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선수가 지난 주 소치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1000m에서 우승한 뒤 러시아 국기를 들고 링크를 도는 모습을 보며 한국인들은 착잡하고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 조국에 대한 배신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 된 배경을 한국 체육계의 파벌주의, 줄 세우기, 심판부정 등 고질적인 병폐 때문이라고 하니 그것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그리고 이때를 놓칠세라 정치권에서는 정부여탕 탓으로 돌리며 하릴없는 갈등을 조성하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 주 서울 영등포역 거리연설에서 "체육계의 불공정성은 개인의 운명을 바꿔놓는데 그쳤지만, 국가 권력기관의 불공정성은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국민 전체를 파멸로 끌고 들어갈 것"이라며 "체육계 불공정을 엄하게 다스리자는 대통령이 정작 국가 운명을 좌지우지할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참 아무리 남의 탓 타령이 우리들의 고질병이라고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 한국으로 부터의 기회를 잃어 버리고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는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한국의 따가운 여론을 의식하면서도 와신상담 오늘만을 기다리며 스케이트날을 갈고 닦았을 것같다. 그리고 오늘 자신의 월계관을 부러워 하며 우왕좌왕하는 한국을 바라다 보며 고소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여론은 "아이구! 이런 귀재를 그때는 몰랐어요. 빙상연맹이 죽일 놈들여요." 하자 "괜찮아요. 다 지난일들인데요 !" 라며 안현수는 지긋히 미소로 용서해 주고있다. 이런 웃지못할 코미디를 바라다 보며 금메달이 뭔지 저렇게 정치권까지 정신 못차리고 매달릴 정도일까 의아해 지기도 한다.
오늘 이런 한국사회의 심리현상은 바로 우리가 어려서 부터 습득해 온 남의 탓 문화가 몸에베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결정은 순전히 타인의 행동 여하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실수를 그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까지 확대하는 과대망상은 없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안현수는 단지 네명을 뽑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5위에 그쳤을 뿐이고 그 뒤 자신의 또 다른 기회를 찾아 러시아의 매력적인 제안을 받아 들인 개인적 결정인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사회는 그가 속해있던 지방정부의 책임자까지도 비난하며 도가 지나친 남의 탓 공방에 빠져 버린 것이다.
자기의 인생도 똑바로 살기 어려운 현실이다. 왜 그렇게 국가와 타인을 비난하며 남의 집 신경에 곤두세우는 것일까? 삶의 최고의 목표를 개인의 성공에 바탕을 두고있는 우리들의 정서에는 자신의 현실을 너무도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과 이상적 삶의 차이가 너무 크게 보일때 사회적 우상에 지나치게 열광하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심리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실패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원인이라는 강한 믿음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안현수의 경우도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되는 것이다. 이를 뒷바침해주는 여론조사에서 한국인 열명중 여덟명이 한국선수보다는 안현수를 응원하고 싶다는 응답이 나오고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안현수 현상을 주목하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체육계와의 대화에서 주장했다. 과연 이것이 구조적인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 내면의 문화 심리적 역동성일까. 우리들 삶의 가치관에서 무엇인가 쫒기듯이 살고있는 강박관념은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경쟁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쟁취하려고 하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심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중과 배려가 어렵게 되고 단지 살아 남아야 된다는 위기의식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다. 아닌게 아니라 야당의 일각에서의 주장처럼 한국정부가 여전히 가난의 PTSD (스트레스충격 증후군)에서 못 벗어나 경제성장의 목마름을 해갈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진지한 자성과 함께 치료가 절실하다. 어떤 이들은 경제가 돌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없다라고 성토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좀 차원이 다른 심리적 혼란에 봉착했다.
너무도 지나친 경쟁 심리 속으로 빠져들며 사람들은 아무리 가져도 더 못가진 것에 대한 불만증에 빠져버린 형상이다. 게다가 자신의 불행을 국가와 사회탓으만 돌리려 하며 불특정 다수에 대한 지나친 불신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제도보다는 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절실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