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규 목사
김병규 목사

잘못된 신앙의 기준은 바꿔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상 가운데서 헤매고 있습니다. 특별히 불신자들은 눈에 보이는 형상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의 우상까지 따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조금 눈에 좋게 보여 지는 부분들에 종교라는 미명아래 계속 따라가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 다니는 신앙인들마저도 바른 신앙의 기준과 영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실패를 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이 신앙의 응답을 받으면 이 땅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참된 누림의 신앙생활을 회복하면 현장은 다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왜 내 신앙생활이 바르지 않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자기 민족이 실패한 이유를 보았습니다. 끊임없이 우상을 섬기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 현장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 현장을 보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뜻을 정하였습니다. "내가 우상 제물 앞에 드려진 제사 음식을 먹지 않겠다. 그 왕의 진미로 나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을 정했습니다.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우상 앞에 드려졌던 음식을 먹지 않기로 하나님 앞에 뜻을 정했습니다. 결심만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응답과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복음 안에 들어와서도 율법주의를 쉽게 버리지를 못합니다. "해야 된다, 하지 말아야 된다."기준 안에서 그 행위와 전통과 형식과 제도에다 기준을 두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계속해서 비판하고 정죄하고, 거기에 맞으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것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니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 받지 못했습니다. 즉,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푯대가 옮겨진 비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행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그것이 전부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자꾸 행위에 신앙의 기준을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심과 노력과 선행과 구제하는 일과 사회참여 하는 일에 신앙의 기준을 둡니다. 교회는 그런 것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생명운동을 하는 곳입니다. 그리스도 운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신앙의 기준을 깨닫지 못하면 그 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속임수 입니다. 어느 날 복음이 희미해진다면 그 위험성이 누구에게든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 걸고 복음운동을 해야 합니다. 참 복음가진 그리스도인 이라면 계속해서 이 복음과 신앙의 파수꾼 역할을 감당하는 것으로 잘못된 신앙의 기준을 바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