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예수 이야기
조반니 파파니 | 메디치 | 584쪽 | 22,000원
"나는 한때, 신이 되고자 했던 한 사람의 슬픈 인생을 다룬 책을 썼다. 그런데 이제 나이를 먹고 좀 더 성숙해져, 사람 행세를 하는 신의 일대기를 쓰려고 한다."
소설가이자 철학자·문명비평가인 임어당(林語堂·1895-1976)이 전작 <생활의 발견>에서 그랬듯,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전기작가로 불린 조반니 파파니(Giovanni Papini·1881-1956)도 1912년 쓴 자신의 에세이 <말과 피>를 통해 무신론자임을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특히 이 책에서 그는 예수와 사도 요한이 동성애 관계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내놓는 등, 당대의 분위기를 충실히 반영한 '골수 또는 꼴통' 무신론자였다.
그런 그가 불과 9년 만인 1921년 <예수 이야기(원제 Storia di Cristo)>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꺾고, 회심을 알렸다. 마치 임어당이 만년에 <이교도에서 기독교인으로>를 낸 것처럼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였다. 물론 파파니는 이탈리아인답게 가톨릭에 귀의했고, 책도 가톨릭 표기법을 따른다.
"열정과 오만으로 들떠 있던 시절, 나는 앞선 몇몇 작가를 좇아 예수를 모욕하는 글을 쓰곤 했다. 그러나 6년-그 6년은 안팎으로 엄청난 고통과 폐허를 체험한 시기였다-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몇 달간의 미친 듯한 고뇌 끝에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어떤 낯선 힘에 떠밀리듯 그리스도에 관한 글을 섰다. 그러나 아직도 내 죄가 충분히 속죄되지 않은 모양이다."
저자는 영화 <선 오브 갓>처럼 성경 그대로를 구현하는 데 충실하기보다는, 당대의 정치·사회·문화 등을 충실히 버무리고 구약성경도 적극 활용하면서 예수님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평전 형태를 채택해 곳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과감하게 들려준다. 다음 구절은 특히 임어당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견해와 비슷하다.
"다른 위대한 영혼들처럼 예수 역시 들과 산을 사랑했다. ... 그는 어려운 말, 추상적인 개념, 일반적이고 모호한 말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의 말은 이해하기 쉽고 듣기에 편안했다. 예수의 설교는 간결하면서도 쉬운 언어로 전달됐다. 그의 말은 밭과 들처럼 소박한 자연의 향기로 가득했으며, 동물들이 이리 저리 뛰노는 것처럼 활기에 넘쳤다. ... 예수는 세상에 명백히 알려진 진리와 사실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부활에 대해선 "예수는 부활로써 우리에게 첫 번째 삶 뿐 아니라 두 번째 삶도 있고, 나아가 영원한 삶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며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한 삶에서 단절되는 것"이라고 전한다. 그런 이들은 불만이 가득한 채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아직은 땅 위에서 숨 쉬고 있고 몸에도 온기가 남아 있어 부활을 비웃고 있지만 삶을 밀어내고 있기 때문에 영으로 태어날 두 번째 삶은 닫히리라는 것.
그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승천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25개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의 한국판에는 30여장의 성화를 곁들였으며, 한 이야기를 하나의 소주제로 엮어 가독성을 높였다. 제목 앞에 '무신론자를 위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인문교양서를 표방, 비기독교인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