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Photo : ) 권혁승 교수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창 37: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그 약속의 주도권은 이제 아브라함의 4대 후손인 요셉에게로 넘어갔다. 각 세대마다 약속의 계승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대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보여주었다.

아브라함에게는 25년이라는 인내 기간이 필요했다. 그 기간 동안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이 태어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자가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통하여 태어날 이삭이 아브라함의 정통 후손임을 강조하셨다.

이삭에게는 쌍둥이 형제 두 아들이 있었다. 에서가 먼저 태어난 형이긴 했지만, 약속의 주도권은 동생인 야곱에게 넘어갔다. 같은 정통성을 지닌 아들들이라 하여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에게 우선순위가 주어졌음을 보여준다.

야곱에게는 모두 12아들이 있었다. 이들 중에서 11번째 아들인 요셉이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을 주도해 나간다. 요셉이 하나님 역사의 주도적 인물로 선택된 것은, 그의 거룩한 삶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영적이면서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에 의하여 주도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은 큰 집에는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 등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는데, 그 중에서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오직 깨끗한 그릇이라고 하였다(딤후 2:20-21).

요셉은 창세기와 출애굽 역사를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요셉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이방에서 400년 동안 객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창 15:13). 당시 나일강을 중심으로 거대한 제국을 이룩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은 큰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 요셉이다. 그때까지는 가나안을 중심으로 가족 문제가 주된 주제였다면, 이제부터는 이집트와 같은 큰 배경의 세계적인 역사 속으로 중심점이 옮겨졌다. 그러한 획기적인 전환에 적합한 인물이 더 큰 도덕성을 갖춘 요셉이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주체는 조직이나 시설과 같은 외형적 하드웨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과 인격을 갖춘 인물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물이었던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정과 더불어 메시아 계보를 이루는 역사적 흐름의 핵심적 인물이 되었다.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은 예외 없이 훈련과 성숙의 과정을 거쳤다. 요셉도 고난을 통한 성숙의 과정을 거쳤다. 요셉이 겪은 고난은 그의 성결함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요셉의 고난은 성격상 핍박이었다. '핍박'이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생긴 어려움이 아니라, 바르게 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고하게 주어지는 외부의 압박을 의미한다. 요셉이 핍박의 고난을 당하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건이 관련되어 있다.

첫째로, 형들과 함께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는 중에 형들이 저지른 잘못(허물)을 아버지에게 알려준 것이 발단이었다. 요셉과 함께 양을 쳤던 형들은 레아의 몸종이었던 빌하의 소생인 갓과 아셀, 그리고 라헬의 몸종이었던 빌하의 소생인 단과 납달리였다. 야곱이 요셉을 시켜 이들 형들과 함께 양을 돌보게 한 것은 형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감시하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보고한 것이다. 성경은 형들이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재산을 축내면서 방탕한 생활에 빠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아버지에게나 형들에게나 결코 유익하지 않은 일들이다. '말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디바'가 그런 점을 암시한다. '잘못'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아' 역시 범죄의 원인인 부패성을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요셉이 겪은 고난은 어떤 위협이나 유혹에도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요셉의 강직성을 보여준다.

둘째로, 요셉이 꾸었던 두 차례의 꿈 이야기 때문에 형들의 미움은 더욱 심화되었다. 첫 번째 꿈은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것이었다. 이 꿈은 후에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후 그대로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런 점에서 요셉의 꿈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신, 하나님의 예언적 계시였다. 형들이 동생 요셉이 꾼 꿈의 진가를 알았다면, 핍박 대신에 칭찬과 격려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막으려는 적대 세력이 되었다.

셋째는, 양떼를 몰고 먼 길을 떠난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고 오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요셉은 헤브론에서 세겜을 향해 떠났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5일 이상 걸아가야 하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세겜에 도착한 요셉은 그곳에서 형들을 찾을 수 없었다. 형들이 초지를 찾아 더 북쪽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형들이 도단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은 요셉은 주저하지 않고 도단으로 올라갔다. 도단은 세겜에서 하룻길 정도 떨어진 곳이다. 형들을 찾아 도단으로 올라간 요셉은 그곳에서 이집트로 팔려가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아버지의 명령은 세겜까지였는데, 요셉은 도단까지 올라가는 성실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버지가 명령한 세겜까지의 한계와 의무를 도단까지 확장시켰다. 오 리를 같이 가고자 하면 십 리를 함께 가고,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 내주라는 교훈을 몸으로 실천한 셈이다. 의무감을 넘어서서 마음의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곧 도단으로 올라간 요셉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정직이나 성실을 칭찬하기보다 적당한 타협을 오히려 훌륭한 처세술로 미화시킨다. 요셉이 형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면, 그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비위를 맞추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하나님 앞에서 결코 그런 유혹과 타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그런 요셉의 성품과 신앙을 안정하시고 그를 창세기의 마지막 인물로 세우셨다. 그가 하나님의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노예와 죄수로 13년 동안이나 모진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는 고난 속에서 거룩한 꽃을 아름답게 피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