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명품 설교'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아마 방송에서부터 시작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설교가 '명품 설교'일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모든 방송 설교를 요약한 명칭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일요일이 좋다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 시즌5' 선발대회의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볼 때 아무리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전혀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시즌 선발에서 탈락하였습니다. 중요한 이유는 첫째 자기의 색깔이 없다는 것이며, 둘째 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경쟁에서 살아남은 8명은 남들보다 그런 점에서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명품 설교'란 무엇일까요? 본문을 잘 해석해서 청중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과연 '명품 설교'일까요? 물론 그것이 대중에게 전달하는 연설에서 중요한 대목이기는 합니다. 논리적으로 잘 풀어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설교의 기본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설교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잘 전달해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란 자신의 믿음을 청중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타인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면 노래 배달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설교도 미국이나 주변의 유명한 분들의 것이 그 다음 주쯤 되면 그대로 복사돼서 사용된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수십 년 동안 주석과 타인의 설교 등을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성도가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에 변화는 없습니다. 바꿔서 말씀드리면, 좋은 영화나 연속극에서 감명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 목회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회의감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의 말을 들어 보면 아무리 은혜를 받고 모든 것을 다 할 것처럼 해도, 길면 3개월, 아니 일주일이면 다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는데 변하지는 않을까요? 그렇다면 참 '명품 설교'란 무엇일까요?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땅의 사람이 하늘의 사람으로,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과연 이 시대에 그런 '명품 설교'를 우리가 들을 수 있을까요?
'명품 설교'란 내가 성경 말씀을 통해 100% 체험한 사실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설교가 청중에게 기적과 능력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내가 전한 그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교인들이 귀로는 설교를 듣지만 마음의 변화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첫 설교는 팔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내용대로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빌 3:17)"고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어느 시대보다 말씀과 세미나, 훈련이 풍년입니다. 무엇보다 지인들이 카톡으로 보내 주는 글들도 짜증이 날 정도로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신앙은 점점 식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말씀하는 '명품 설교'를 신자들이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의 진정한 변화는 단 한 단어라도 성경 말씀을 통해 은혜를 체험해야 나타납니다. 내 삶과 잘못된 인생을 바꿀 정도로 체험된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성경 연구로 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세미나와 예배, 기도, 경건의 시간으로 변화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 한 구절의 말씀 때문에 제 일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모든 비전과 꿈도 체험된 말씀으로 바뀌었습니다. 진정한 '명품 설교'란 내가 체험한 말씀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명품 설교'란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 말씀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설교가 참 '명품 설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