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Photo : )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창 32:13)

 

야곱이 세운 화해의 두 번째 전략은 예물을 에서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야곱이 에서를 위하여 택한 예물은 그 규모가 대단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암염소가 200마리, 숫염소가 20마리, 암양이 200마리, 숫양이 20마리, 젖 나는 약대 30마리와 그 새끼들, 암소가 40마리, 황소가 10마리, 암나귀가 20마리, 새끼 나귀가 10마리 등이다. 성경은 야곱의 전체 재산이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아, 에서에게 보낸 예물이 전체 재산 중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체의 숫자가 550여 마리에 이르는 야곱의 화해 예물은 상당한 분량임이 분명하다.

성경에서 뇌물은 정당한 판결을 굽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 악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잠 17:23). 그러면서 선물이 가져오는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잠 18:16) 신약성경에 소개되어 있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도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지혜로움을 칭찬하고 있다. 주인의 재물을 맡고 있었던 불의한 청지기는 부당한 방법으로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탕감하여 주었다. 그것은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에 오히려 칭찬받게 된 것이다(눅 16:1-9).

야곱이 형 에서와의 화해를 위하여 자신이 모은 재산 가운데 막대한 분량을 이처럼 아낌없이 예물로 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야곱이 그만큼 화해의 필요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야곱에게 있었던 삶의 우선순위는 형과의 화해였다. 그것을 위하여 그는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야곱의 그런 적극적 자세가 에서에게 막대한 양의 예물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 에서에게 예물을 보내는, 화해를 위한 야곱의 두 번째 전략은 앞서 전한 화해의 메시지와 연관이 있다. 곧 막대한 양의 예물은, 앞서 전한 화해의 메시지가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보여주었다. 화해는 말로만이 아니라 희생과 봉사와 같이 구체적인 것이 동반되어야 진정성을 지닌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이 무너지기 위해서도 큰 희생의 예물이 있어야 했다. 그 대가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못 박아 죽이심으로 온전히 지불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신 것이다(롬 3:25; 5:10). 그 결과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던 우리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원수 되었던 관계는 십자가로 소멸되었다(엡 2:3, 16).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은 우리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것이다(요일 2:2). 에베소서는 그것을 두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중간의 막힌 담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허물어졌다고 선언했다(엡 2:14). 전에는 원수처럼 취급되었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한 몸을 이루는 화목의 새로운 관계가 된 것이다(엡 2:13; 15). 이것은 우리들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대사로 임명되었음을 의미한다(고후 5:18-20). 화목하게 하는 직책은 대접받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자는 것이 필수적인데,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마 16:24).

그런 점에서 야곱이 형 에서에게 보낸 예물은 화목제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최선을 다하여 두 번째 화해 전략을 준비한 야곱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마지막 남은 화해 전략을 곧바로 추진한다. 그것은 이전의 두 단계 화해 전략을 떠받쳐 주는 근본적인 힘이기도 하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