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한 여인이 우리 교회에 찾아왔다. 자신이 뉴올리언스에서 사업도 제법 크게 하던 사람인데,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서 모든 것을 잃고, 이곳 LA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다시 그곳으로 가야 되는데, 여비가 없으니 돈을 좀 빌려 달라는 것이다. 얼핏 들어도 99%는 진실이 아니었다. 그런데 ‘목사는 알면서도 속아줄 때가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 때문에 약간의 돈을 드리고는 기도해 드렸다.
그런데 그 후 1년이 훨씬 지난 어느 주일 날, 그 여인이 우리 교회에 다시 찾아와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내가 드린 돈을 갚았을 뿐 아니라 감사헌금까지 하고 가셨다. 나는 아직도 그 여인의 정체(?)가 궁금하다.
한국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 승무원이 키가 크고 미모가 뛰어나다. 나는 한국 항공사들이 승무원 채용기준으로 외모를 우선적으로 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비행기를 타면 양쪽 선반에 짐을 넣는데, 그 곳에 손이 닿으려면 키가 165cm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승무원이 짐 넣는 것도 도와주고, 문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비상사태 때 승객을 도우려면 신체조건이 뛰어나야 된다고 하니 그것도 이해가 된다.
사람이 성숙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은 쉽게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종종 눈에 보이는 대로, 혹은 남들이 말하는 대로 누군가를 평가하다가 나중에야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을 알려면 함께 노름을 해보거나 여행을 떠나봐야 한다는 말이 그래서 일리가 있다.
예수님도 자신을 부분적으로 평가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욕을 당하고 비난을 받았고, 결국은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너무나 잘 알 뿐만이 아니라, 늘 암송까지 하던 사람들이었다. 역시 사람을 쉽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유형이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쉽게 말하고 평가할 때가 있다. 오해를 받는 사람은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주 사소한 문제가 큰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미숙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반면에 성숙한 공동체는 그에게 감추어져 있는 좋은 부분에 집중해서 그것이 극대화되도록 도와준다.
직업이 목사인지라, 누굴 만나도 한 두 마디 해 보면 대충은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래도 그 사건이나 그 사람에 대해서 쉽게 평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사건과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할 수 있는 한 선대(善待)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도 나에게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