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선생님들을 보면,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지적하고 큰 소리로 꾸중한다. 때로는 불러다가 훈육하는 경우도 본다. 하지만 이런 꾸중이나 질책이 일시적인 행동 교정은 가져올지 모르지만, 결국 계속적으로 제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속적으로 혼나게 되면 결국은 누군가가 통제하지 않는다면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해야 하는가? 그럴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기에 고민은 시작된다.
사역의 현장이나 가정에서 지도자들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실수도 바로 이것이다. 직원들이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지적하고 나무라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나무라게 된다. 하지만 꾸지람을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 사이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말하면 행동이나 말을 고치겠지 하고 지적하게 되지만, 그 결과는 늘 참담하게 나타난다. 지적당하고 꾸중을 들어서 기분 좋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교정해 보려고 하지만 질책이나 꾸중으로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어떠할까? 교실에서 장난치고 떠드는 아이가 선생님의 꾸중 한 마디로 조용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말을 안 들을 경우에 체벌을 가하거나 어떤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하면,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결 방법은 매우 일시적일 따름이고 습관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효과적일 수가 없다. 더군다나 꾸중을 듣는 동안에 아이는 에너지를 빼앗기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나아가서 꾸중을 한 선생님이나 부모, 선배를 막론하고 상대를 원망하고,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엉뚱한 길로 나가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꾸중이나 체벌은 말 안 듣는 아이로 키우는 지름길이고, 힘든 일을 만나면 회피하는 비겁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상대방의 눈높이로 바라보는 것이다. 상대방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문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나 친밀한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심리학자 아들러는 말한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직설적인 지적이나 교정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반드시 시간이 좀 지나서 대화를 시도하여야 하고, 그 행동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지시하거나 조종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리더로서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해결하는 것이 좋은 덕목이라고 생각해 온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어려운 방법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여야만 고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혼나고 나면 더 삐뚤어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