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철 장로는 현재 중앙아시아선교회를 설립해 중앙아시아 키리키즈 공화국을 지원하고 있다. 사업을 하던 중 장애인 구호단체의 한 백인 할아버지를 만났는 데 자신도 인공심장을 어께에 메고 사는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입양된 장애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그에게 큰 자극이 됐다고 한다.

정 장로는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고자 현재 중앙아시아선교회를 통해 키리키즈 공화국 비쉬켁에서 선교하고 있는 장금주 선교사를 돕고 있으며 모슬렘 나라에서 정규 크리스천 대학을 인허 받아 운영해 활발하게 의료사역과 구제 사역도 펼치고 있다. 정기철 장로의 중앙아시아선교회 사역을 좇아가 보자. - 편집자 주- ]

▲중앙아시아 선교회 대표를 맡고 있는 정기철 장로
<1부 동양의 스위스 키리키즈>
내가 키리키즈를 처음 방문한 것은 1999년 10월 초순이었다. 나는 선교사님이 입이 마르도록 자랑한 동양의 스위스 키리키즈를 찾기 위해 중앙아시아 지도를 펼쳐 보았다.

한참을 헤맨 뒤에야 아프가니스탄 위쪽에 있는 소국 키리키즈를 찾아냈다.엘에이 공항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 다음날 새벽에 한국에 도착한 후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공항에 도착한 것은 그 다음날 깜깜한 새벽이었다. 아직도 소련군 제복을 입고 있는 공항직원들은 얼음처럼 쌀쌀 맞았다.나는 영어도 한국어도 통하지 않은 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두 시간이 나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은 급행료 50불을 쥐어주고 통관 수속을 마쳤다. 선교사님은 모슬렘 땅에서 혹시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나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며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새벽 두시쯤 알마티를 떠난 우리는 사막 길을 쉬지 않고 달려동이 틀 무렵이 되서야 겨우 목적지인키리키즈 공화국의 수도인 비쉬켁 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시에 허름한 기와집과 시민 아파트들이 보였다.거리엔 소련에서 만들었다는 구형 피아트 자동차들이 굴러다닌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70년대 전주시에 들어섰다는 착각이 들었다.눈이 덮인 산정아래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초원이 있고 그곳에서 양을 치는 순진한 목동과 아리따운 주인집 아가씨가 수채화 같은 사랑을 꽃피우는 알프스 산을 기대했었는데.....나는 밤낮이 두 번 바뀌도록 긴 여행 동안 내내 부풀었던 기대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한순간에 빠져 나갔다.

1주일의 선교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휴식 차 이스쿨 호수로 로 향하였다. 고물 도요타 미니밴을 빌려서 털털거리며 국도를 달리는 동안 길가에 늘어선 포플러 가로수들이 노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긴다. 개천에서 고기를 잡던 아이들이 손바닥만 한 안드레 고기를 몇 마리씩 들고 서서 우리에게 손짓을 하며 사라고 유혹을 한다. 노오란 들판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들이 보이고 횡단하여 가는 소떼들로 인하여 차들이 모두 멈추기도 한다.

중국과 국경을 하고 있는 산정호수인 이스쿨은 정말 아름다웠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 속으로 만년설이 덮인 웅장한 텐산이 잠겨 있었고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한 숲 사이로 예쁜 빨간 지붕의 별장들이 보였다. 브레즈네프가 묵었다는 별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받아 활짝 핀 장미꽃 화원을 바라보며 목장에서 방금 짜온 우유를 끊여 만든 수프와 기다란 쇠꼬챙이에 찔러서 잘 구운 양고기 맛이 그만이다.

키르키즈 공화국은 남북한을 합친 것 만한 면적에 전체 인구는 500만을 조금 넘는데 수도인 비쉬켁시에150만 명의 인구가 몰려 살고 있으며 전 국민의 95%가 모슬렘이다.그리고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제일 먼저 독립했으며 이웃나라를 한 번도 침범한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한다.

김지하 시인은 "문명의 시원을 찾아서" 에서키리키즈인은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했는데정말 그들의 얼굴과 생김새가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고 풍물과 풍습도 우리와 많이 비슷함을 알았다.

키리키즈의 "키리"는 고구려의 "고리" "커리"에서 유래되었고 이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름인 "촐본" 도 고구려의 졸본에서 유래되었다 한다.키리키즈인들은 우리처럼 대가족 제도를 지키고 있으며어른들을 공경하고 정이 많으며 손님접대를 좋아하는 민족이다.또 젊은 총각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보자기로 싸서훔쳐와 결혼을 하는 우리의 보쌈과 비슷한 칼림이라는 결혼 제도도 있다.

귀국 전날 밤 고려인인 교회 할머니의 회갑 잔치에 참석을 하였다. 할머니의 가족들은 연해주에서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한다.그런데 갑자기 시작한 스탈린의 이민족 이주정책으로 들판에 누런 곡식들을 추수하지도 못하고 목적지도 모른 채 강제로 기차 화물칸에 실려 소 돼지처럼 먹고 자고 용변도 보며 중앙아시아 키리키즈까지 끌려오게 됐다고 한다. 또 눈물과 한숨 속에 3개월씩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고 죽음의 여행 끝에 겨우 생명을 유지한 사람들은 눈이 하얗게 덮이고 사람도 없는 황량한 들판에 그냥 내팽개쳐졌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언젠가 돌아갈 조국을 생각하며 꽁꽁 언 땅을 파서 움막을 짓고 겨울을 지내고 봄에 척박한 땅을 개간해 씨를 뿌려 농사를 지었다 한다.구소련 시절 대학교 교수를 지냈다는 이 할머니는 우리가 장선교사님 만나 예수를 믿었더니만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하셔서 아들이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돼 키리키즈 군의관중 처음으로 미국의 의대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을 한다.

아프간 전쟁으로 인해 키르키즈에미군들이 주둔함으로 이젠 비쉬켁시도 많이 변하였다. 도시 전체가 공사를 하느라 중장비들의 소리로 요란하고 하루가 다르게 골목마다 새로운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다. 백화점마다 가득 찬 서방 물품들이 손님들을 유혹하고 길거리엔 쭉쭉 빠진 아가씨들이 예쁜 몸매를 자랑하며 활보한다. 선교 센타에서 일하는 스텝이 친구가 금광을 불하 받았는데 합자로 개발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나에게 투자를 권한다.

KGB 부국장이라는 사람이 고려인 식당에 우리를 초청하고 키리키즈 정부는 서방세계에 자유롭게 투자를 개방하며 수익금의 환수를 보장한다며 유전 개발과 도시개발에 미국과 한국의 투자가들을 유치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미모의 키리키즈 아가씨가 유창한 영어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자신은 키리키즈에 있는 캐나다 금광회사에서 일하는데헬리콥터로 현장 출근을 한다고 자랑을 하며 명함을 건네어 준다.

수천 년의 세월을 양만 기르고 살던 유목의 나라키리키즈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가깝고 문화적으로 아랍권에 더 가까운 중앙아시아 소국 키리키즈가 서방 세계에 문을 활짝 열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동양의 스위스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며 이곳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