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
전영헌 | 터치북스 | 256쪽
"아이들 사역은 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퍼 주고, 속아 주고, 이용당해 주고, 아쉬울 때만 찾는 목사 선생으로 살고 있다. 나는 항상 뿌리는 자로 살아온 것 같다. 아마 이 삶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라는 메시지에 꽂혀 15년을 살아온 '건빵 목사' 브니엘고등학교 전영헌 교목의 이야기다. 그는 촉망받는 부산의 한 교회 수석부목사로서 서울에 갈 기회도 마다하면서 담임목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갑작스레 브니엘고교 '교목'으로 부름받게 된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임하고 2008년 입학식에 참석했지만, 기도 시간 웅성대고 키득거리는 학생들을 접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절감하게 된다. 미션스쿨이었지만, 그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아니, 이방인도 후하게 쳐 준 것이다. 아이들에게 나는 칠판이나 책상 같은 '사물(事物)'에 지나지 않았다. 교목에 대한 기대감을 떠나, 그저 교실에 있는 물건의 하나처럼 나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목사 선생'은 학생들에게 과감하게 두 가지를 선언한다. 종교 수업인데도 수업 시간 내내 성경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고, 교회 가자는 말도 하지 않겠다는 것. 그러니 수업 시간에 지나친 거부감을 갖지도 말고, 시작 후 5분간만 귀를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5분을 들어도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면, 자습을 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 했던 약속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나는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가르친다. 영향력을 가르치고, 가치를 가르친다. 그리고 이 또한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러한 '역발상' 또는 '파격'은 통했다. 한 달이 채 가기도 전에 "체육 시간만큼이나 종교 시간이 좋다"는 '극찬'을 이끌어낸 것. "그제서야 비로소 미션스쿨에서 종교 수업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숨 쉬게 해 주는 수업,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는 수업,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 깨닫게 해 주는 수업이었다. ... 또한 이를 통해 아이들이 서서히 복음에 반응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교목실을 아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매점'처럼 만들었다. 처음에는 초코파이를 갖다 놓았다가, 한 달 결제 금액이 무려 150만원이나 되자 좀 더 저렴한 '건빵'으로 대체했다. 그는 짐승 같은 남고생들에게 '사료'처럼 건빵을 부대로 사서 풀었고, 이후부터 '건빵 목사'가 됐다. 다행히 건빵은 마음을 여는 도구로 크게 사용됐다.
"아이들은 작은 것에 반응했다. 내가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관심을 갖기보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관심이 있었다. 또한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아이들은, 드디어 내가 무엇을 가르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는 미션스쿨에서의 종교교육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이는 미션스쿨 뿐 아니라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한다. 책에는 이외에도 '아이들이 좋아 같이 놀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예수쟁이로 바뀌어가는' 교목 생활 6년간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