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동은 과거 비잔틴 기독교 제국으로서 복음의 중심지였으며 신학의 요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이슬람화되었다. 유럽 또한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곳이며 개신교의 요람이었다. 그러나 현재 유럽도 이슬람화되어가고 있으며, 단지 시간이 조금 남았을 뿐이다. 이제 이슬람은 한국으로 오고 있다. 앞으로 10년 안에 한국의 이슬람은 약 100만 명에 육박할 것이다.
이슬람은 왜 기독교가 번성했던 나라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이슬람의 성장으로 인하여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피해를 본다는 것이, 중동과 유럽의 교회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역사적인 교훈이다. 먼저 한국교회는 이슬람에 대한 몇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첫째, 이스마엘에 대한 오해
이슬람에 대한 오해는 갈라디아서 4장 21-31절에서 시작되었다. 바울은 영과 육에 대한 비유를 말하면서, 이스마엘과 이삭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은 이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상관 없이, 이 이야기를 마치 이스라엘과 아랍의 투쟁관계에 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거절하신 적이 없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냈을 때도, 하나님은 기적같이 그들을 보호하셨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난 것은 사라의 질투 때문이었지 하나님이 저주하신 것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축복하셨다. 이 축복은 유다와 다말, 그리고 라합과 다윗의 부인 밧세바에게 내리신 축복과 비슷하다. 그들은 부적절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다. 하갈 또한 마찬가지다.
이스마엘에 대한 또 한 가지 오해는 이스마엘의 후손이 곧 아랍인이라는 것이다.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은 이스마엘의 진정한 자손이 아니다. 이는 이슬람의 주장일 뿐이다. 이스마엘이 메카에서 살았다고 하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성경에 의하면 이스마엘은 시내산 위의 바란 광야에 살았으며,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였다(창 21:21). 또한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이집트에 살고 있었다(창 37:25). 이스마엘이 메카로 갔다는 것은 이슬람의 주장이다. 이에 대하여 영국 학자 윌리엄 뮈르(Sir William Muir, 1819-1905) 경은, 이스마엘이 메카로 갔다는 것과 아브라함이 그를 찾으러 메카로 갔다는 이야기를 모두 부정한다. "이것은 이슬람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 유대인들이 아랍인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연관지어 아브라함을 만인의 아버지로 삼기 위해서 지어낸, 이스라엘화의 하나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A.D. 70년 로마의 티토(Titus)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대인들이 아라비아에 이주하여 정착할 때, 유대인들은 아라비아 반도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을 이삭의 형인 이스마엘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면, 자신들이 이삭의 후손이기에 환대를 받을 자격이 생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하여 아랍인들과 교역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리비아인들은 이스마엘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 후에 이슬람의 팽창과 함께 아랍어와 아랍 문화가 퍼지면서 '아랍'이란 용어가 전체 중동을 대표하게 되었지만, 모든 중동 사람들이 아랍인이 아니며 또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둘째, 이슬람에 대한 무지
필자는 영국에서 17년을 살았다. 유럽에 약 5400만 명의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자녀가 무슬림과 교제를 한다거나 혹은 결혼을 하는 등 이슬람에 대하여 억지로 도전을 받지 않는 한,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하여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무슬림들이 유럽에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교회는 그들을 위한 선교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이슬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교회가 변하여 이슬람 사원이 되고 수천 개의 이슬람 사원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이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무함마드는 "이슬람은 서쪽에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오늘날 그 예언이 실현되듯이, 이슬람은 유럽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 유럽의 무슬림 인구는 1970년 720만 명에서 1990년대에는 1,300만 명으로, 2000년에는 3,700만 명으로 늘어났다. 2007년을 기준으로 약 5,300만 명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한국교회도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상황이 되지 않아야 한다. 기독교가 발전하고 융성했던 곳들이 이슬람으로 대체된 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기독교가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골고다산 위의 십자가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때 이슬람이 몰려왔고, 그에 대항할 만한 능력을 상실한 채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는 그 주권을 이슬람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지금 한국교회가 유럽의 전철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이슬람이 어떤 종교이며, 그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이슬람에 대해 배워야 한다. 중동의 과거와 유럽의 오늘을 배워야 한다. 이슬람의 성장이 중동처럼 유럽처럼 한국에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슬람에 대하여 배우지 않는다면, 어제의 중동이 오늘의 유럽이 되었듯이 오늘의 유럽은 한국의 내일이 될 것이다.
