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
(Photo : 기독일보) 민종기 목사

북아프리카 출신의 신학자 어거스틴은 겸손의 중요성을 말과 행동으로 잘 가르치던 스승입니다. 한번은 제자가 신자의 첫 번째 덕목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겸손”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둘째 덕목을 물었더니 그것도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덕목을 묻는 제자에게 다시 “겸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겸손이 최고의 덕목이라는 말입니다.

어느날, 어거스틴이 바로 옆방에 있는 제자 레이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대답이 없었습니다. 방에 있는 것을 아는데, 다시 여러 번 불렀습니다. 나중에는 화가 나서 제자가 있는 방문을 세차게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는 제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제자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면서 부탁하였습니다. “레이나야, 너는 네 발로 내 목을 밟고, ‘교만한 어거스틴아,’ ‘교만한 어거스틴아,’ ‘교만한 어거스틴아’라고 세 번 외쳐다오”라고.

겸손의 덕은 참으로 얻기 힘듭니다. 자신이 교만하다고 해서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겸손하다고 해서 겸손한 것이 아닙니다. 외양이 겸손하다고 해서 그의 마음이 진정 겸손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어제 겸손하다고 해서 오늘도 겸손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겸손하다고 하는 순간 나는 교만하여지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나 가장 영향력 있고 감화력 있는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겸손은 굴욕이 아닙니다. 다름 사람의 견해를 모두 받아들이는 포스트모던적 관용(toleration)을 겸손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확신을 유지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겸손을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겸손은 “선택”입니다. 겸손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위상을 낮추는 포기입니다. 겸손이 “사회적”인 것은 타인을 자신의 위에 두기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타인을 낫게 여기십시오”(빌 2:3). 겸손은 그러므로 고귀한 사회적인 선택입니다. 겸양이 개인적인 낮춤이라면 겸손은 선택을 통한 사회적 낮아짐입니다.

겸손의 유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겸손은 첫째로 매력 있고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을 싫어하는 이웃은 없습니다. 둘째로 겸손은 남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배우게 만들고, 내가 지속적으로 성숙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셋째로 겸손은 자신의 착각과 환상에서 벗어나 주변과 협력하게 만들고 심지어 하나님을 깨닫고 따르기 위하여도 필요합니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겸손의 모델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명예-수치의 관념이 사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로마인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경우, 이를 질투와 증오로 받기 보다는 먼저 수치와 위신의 추락이라고 보았습니다. 겸손이 결코 미덕이 아니던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겸손의 궁극을 보여주셨습니다. 산상수훈, 제자들의 발을 씻는 모습, 그리고 십자가는 겸손을 가르쳐줍니다. 주님은 최고로 겸손한 교사이자 구세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