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이른바 '시국 미사'로 국론분열이 극심한 상황이다. 이들은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지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자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가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금식기도 모임'을 예고하는 등, 개신교 내 일부 진보단체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그런데 보수적 개신교 단체들도 이와 비슷한 시점에 '시국선언문'을 발표, 묘한 대칭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등이 '정교분리와 윤리회복을 위한 한국교회 시국대책위원회'를 구성, 최근 동성애 및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특히 종교인 과세가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한국교회 보수·진보 양 진영이 동시에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내면서, 그간 사회 참여 정도나 정치적 성향 등으로 둘을 나누던 기준이 이번 일을 통해 보다 분명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보수: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 등에 '정책'별 대응
진보: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등 '정치 이슈'에 민감
한국교회 보수 진영이 지금까지 대(對)사회적, 혹은 대정치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경우를 보면, 최근의 '차별금지법'이나 '종교인 과세', '북한인권' 문제를 비롯해 과거 이슬람 채권과 연관된 '스쿠크법', 그리고 일부 지도자들이 삭발 투혼까지 보였던 '사학법' 등 주로 특정 정책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북한인권' 등을 제외하면 이런 것들은 교회(목회) 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반면 진보 진영이 적극 나선 것들을 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4대강 사업'을 비롯, 최근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등 정치권과 밀접히 관계된 것들이 많다. 물론 진보 진영이 추구하는 신학과 신앙이 보수 진영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이런 이슈들은 상대적으로 목회 현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아니다. 특히 보수 진영이 특정 '정책'에 주로 반응했다면 진보 진영은 이번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문제에서 보듯, 정책과 크게 상관없는 정치적 아젠다에도 뛰어든다.
행동 양상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진보 진영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통해 습득한, 다양한 방식의 의사 표출 방법을 가지고 있다. '논평' '성명서' 등과 같은 문서로 그들의 의사를 전달하는가 하면, 기도회나 기자회견, 촛불 집회, 가두행진 등 보다 가시적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또 이들은 조직 상호간 연대에 능하고 개별 역할분담에 있어서도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움직임을 보인다.
이와 달리 보수 진영은 소수 인물, 혹은 연합기관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몇몇 대형교회 유명 목회자에 대한 의존도가 커, 이들이 나설 경우 효과를 보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지 못하기도 한다. 또 사회 참여를 꺼리고, 개교회주의가 강한 보수 진영의 특성상 연합기관 운신의 폭도 진보 진영의 그것에 비해 크지 않다. 하지만 인원 동원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나서, 대규모 집회는 대부분 보수 진영이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의견 표출의 지속성 정도는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에 비해 열세라는 평가다.
반공 의식 강한 보수, 행동 지향적인 진보
감리교신학대학교 이원규 교수(종교사회학)는 "(개신교 내) 보수 진영은 대개 도덕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보 진영에서는 다소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다"며 "표현 방식에 있어선 진보 진영이 좀 더 행동 지향적이고 도전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보수 진영이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낼 때, 그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주로 사회 체제와 관계된 것"이라며 "반공 의식이 상당히 강해 현 체제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교회는 세상 당파나 시민사회단체와는 달라야"
그렇다면, 각 진영이 그들의 이런 의사 표출 과정에서 신중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서울신학대학교 박명수 교수(교회사)는 이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 미사' 논란과 관련, "그들이 시국 미사를 통해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보수든 진보든 국민이라면 표현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그 같은 견해는 밝힐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 내용에 있어선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성직자가 주관적 입장을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김명용 총장은 최근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위한 바른 길'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하나님 나라는 사랑과 섬김,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 오기 때문에, 권력을 잡아서 힘으로 기독교적 가치를 구현하려고 하는 길은 버려야 한다"며 "교회의 바른 길은 정치적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유비를 만들고, 하나님의 정치가 구현될 수 있도록 아래로부터 하나님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또 한신대학교 강성영 교수(기독교윤리)는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한 가지 오해해선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교회와 정치세력의 차이에 관한 성찰이다. 교회는 에클레시아, 즉 하나님에 의해 소집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다. 엄연히 세상의 정치적 당파, 시민사회 단체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제24차 열린대화마당에서 논찬을 맡았던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도 "교회는 사회 속에 있지만 사회에 속하지 않는 존재다. 이 명제를 잃으면 교회는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며 "교회가 사회의 갈등에 기생하거나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이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