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가장 행복이라면 "아무런 탈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이 말은 건강하고 삶 가운데서 비극적인 아픔이 일어나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 이러한 세상은 주어질까? 그것은 결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인간의 삶에 고통과 아픔은 인간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증거이며 또 다른 하나는 악(惡)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에덴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지 말하고 한 것을 사단의 유혹에 의해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 시작이다. 그 이후부터 인간은 주님을 만나 구원함을 받을 때 까지 원죄(原罪)의 속성이 계속되어 죄에 결코 자유하지 못한 삶을 산다. 이것에 대한 결과로 인간은 죄와 갈등하며 살아가게 되고 죄을 짓게하는 사단과 원수의 삶을 살게 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말은 악은 인간이 선을 향해 계속 빛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방해꾼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흠이 없고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악을 정복하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는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악을 정복하시고 멸하시는 하나님이 만드신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멸하고 어두움에 가두려고 하는 원수에게 엎드려 절하고 그 가르침을 따라간다.
이것은 인간이 시대의 사상과 문화의 변화에 따라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인간이 세상에 중심이 되어 지나친 인본주으로 타락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에 발 맞추어 교회들이 세상의 사상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고 그들과 함께 혼합하여 성경에서 가르치는 창조론이 무시되고 인본주의적인 윤리적인 기독교로 전락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창조론이 경시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사랑을 통한 죄인들의 죄를 사하는 구원론과 부활을 통해 영원한 삶을 살아간다는 진리가 희석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세계에 도전하려고 하는 세력은 인류의 역사 속에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지만 구체적으로 기독교에 영향력을 준 것은 1859년 영국의 자연주의 학자인 찰스 다윈이 발표한 [종의 기원]론에서 주장하는 진화론이다. 이것은 상위동물은 하위동물에서 부터 진화한 것이며 이러한 자연 개념을 이용하여 적자생존의 사상을 부각시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식민통치 하게 하고 교회가 거기에 협력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이 학교에도 영향력을 주어 미국의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는 성경공부가 사라지고 학교들마다 진화론을 가르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50년도 지나지 아니하여 동성연애와 동성결혼이 부각이 되어 미국 연방법원에서 2015년 6월 26일에 합법화 시키는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이에 합세하여 교회들도 동조를 한다는 것은 시대적인 사상이 진리인 하나님 말씀보다 우선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창조론 까지도 위협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중성으로 표현하여 바꾸자고 교회안에서 거론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더 이상 인내하시지 아니할 것이라고 본다. 최근 뉴욕의 거리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여성의 상체를 노출하는 것을 법적으로 정당화 하자는 것이 었다. 이러한 것들이 인본주의에서 주장하는 인권의 정당성이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미래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볼수 있다. 인본주의에서 주장하는 인권의 정당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타락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과 또 다른 노아의 홍수와 같은 재난을 이 지구상에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문화와 역사는 영원할 것이라고 여기는 진화론적인 시각은 하나님의 역사에서 볼때 그리 오래 가지 아니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역사를 통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상을 볼때 마다 앞으로 다가올 세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할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참으로 두렵다. 혹자는 이러한 세상을 두고 말세라고 이야기 하고 주님이 속히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심판하시기를 바라고 "하나님께서는 왜 악한 세상을 그냥 내버려 두시냐고" 호소를 한다. 그리고 어떤이들은 "주여 이땅을 고치소서"라고 눈물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다.
이것에 대한 답변은 마태복음 13장:29-30절에 나온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다 추수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말은 주님은 다시오셔서 이땅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렇지만 믿는자가 해야할 일은 주님이 이땅을 고쳐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와 악과의 영적 전쟁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
지난 몇주 전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피켄스 카운티에 위치한 리버티 고등학교의 졸업식에 놀라운 일이 일어 났다. 그것은 졸업생 대표로 연설에 나선 로이 코스터너 4세가 강대상에 서서 학교에 제출한 연설문을 학생들이 보는 데서 찢고 자신이 가져온 다른 연설문을 읽은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주기도문"이었다. 그러면서 그가 이야기 하기를 "학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비극은 마음대로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이 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절대적이며 학교안에서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지만 학생이 기도하는 것을 제재를 한다면 거기에는 더 이상 진정한 자유와 기쁨이 없다는 것이다. 한 학생의 용감한 행동이 두려움과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음속에 감추어 두었던 것을 대신 표현한 그는 다른 학생들로 부터 진정한 박수를 받았다. 이제 교회는 인본주의에서 벗어나 신본주의 즉 하나님 중심의 근본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창조론과 구원론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고 이것을 위해 교회는 계속적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선교를 해야 한다. 주님은 이땅을 고치시기 위해 이슬람지역에 수 많은 선교사를 보내시어 그들의 영혼이 예수님을 빠른 속도로 영접하도록 일을 하시며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 1억 5천명을 기독교인으로 만드셨으며 그들을 통해 세계에 100만 선교사를 파송하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교회들이 제대로 가지 못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촛대를 옮기신다. 그리고 주님은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이땅을 통치 하실 것이다. 이것을 믿은 우리는 마지막까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진리를 지키기 위해 영적인 전투을 해야 한다.
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교회웹:thecreeksidechur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