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잘 아는 목사님이 책을 썼다고 보내왔는데 제목이 “견고한 고독”입니다. 그 책에 보니 폴 틸릭의 이런 말들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홀로이다. 그것은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다….자신의 삶의 한복판으로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자만이 자유 할 수 있고, 홀로 고독할 수 있는 자만이 스스로 인간임을 천명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위대성이며, 동시에 인간이 지고가야 할 짐이다.”
후배목사가 엊그제 전화를 해서 “목사님, 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사는 맛을 느끼고 힘이 나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일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분은 여러 면에서 대단히 우수한 실력이 있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혼자 일하는 환경이 되니 실력발휘가 되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는 것입니다. 혼자 일하는 환경이라는 것은 ‘견고한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의 환경이기 때문에 자유 함이 아니라 방황과 태만, 인간의 위대성이 아니라 연약함이 들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무엇보다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할 믿음의 동지들입니다. 그런데 홀로 있음의 견고한 고독을 통해 자기 자신이 낮은 곳에 있으나 높은 자리에 있으나 없으나 있으나 환경에 좌지우지 당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고 자유 할 줄 아는 지경에 이르게 된 사람들이 만나야 합니다.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 위로 받으려는 수준에서 모이는 것은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합니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은 본질적으로 다른데 이 세상 문화는 홀로 있음을 통한 성숙보다 외로움을 쉽게 타게 만드는 시끄럽고 현란한 문화인 것 같습니다. 견고한 고독이란 하나님과 홀로 만남을 아는 사람이 가지는 품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 홀로의 시간을 항상 지키셨습니다.
옛날 나의 스승께서 어느날 부르시더니 “김목사, 목사는 항상 따듯하기만 하면 안되네 가슴이 서늘해지는 하늘의 소리도 말해야 하고 하늘을 보고 자신을 보아 슬피 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지…”하셨습니다. 그 어른은 어느날 서늘한 하늘의 말씀을 듣기 보다 헛된 말하기에 분주한 교인들을 향해 교회 예배당 문 앞에 “오늘부터 저는 여기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란 방을 붙이고 홀연히 떠났던 기인이셨습니다. 생존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 말씀 전하는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목사들에게 “아니다!”라 하신 분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에 관심이 없으면서 세상에서 잘못 배운 나쁜 버릇으로 교회를 망가뜨리는데 익숙한 교인들에게 “아니다!”를 선언한 분입니다. 저의 약점을 너무도 아프게 항상 지적해 주셨던 그 어른이 가끔 생각나고 요즘 그분이 말씀하시던 서늘한 가슴의 사랑을 조금 이해할 듯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시끄럽게 지내는 자리를 가능한 피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다녀오면 나를 잊어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생각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만남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던 세상의 울타리도 좁히고 있습니다. 웨슬레가 말하는 성화를 위한 과정에서의 나의 변화는 세상의 변화를 위해 쓰임 받아야 한다는 소명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예배도 그렇고 기도의 시간도 견고한 고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만남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떨어지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에서 고독이란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마음은 다시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구요. 그래서 기도할 때에 가능한 사람들이 듣고 있는 것에 큰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설교도 교인들을 감동시키려고 이런저런 재주부리는 것은 가능한 자제합니다. 내가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 하나님 말씀과 만나고 그 말씀 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가능하면 내가 만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나누려고 합니다. 감동은 성령께서 주셔야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쓸모 있게 하시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체험하는 뜨거운 은혜와 절대자 앞에 홀로 설 때의 서늘한 두려움이 오늘도 내 마음속에 교차합니다.
후배목사가 엊그제 전화를 해서 “목사님, 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사는 맛을 느끼고 힘이 나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일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분은 여러 면에서 대단히 우수한 실력이 있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혼자 일하는 환경이 되니 실력발휘가 되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는 것입니다. 혼자 일하는 환경이라는 것은 ‘견고한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의 환경이기 때문에 자유 함이 아니라 방황과 태만, 인간의 위대성이 아니라 연약함이 들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무엇보다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할 믿음의 동지들입니다. 그런데 홀로 있음의 견고한 고독을 통해 자기 자신이 낮은 곳에 있으나 높은 자리에 있으나 없으나 있으나 환경에 좌지우지 당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고 자유 할 줄 아는 지경에 이르게 된 사람들이 만나야 합니다.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 위로 받으려는 수준에서 모이는 것은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합니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은 본질적으로 다른데 이 세상 문화는 홀로 있음을 통한 성숙보다 외로움을 쉽게 타게 만드는 시끄럽고 현란한 문화인 것 같습니다. 견고한 고독이란 하나님과 홀로 만남을 아는 사람이 가지는 품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 홀로의 시간을 항상 지키셨습니다.
옛날 나의 스승께서 어느날 부르시더니 “김목사, 목사는 항상 따듯하기만 하면 안되네 가슴이 서늘해지는 하늘의 소리도 말해야 하고 하늘을 보고 자신을 보아 슬피 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지…”하셨습니다. 그 어른은 어느날 서늘한 하늘의 말씀을 듣기 보다 헛된 말하기에 분주한 교인들을 향해 교회 예배당 문 앞에 “오늘부터 저는 여기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란 방을 붙이고 홀연히 떠났던 기인이셨습니다. 생존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 말씀 전하는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목사들에게 “아니다!”라 하신 분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에 관심이 없으면서 세상에서 잘못 배운 나쁜 버릇으로 교회를 망가뜨리는데 익숙한 교인들에게 “아니다!”를 선언한 분입니다. 저의 약점을 너무도 아프게 항상 지적해 주셨던 그 어른이 가끔 생각나고 요즘 그분이 말씀하시던 서늘한 가슴의 사랑을 조금 이해할 듯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시끄럽게 지내는 자리를 가능한 피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다녀오면 나를 잊어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생각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만남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던 세상의 울타리도 좁히고 있습니다. 웨슬레가 말하는 성화를 위한 과정에서의 나의 변화는 세상의 변화를 위해 쓰임 받아야 한다는 소명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예배도 그렇고 기도의 시간도 견고한 고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만남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떨어지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에서 고독이란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마음은 다시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구요. 그래서 기도할 때에 가능한 사람들이 듣고 있는 것에 큰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설교도 교인들을 감동시키려고 이런저런 재주부리는 것은 가능한 자제합니다. 내가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 하나님 말씀과 만나고 그 말씀 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가능하면 내가 만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나누려고 합니다. 감동은 성령께서 주셔야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쓸모 있게 하시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체험하는 뜨거운 은혜와 절대자 앞에 홀로 설 때의 서늘한 두려움이 오늘도 내 마음속에 교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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