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청소년들은 예수님을 불편한 존재로 여기기에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면 한 세대를 잃어버릴 수 있다 생각한다. 십대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또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그리고 여러 기독교 학교의 설문 조사 자료를 근거로 해서 왜 청소년들이 예수를 (그리고 더 나아가 기독교 자체를) 불편하게 인식하는지 시리즈로 살펴 보고자 한다. 첫 호에서 제기한 바, 청소년들이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 10가지 이유에 대해 각각 해답을 제시해 가려 한다.
10.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한번 살다 가는 인생, 내 맘대로 살아 보자)
성경의 하나님,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을 거부하는 무신론자들의 철학은 바로 허무주의(nihilism)다. 그러니까, “인생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며, 영생이란 것은 망각에 불과하다면, 그냥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살다 죽자”란 주장이다.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의 “인빅터스”란 시를 들어 보았는가?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나는 그 어떤 신이든, 신께 감사하노라
내게 정복 당하지 않는 영혼을 주셨음을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서
난 움츠리거나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운명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아
내 머리는 피 흘리지만 굴하지 않노라
분노의 눈물이 이 땅을 너머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비록 문이 좁을지라도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첫 부분은 마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견고한 의지를 갖고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는 듯 하다. 그러나, 끝 부분엔 헨리의 생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비록 문이 좁을지라도”란 예수님이 마태복음 7장 13절에 말씀한 “좁은 문” 그러니까 힘들고 어려운 천국길을 말하고, 또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는 그 좁은 길을 택하지 않았을 때 도착할 지옥을 말하는데, 헨리는 천국이든 지옥이든 상관없이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겠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자 내 영혼의 선장이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시나 노래가 얼마나 많은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 한국 70,80세대의 힛트곡 “내 인생은 나의 것” 다 그런 맥락의 노래다.
그러니 이런 사고를 갖고 있는 자가 못할 짓(?)이 있겠는가? 물론, 큰 범죄를 저지르는 자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욜로'의 사상 하에 삶을 살아간다면, 매사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될 수 있겠고, 특히 미성숙한 청소년은 이런 태도와 자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우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청소년은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나 듣고 싶은 음악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고, 절제와 정직을 요구하는 부모나 교사의 권위에 대들고 반항하며, 거침없이 남을 비하하고 비수같은 말로 상처를 주며, 공부나 책임완수보다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택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참 딱할 정도로 어리석으며, 미성숙함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며 어른이 되어, 또 부모가 되고, 조직의 리더나 중책을 맡은 사람이 되면서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 말씀 묵상과 연단을 통해 신앙의 성숙함을 이뤄가며 배우고 느끼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인생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를 읽어보고 또 그 책의 내용대로 40일 새벽기도나 강해설교를 들어본 사람은 릭 워렌 목사가 한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목적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다"란 것이다. 이것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대로 표현한다면, Man’s primary purpose is to glorify God and enjoy Him forever, 즉, 인생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기는 것이란 말이다.
잠언 3장 5-8절에서도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를 신뢰한다는 뜻은 인간이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범사에 그를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100% 받아들이는 것이다.
잠언 3장 5-8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지식을 의지하지 말아라. 너는 모든 일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그러면 그가 너에게 바른 길을 보이실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라. 이것이 너에게 좋은 약이 되어 너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감으로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YOLO 철학과 정반대 되는 가르침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청소년의 중심에 YOLO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이들에겐 정도와 정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하나님이 불편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이런 하나님을 가르치는 교회가 불편한 곳일 수밖에 없다.
이런 청소년의 마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가짐이다. 이 세대 교회와 목회자, 주일학교 교사, 그리고 기독교 학교 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믿는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돌리게하라: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4, 5)
이것은 영적 전쟁이요 전신갑주를 필요로 함을 잊지 말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2)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롭고 깨끗한 마음을 청소년이 소유하도록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한 뜻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합당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장)
이런 거룩한 목적을 이루려는 좋은 교회학교 교사와 기독교 학교 교사, 그리고 청소년 사역자들이 많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익과 쾌락보다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위해 삶을 바치는 그런 차세대 리더를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