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관식  시애틀 형제교회 원로 목사
(Photo : 기독일보) 심관식 시애틀 형제교회 원로 목사

우리는 흔히 찾기를 잘 합니다. 좋은 취직자리를 찾고, 좋은 신랑감, 좋은 신부를 찾습니다. 그래서 과년한 딸을 둔 어머니들은 교회의 성가대석도 둘러보고, 젊은이들을 유심히 보기도 하여 사윗감을 찾습니다. 30 고개를 넘긴 아들을 둔 부모의 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기야 요즈음에는 그렇게 찾는 일이 부모의 몫에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모든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찾는 것도 필요하나 실상은 찾아지는 사람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찾아 줄 만큼의 위치를 확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무엇을 찾는 사람은 많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찾아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먼저 사회에서 찾아지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는 찾아지는 것보다 찾아 달라고 여러 가지 활동하고 선전을 하고 야단들입니다. 나라에서 선거 때가 되면 이렇게 공적이 많고 훌륭한 사람이니 찾아 달라고 또 알아 달라고 유인물이나 연설을 합니다. 그 사회에서 찾아지는 사람이 되려면 그만큼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무엇인가 남보다 특출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한 때에 사울 왕이 정신 착란증 같은 증세가 있어서 몹시 괴로움을 당할 때에 사무엘 상 16:을 보면 거문고 타는 소년으로 다윗이 찾아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이기에 찾아진 사람이 되었습니까?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므로 찾아진 것입니다. 전기가 고장 난 데 전기 기술자가 찾아집니다. 그런 때에 요리사는 소용이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찾아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애급의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보통 개꿈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하고 똑똑하여 어떤 예시적인 꿈같은데 도저히 풀길이 없습니다. 많은 애급 천하의 복술가, 박사, 해몽가를 불러도 도저히 알아내지 못합니다. 바로는 몹시 초조해지고 불안했습니다. 그 때 옥살이를 같이 하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추천하여 바로의 특명으로 요셉이 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창세기 41:에 보면 명확하게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찾아진 사람입니다.

어느 때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 그 환경에 꼭 필요한 사람은 찾아지는 사람입니다. 사회생활 속에 찾아지는 사람이 되고, 특별히 직장에서 찾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유능해서, 나은 점이 있어서, 그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서 찾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찾아지는 사람입니다. 사회에서 찾아지는 사람도 귀하지마는 교회에서 찾아지는 사람도 되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군대장교로서 하나님도 잘 믿고 구제도 많이 하고 항상 기도도 했습니다.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을 때 천사가 하나님의 부탁을 전하면서 욥바에 사람을 보내서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에게도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비전이었습니다. 처음에 베드로는 그 비전이 무엇인지 모르다가 나중에 고넬료가 사람을 보낸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결국 고넬료의 집에 가서 예수님의 진리를 바로 지도해 주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의 장교에게 예수님을 바로 알려주기 위하여 찾아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찾아지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평소의 봉사는 교회로 하여금 그 사람을 찾아지게 합니다.

도르가는 평소 선행을 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찾아지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가 죽었을 때에 사도행전 9:36-41을 보면 그에게 신세진 이들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뺀들뺀들하고 요리 조리 빠지고 하는 사람보다 충직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봉사하는 사람은 교회에서 찾아지는 사람입니다. 성가대나 교사도 그렇습니다. 어디엔가 다른 사람보다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드리고, 정성을 쏟고, 몸을 드리는 사람이 찾아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 전심전력하는 사람이 찾아지는 사람입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교회에서 귀한 직책을 가지고 아무 것도 안하고, 아무 관심도 없고 적당히 하는 사람들은 찾아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교회가 찾아가는 때도 있지만 교회로 하여금 찾아지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가 능력이 있어서 찾아오게 하는 교회도 되어져야 합니다. 교육을 잘 해서, 선교를 많이 해서, 주변에 공헌을 많이 해서, 찾아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찾아가는 친절도 있고, 찾아오게 하는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주께로 부터 찾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셔서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부터 찾아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왜 다윗은 하나님께로 부터 찾아지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사무엘의 앞으로 이새의 아들들이 지남을 보고 그는 마음에 이르기를 '이렇게 잘난 이 사람이 과연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사람인가보구나!'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했습니다. 다윗의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해서 그는 찾아지는 사람이 된 것 입니다.

형들은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흥겹게 즐기며 놀고 있는 때에도 다윗은 양치는 것을 천직인양 혼자 묵묵히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을 보시고 합당히 여기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찾아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나님의 찾아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맡겨주는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저희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찾아진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까지 나오시면서 아무도 안 만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동안에 농부도 만나고, 공무원도 만나고, 상인도 만나고,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형제, 야고보 형제를 만나 따라 오라고 하시고, 또 사명까지 맡기시므로 찾아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찾아지는 사람이 되고, 교회에서 찾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로 부터 찾아진 사람 되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