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어느날, 필자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기 이름을 대며 50년 전 한국에서 나에게서 배웠다는 것이다. 사실은 일어를 배운 것이 아니고 인간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때 E대학 법대생으로 종교나 다른 분야에는 관심이 없던 자기에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끔 영향력을 주어 훗날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되고 부모님은 물론 전 가족, 친척, 친구 등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자기 자녀들까지도 선교 사역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필자가 수십 년간 교회와 학교에서 가르친 학생 또는 교인 수는 많지만 훗날 고맙다고 전하는 제자는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50년 전에 잠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그 옛날 그 학생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나의 어떤 면이 그의 일생을 바로 갈 수 있도록 했나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기억이 없다. 단 한 가지, 누구를 대하든지 인격자로 대하며 그 상대방을 나의 스승으로 대하는 것뿐이다. 그는 그 면을 말해 주었다. 내가 그 분에게 준 영향이라면 내가 스승으로 모시는 예수님의 모습 중의 일부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오늘날 교회에서 외치는 설교나 성경공부가 은혜를 사모하여 모인 뭇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옛 추억이나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곳을 찾고 있다. 예수님은 정을 한없이 나눠 주셨다. 아픈 사람들을 찾아가 고쳐주시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목마른 사람에게는 생수를, 상처투성이인 사람에게는 다시 일어나 내일의 소망과 꿈을 안고 힘차게 영생의 길을 가도록 하셨다.
교계에 부정적인 말이 많은 중에 특히 나에게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말이 있다. “홍수 때 천하가 물로 넘쳐 나지만 정작 내가 마실 물은 없다”는 말이다. 모든 성직자나 교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오늘 기쁘게 살리라. 이유인즉 내가 뿌린 복음의 씨가 오늘도 여러 곳에서 자라고 있으니 기쁘고 감사할 뿐이다. 뿌려진 씨가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기도하는 것이 오늘 나의 몫이다. 오늘도 기쁜 이유는 따뜻한 정이 차고 넘치는 예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복음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기쁘게 사는 우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