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석기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온통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경기동부 연합의 '내란 음모죄'로 시끄럽다. 되살아난 망령인가, 아니면 실존하는 위협인가 하는 문제를 떠나 이 사건은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준다.
우선, 이석기 의원으로 대표되는 경기동부 연합, 더 나아가서는 민주화의 한 축이었던 NL(민족해방노선)이 보는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국민의 시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녹취록을 보면, 위협을 느낀다기 보다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과연 그들의 시계는 어디에 멈추어 있는 것인가?
그간 그들이 당했던 여러 가지 차별과 두려움 등을 아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제도권 정당에 들어온 이상, 합법적인 정당활동과 선거를 통해서 국민으로부터 그들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런 저급한 생각에 머물러 있다는 것에 분노를 너머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국정원은 이 사건으로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선거개입 사건과 NLL대화록 공개 등 국정원의 불법적이 행태들이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로 속속들이 들어나는 시점에서 내란죄를 들고 나온 것이 나라를 위한 충정이라고 곱게 보여지지만은 않는다.
또한 내란죄 기소라는 자체가 무리가 있는 법 적용인데다가, 혐의 사실이란 것이 아직까지는 지난 5월의 모임에서 말한 녹취록이 전부인 상황이다. 게다가 입맛에 맞는 언론에 피의사실을 불법적으로 유포하는 모습에서 '내란죄' 자체를 떠나서, 이제는 더 이상 국정원이 자발적인 개혁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와 청와대는 역시나 나 몰라라 선 긋기를 시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정권교체를 한 것이 아니라 정권연장에 성공한 것이다. 정권연장이라면 전 정부의 공과도 같이 물려 받은 것이다. 그러나 지난 정부부터 이어져 온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혹시라도 피해가 올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국민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대선공약의 대량 파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은 시끌시끌한 정쟁에 가려져 숨을 돌리겠지만, 이는 결국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돌아올 것이다. 정부는 지금 제 삼자의 입장에 설 처지가 아니다.
그리고 언론은 이 사건을 통하여 '황색 저널리즘의 융단폭격'이 무엇인지 그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충격적인 사건에 냉정한 사실확인과 공정한 보도로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줄 책임은 어디 가고, 참 잘했어요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받아쓰기 언론만 남았다. 일단 마구잡이로 보도하고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행태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청문회에서 후안 무치한 태도로 국정원의 국선변호인을 자청하고, NLL과 관련된 대통령 지정기록물을 자신들 마음대로 유포하는 등 정국에서 수세에 몰리자, 역시나 종북몰이의 꽃놀이 패를 손에 쥐고 반전에 성공했다. 철 지난 이념논쟁이과 종북몰이가 단기간 그들의 총알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수권정당에서 지속적으로 할 소리는 아니다.
민주당은 여전히 야당으로서의 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상실하고 끌려 다니는 데 급급한 상황이다. 정의당과 진보세력은 개점휴업의 상태이다. NL과 PD, 진보정의당과 정의당이 국민의 눈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노동문제, 민생문제, 보편적 복지문제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국민에게 선동 세력의 외침으로만 비춰지게 될 것이다.
이번 이석기 사태는 대한민국의 민 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우리는 이번 일을 통해서 이념논쟁, 국론분열이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성숙'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내란죄 문제는 내란 죄 문제대로, 국정원 개혁은 개혁대로, 민생 문제는 민생문제 대로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말고 잘 해결해야 한다. 과거 민주화 운동이 경제부흥의 성장통이었다면 이 사건은 사회적 성숙의 성장통이 되어 더욱 성숙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힘들지만 꼭 겪어야 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