셋째, 무슬림에 대한 심리적 원수 상태
서구교회는 너무 오랫동안 무슬림의 심리적인 원수 상태에 있었다.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 무함마드의 마지막 전쟁은 비잔틴 기독교제국의 헤라클레스 황제와 벌인 것이었다. 그 후로도 약 1400여 년 동안 중동 이슬람과 서구 기독교는 언제나 갈등관계였다. 약 200년 동안 계속된 십자군 전쟁 이후, 오스 투르크의 술레이만 대제(Suleyman the Magnificent)는 유럽을 공략하였다. 1521년 베오그라드를, 1523년 로도스 섬을, 1526년 헝가리를 함락시켰다. 1529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을 포위했다. 최근에는 1990년 약 27만 명의 보스니아 무슬림들이 무차별하게 학살당하였다. 오늘날도 무슬림은 언제나 과격한 사람, 테러리스트, 종교적인 광신자, 그리고 선민인 유대인의 원수로 비춰져 왔다. 이로 인하여 성경이 아랍어로 번역된 것은, 무함마드에 의하여 이슬람이 시작된 지 227년이 지난 837년이었다. 아랍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다고 해도 정작 아랍어 성경이 출판된 것은 1516년이다.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서구의 이슬람에 대한 심리적 원수관계로 인하여, 전 세계 무슬림들의 80%는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잃어버린 양으로, 사단에 의하여 억압된 포로로, 진정한 복음을 듣기 위하여 기다리는 사람으로, 무슬림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일서 4:16). 하나님은 유대인은 물론 무슬림도 사랑하신다. 사랑하라는 것은 그것은 조건부적인 권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멀리하고 무시했던 것처럼, 지난 교회의 역사 속에서 서구 교회가 무슬림들을 무시하였던 것에 대하여 반면교사로 삼아 새롭게 그들을 인식해야 한다.
넷째, 이단으로서의 이슬람
교회사에서 "이슬람은 이교도인가, 아니면 기독교 이단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교도 논박대전』이라는 저서에서 이슬람을 이교도로 보았다. 이단으로 보았던 사람은 요한네스(Johannes)였다. 그는 무함마드가 죽은 지 약 20년 후에 태어났다. 만수르(Mansour)의 명문가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이슬람 군주 무아위야 1세(Muawiyah 1, 602-680) 아래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저술인 『지식의 근원』 "제2부 -이단에 관하여"에서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그 이유는 "무함마드가 이단이었던 아리우스파 수도사에게서 정보를 받아서 이슬람을 시작했으며, 비록 꾸란에서 예수님을 알라의 말씀이자 영으로 언급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단이다"라고 했다. 존 칼빈은 요한일서 4장 2절과 3절을 근거로 이슬람을 "예수님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는 8세기에 이미 이슬람을 기독교적 이단으로 간주하였던 요한네스의 입장을 따랐다. 또한 츠빙글리는 무슬림에 대하여 전쟁의 대상이 아니라 선교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꾸란의 약 60%는 구약성서와 비슷하며, 약 6-7%는 신약성서와 비슷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슬람에 대한 연구는 한국교회에서 활발하게 진행해야 한다. 더불어 이슬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다섯째, 선교를 무시한 교회의 책임
이슬람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무엘 츠머(Samuel Zwemer, 1867~1952)의 기록에 의하면, 1930년에 전 세계 이슬람 인구가 2억 3백 명이었는데,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는 28명밖에 없었다. 선교는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만, 기독교인들은 18세기 후반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특히 이슬람권에 선교사를 보내지 않았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이슬람은 경계해야 하지만, 무슬림들은 복음을 듣고 싶어한다. 무슬림의 80%가 한 번도 복음을 들은 적이 없다. 무슬림들에게 다가가는 데 신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필요할 따름이다. 교회 역사 속에 안타까운 실화가 있다. 몽고를 통일하고 세계로 뻗어갔던 칭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Kublai Khan, 1215~1294)은 기독교에 대하여 우호적이었고, 그의 두 형제는 기독교인이었다. 쿠빌라이 칸은 원나라를 통일하는 데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자들로 하여금 5대 종교를 연구하게 하였다. 그 중에서 기독교를 선호하여 당시 교황에게 100명의 선교사를 보내 달라고 마르코 폴로를 통하여 요청했다.
그러나 구교회는 그것을 거절하였고, 20년이 지난 뒤에 1289년 교황 니콜라스 4세가 선교사 두 명을 보냈는데, 그나마 한 명은 도중에 죽었다. 결국 불교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고, 몽고가 오랫동안 지배했던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국가들이 되었다. 선교에 있어서 이슬람권에 대한 관심은 매우 저조하다. 따라서 이제 한국교회는 더 늦기 전에 이슬람권에 선교사를 보내고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서구 교회가 이슬람권에 사는 무슬림들에게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에,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유해석 선교사
FIM국제선교회 대표
'우리 곁에 다가온 이슬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