 생리적인 현상을 수반하며,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허탈한 상태에 빠지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다.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가족들은 정상적인 일 처리를 하지 못하고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자기 결단을 내릴 수 없으며, 자기가 기대할 수 있는 모든 희망을 포기하므로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가족들은 충격적인 심리 상태를 겪으면서도 노인의 고통이 길면 길수록 가족들의 마음에는 빠른 임종을 바라는 마음도 들 수 있다. 가족들에게서 나타나는 희망은 가능한 한 무슨 치료의 방법이든지 모두 동원하여 치료하고픈 마음이 들거나, 치료는 어렵지만 될 수 있으면 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보이거나, 노인이 고통 없이 되기를 바라며 괴로움이 적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3가지 모두 아무런 모순 없이 동시에 이룰 수는 없다. 목숨은 오래가기 원하면서 괴로움을 짧게 해 주기를 바라지만, 생명이 연장되면 될수록 죽음을 앞둔 노인이나 가족들의 괴로움은 그만큼 연장된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하여 이런 노인을 둔 가족은 심리적인 편안을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 끝이 있기 마련인데, 이때가 그때인가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노인이 살아오던 동안에 잘했던 일을 기억하는 것도 그 대응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천사처럼만 살 수 없고, 때로는 본의 아니게 실수도 하며, 악처럼 살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여 가급적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 대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좋은 것을 생각하면 그에 대한 대응이 긍정적으로 되기 쉽고, 심리적으로도 긍정적인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저자가 독일에서 유학하던 때의 일이 생각난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하면서 살던 40대의 주부의 동거남이 70세가 넘었는데, 근육무력증에 걸려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혼자서 경제적인 문제를 책임을 지면서 살아가는 그녀였기에 그를 돌보는 일이 너무나 힘겹기에 계속해서 돌보는 것이란 불가능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차에 저자에게 양로원에 보내야겠다는 상담을 하였는데, 그때 저자는 "힘이 들더라도 수십 년을 함께 살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가는 길을 끝까지 지키라"고 권유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후부터 그녀는 너무나 힘이 들지만, 그가 가는 길을 지키기 위해 그를 정성으로 돌보았다. 그것이 동네에 알려져 그녀가 남편을 돌보는 시간을 직장 근무의 절반으로 인정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녀의 그런 행동에 독일 사람들이 감동하여 그렇게 대우하였던 것이다. 좋은 결과로 끝나서 다행이었지만, 모든 일은 항상 좋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노인이 죽은 다음에 심리적인 괴로움이 남지 않는 것도 앞으로의 삶을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정리: 노인의 죽음은 심리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파생시켜
지금까지 우리는 앞장에 이어서 노인의 질병과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기술했다. 인생의 발달에서 최후의 부분에 있는 노년기는 죽음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했다. 노인에게 죽음의 문제는 최후에 직면해야 할 문제이면서도 심리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파생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노인의 전반적인 상황들을 살펴봄으로써 노인에 대한 죽음에 이해와 그 대처를 가지려고 했다. 이를 위해 노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죽음의 관한 전반적인 이해와 더불어 노인에게 더 긴요하게 필요한 노인 자신의 심리적인 상황과 고통, 노인을 둘러싼 가족들의 위기와 심리적인 고통을 살펴보고, 그에 따른 대응책을 시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