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 유대주의라는 역사의 철로
2014년 11월 『기독교와 반(反)유대주의』 과목의 현장학습으로, 학생들과 함께 아우슈비츠수용소를 찾은 적이 있다. 수용소로 들어가는 철로 위에서, 나는 연합군 수뇌들이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라는 죄목으로 고발당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당신들은 왜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이 철로들을 폭격하고 끊어버리라고 명령하지 않았소?"
아우슈비츠에서만 100만 명의 유대인이 소각장의 연기로 사라졌다. 아우슈비츠로 들어오는 철로들을 끊었다면 최소한 그들이 사이클론 가스에 집단학살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고, 철로를 끊는 것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던 연합군 수뇌들의 뇌리 역시 유대인들은 '사악한 존재'라는 반유대의식으로 차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유대인들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악한 역할을 하는 버림받은 자들"이란 신학 체계를 만들어낸 교회 교부들, 그리고 이런 신학 체계를 더 세련되게 강화시킨 중세의 신학자들, 중세의 잘못된 신학을 거부하면서도 반유대주의만은 극복하지 못했던 종교개혁가들의 사상이 2천 년 교회 역사의 대부분을 지배해 왔다. 서구교회 사람들이었던 연합군 수뇌들 역시 반유대주의로 점철된 서구교회 역사와 문화에 속해 있었기에, '(폭파)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던' '미필적 고의'의 죄악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가치관이 뇌리에 찼나
인간은 가치 판단의 존재이다. 인간이 생각하고 가치 판단을 하는 존재라는 측면은, 단연코 동물과 다른 인간됨의 우선 특징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어떤 가치들을 습득하였느냐에 따라 동물 이하의 참혹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모순적 존재 또한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의 가치 판단의 중심에 종교가 있다. 유사 이래 종교는 인간의 사회문화적 삶의 핵심 요소였다. 이는 인간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가치 판단의 요소라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요 인류에 대한 유일한 생명의 길이요 진리이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는 가치와 제도의 측면에서 종교라는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절대 진리로서의 예수님은 제도화된 종교인 기독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도 저주스러운 이름이 되시기도 한다. 그 여부는 교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어떤 가치를 심어 주느냐에 달렸다.
1978년 가이아나의 정글에서 912명의 미국인들이 집단 자살하였다. 짐 존스의 시한부 종말론에 세뇌된 결과였다. 이는 물론 기독교의 이름을 빌린 이단 사이비 교주에게 세뇌된 극단적 예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정상적인 소위 정통 기독교의 주류에서도 그런 유사한 세뇌가 가능할까. 정통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한 민족에 대해서 혐오적이고 미신적이며 적대적인 가치관을 수백 년간 계속 주입한 일이 있었을까. 신을 죽일 정도로 지독히 악한 존재요, 마귀요, 버러지 같은 존재요, 인류에게 사악한 일만 조장하는 존재요, 크리스천들의 피를 빨아먹는 존재요, 돼지의 젖이나 빨아먹는 더러운 놈들이라는 등. 만화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이런 비열한 가르침들이 거룩한 교회에서도 가능한 일이었을까. 거룩한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쳤다면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지금도 장중한 서구교회의 벽에 버젓이 붙어 있는, 돼지 젖을 빠는 '유덴자우'(Judensau=유대인 돼지)의 부조. 믿고 싶지 않은 역사적 사실 앞에 살이 떨린다. 교회는 유대인들이 그런 존재들이라고 가르쳤다. 그런 신학, 그런 가르침, 그런 미신, 그런 가치관, 그런 추악한 인상이 1700년 동안 서구인들의 의식 세계를 지배해 왔다. 나는 연합군 수뇌들의 뇌리에도 그런 편견들이 비껴가지 않았으리라고 감히 상상해 본다.
모든 유럽인은 기독교인으로 태어나고 죽었다
주후 4세기 이후 유럽 사회는 기독교 사회로 변모되기 시작한다. 유럽인들은 기독교인으로 태어나고 기독교인으로 죽어갔다.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 기독교의 모든 가치관이 이들의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 것이다. 과거 유럽교회 평신도에게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의식적으로 골몰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다. 특히 중세교회 교인들은 무식하였다. 글을 읽을 줄 몰랐기에 그림(성화)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배울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그러기에 교회와 신학자들에게 배우고 전수받은 사상이나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그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할 뿐이었다.
더욱이 중세 시대, 교회의 가르침이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던 상황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교회의 신부, 신학자, 목사의 가르침과 사상은, 그대로 평신도에게 전수되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유럽의 문화와 사상은 철저히 교회 문화요 사상이었으며, 이는 서구인들의 가치 판단과 행동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교회의 주도권이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인 교회에서 헬라 세계의 이방 교회로 넘어가게 된 주후 2세기 중엽 이후, 특히 4세기의 교부 시대 이후로 교회의 반유대적인 입장이 시작된다. 적어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이런 가르침은 17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면 교회가 가르친 반유대적인 내용이란 도대체 어떤 것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