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책 <천로역정>을 쓴 작가이다. 그는 1628년 영국 베드퍼드셔의 엘스토우에서 가난한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세상에 대한 부정과 반항으로 가득 찼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를 정신차리게 해준 사람은 20살 되던 해 결혼한, 신앙이 깊은 첫 아내였다. 아내가 읽는 신앙서적들을 통해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니언이 길을 가는데, 어떤 집 앞에 여인들이 모여 앉아 거듭남을 기뻐하며 자신들이 지은 죄를 애통해하고 있었다. 이 평범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평생을 살면서 들은 어떤 설교에서보다도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버니언은 자신이 그 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그 여인들이 발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랜 영적 방황 후에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고, 전도자와 설교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660년 3월 12일, 그는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베드퍼드 감옥에서 12년간 형을 살게 된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죄수들에게 설교하고 여러 권의 책을 썼다. 1667년부터 1672년까지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천로역정>을 쓰는 데 바쳤던 것 같다. 1678년 출판된 이 책은 여러 세대 동안 영어권의 독실한 신자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깊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버니언 자신의 영적 생활에 기초를 둔 풍유적 이야기이다. 이 우화 소설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황무지를 걷던 나는 어떤 동굴에 들어가 불을 밝힌 후 잠을 자려고 몸을 뉘였다. 그러고는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 한 남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어떤 곳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집을 나온 듯한 몰골에 손에는 책을 들고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쳐 그 안의 글을 읽었다. 책을 읽던 그는 흐느껴 울며 몸서리쳤다. 그러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통곡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꿈 속의 사나이(크리스천)가 읽고 있던 성경은 그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멸망의 도시가 머지않아 파멸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가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전도자가 그에게 다가와 "이곳을 떠나 시온성으로 가야만 한다"고 알려주었다. 식구들은 그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멸망의 도시'를 떠난 크리스천은 여행 중에 줏대 없음, 고집, 세상 현인, 위선, 형식, 의심, 겁쟁이, 불안 등을 만난다. 또한 이 작품에는 자만, 거만, 자기기만, 세상 명예, 수다쟁이, 미신과 시기, 절망의 거인, 무신론자도 등장하여 크리스천의 여행을 방해했다. 크리스천은 위험한 여행을 하는 동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허영의 시장(Vanity Fair), 의심의 성(Doubting Castle) 등 다양한 장소들을 거쳐간다.
결국 그는 낙담의 수렁을 지나 십자가 밑에 이르렀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를 향해 그는 뛰어 올라갔다. 그곳에는 십자가가 서 있었고, 그 아래 바닥에는 무덤이 있었다. 크리스천이 그 십자가 앞에 다다르자, 그의 어깨에서 짐이 떨어져 나가 무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온갖 위기와 유혹을 거친 후 크리스천은 허영의 시장에 만난 '소망'과 함께 하늘의 성에 이르기 위해 강을 건너야 했다. 하지만 그 강에는 다리도 없었고, 수심도 꽤 깊어 보였다. 물 속에서 크리스천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소망'의 도움을 받아 두 순례자는 마침내 함께 강을 완전히 건넜다. 반대편 강둑에서는 빛나는 천사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 성문에 다다르자 천사들은 그들을 맞이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순례자들을 향해 하늘의 성문이 활짝 열렸을 때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성 안은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거리는 온통 금으로 덮여 있었고, 머리에 면류관을 쓰고 손에는 황금 하프를 든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하며 거닐고 있었다."
<천로역정>의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도 상상력이다. 책을 일단 손에 든 독자는 누구나 그 재미에 끌려 끝까지 읽게 된다. 독자의 호기심은 끊임없이 자극되고 고조된다. 이는 이 책의 강한 장점이 다양한 모험과 사건의 전개에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17세기 영국에 살았던 어떤 특정한 신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구원을 추구하는 모든 신자들의 상징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주인공의 육체적·영적 경험과 시련에 동참하게 된다.
문학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교훈을 주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놀랍게도 존 버니언은 <천로역정>에서 이 두 가지 목적을 성취하고 있다. 그가 효과적으로 사용한 우화는 독자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동시에, 신랄한 비평의식을 깨우쳐주기도 한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세계 최고의 풍유 문학작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은 전 세계 10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깊은 감화와 영향을 끼쳤다. 버니언은 추상적인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한 나그네의 모험담을 통해 신자의 영혼이 고투하는 보편적인 모습을 쉬운 문체로 표현하였다. 저자은 이 책에서 소박한 표현과 영어 성경의 어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천로역정>은 기독교 고전으로서 아직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첫 10년 동안에만 10만 권이 넘게 팔렸다. 이 작품은 그 이후 출판을 멈춘 적이 없다. 이 책은 지금까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이 우화 소설에는 유머와 슬픔, 실패와 절망이 있다. 하지만 결국은 바른 신앙의 길을 걷는 영혼을 위한 따뜻한 격려가 주된 메시지를 이루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21세기의 그리스도인도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걷는 데 도움이 되는 나침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