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다수의 안티가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현대 한국의 정치현실을 바라다보며 진중권이라는 논객이 쏟아내는 온갖 해학과 독설은 한국정치에 환멸 하는 사람들의 가장 가려운 부분들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하지만 반대로 그의 거침없고 현란한 입담으로 여기저기 간섭하며 불평을 늘어놓는 그의 태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안겨 주기도 한다. 여하튼 그의 인기는 누가 뭐래도 주가 급상승 중이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는 그만의 독설과 비아냥거림은 우리 사회에 꼭 존재해야만 하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겸손함이 결여되어 있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그래 너 잘났어!"라며 한마디 던져주고 싶은 결론을 짓게 만든다.
지금 한국의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전투구의 난장판을 바라다보는 그의 비평은 사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모순으로 부터 초래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것 역시 그의 논리 자체가 중립과 객관성을 상실당한 체 단지 불만세력의 편에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선동적 음모가 숨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권력과 구태정치에 냉소하면서도 억압된 정서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소시민들은 허가받은 망나니의 현란한 칼춤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그 만의 섬뜩한 표현의 자유로움에 취해서 그저 "그래 참 대단한 언변이다"라고 한마디 던져 주지만 어쩐지 그를 바라다보는 사람들의 감정은 곱지 않다. "너 왜 그렇게 사회에 불만이 않냐?"라고 타일러 주고 정신 차리게 해주고 싶은 심정들일 게다.
지금 우리는 지독한 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산업화 이전과 이후의 세대가 만들어 내는 대화의 단절과 상대방에 대한 좌절감은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움의 감정으로 발전하여서 "너 왜 이렇게 반항적이냐?'라며 훈계하는 아버지세대와 "참, 속이 꽉 막힌 보수꼴똥들이네!"라며 마치 젊은 것이 대단한 특권인양 진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아들세대간의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대립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현상은 박정희 대통령시대의 아버지를 둔 사람들 즉, 40대와 50대의 중, 장년들이 그들의 아들세대인 20대와 30대의 가치관보다도 더욱 급진적이며 정부권력에 대한 저항감도 그만큼 더 크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구시대의 아버지세대로 부터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며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한 채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공동의 목표를 강요당했던 삶이 너무도 억울했다는 피해의식은 6,25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충격의 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 세대가 주장하는 안보의식에 피곤함을 느끼며 지난 수십 년 말로만 떠들었던 북한의 위협이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아들세대의 입장에서는 갈등 지향적인 냉전보다는 화해와 협력의 아이디어가 새 시대에 요구되는 국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에서 보여주는 아버지와 아들세대간의 대화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할 만큼 각자의 입장에서 성급하고 고집스러워 보인다. 대화는 그 내용 자체로서만 의미를 갖지 않는다. 대화란 내 뜻을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하며 상대방의 견해를 내가 액면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우호적인 태도와 열린 마음까지도 포함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그러한 모습보다는 단지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를 과시하려는 의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원천적 무시와 불신감의 풍조가 째려보듯이 힘들어 가있는 사람들의 눈매에서 섬뜩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그 치열한 한국 사회 속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심리에는 '내가 최고'라는 사명감에 가까운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의 대화보다도 더욱 더 불통의 대화로 서로를 공격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정치인들의 하는 일이 오직 야합과 투쟁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오늘 한국사회에 내로라하는 대부분의 정치논객들이 그러 하지만 특히 진보논객이라 자처하는 진중권이 오늘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과연 긍정적이고 기능적인 지에 대한 자기성찰은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보다 성숙한 모습의 대화가 절실한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