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아프간 피랍사건 이후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 지도자들은 1~2주 간의 선교지 방문과 봉사활동을 단기선교가 아닌 '단기봉사', '비전여행(vision trip)' 등으로 고쳐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피랍이라는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내용'과는 상관 없이 사용했던 '명분'인 '단기선교'가 인질들에게도 결정적으로 불리한 영향을 미쳤고, 한국 선교계의 안이함과 미성숙함이 그대로 사회에 드러나면서 반기독교적 정서가 확산된 것이다.
도문갑 한국위기관리재단(KCMS) 자문위원(성서유니온선교회 대표, GMP 선교사)은 KCMS가 피랍 사건 5주년을 맞아 최근 발간한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에서 지금의 선교지 여행이 선교인가, 봉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총체적 선교를 강조하는 진보진영과 직접적인 복음 전파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보수진영에 따라 선교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 있는 폭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며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당장의 목회적 효과를 얻기 보다 포괄적인 문화적 환경을 염두에 두고 비위협적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며 용어 사용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신학적 견해 차이는 선교운동에 걸림돌 안돼
그는 "신학적 견해 차이가 한국교회가 당면한 선교운동의 정직성과 신실함의 회복, 이론과 실천이 함께 가는 성숙함,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현장에서 실현하는 일 등에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며 "선교가 구호나 과시, 일방적 선포가 아니라 겸손한 섬김과 봉사, 희생의 삶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우리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피랍사건은 "선교와 봉사의 영역이 정리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되어 온 용어들을 구분하고 용어 사용의 이면에 작용하던 잘못된 선교의식에 대해 개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고 말했다.
도 선교사는 왜곡된 '단기선교' 용어가 야기한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4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우선 지역교회부터 '선교운동의 군살'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교회들이 왜 실제 역할에 맞는 '봉사'나 '지원사역', '비전여행' 등의 호칭이나 용어로 만족하지 못하고 '단기선교'라는 무거운 계급장을 붙이는 습관이 생겼는지에 대해 진지한 질문과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를 회복시켜야 할 유일한 희망인 교회가 세속적 풍조인 실적 부풀리기, 거품 현상, 외형으로 판단하기 등에 휩쓸리는 현상은 오늘 한국사회의 비극"이라며 "지역교회 선교운동이 단순히 단기선교라는 용어의 거품을 걷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직하고 겸손하며 섬기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교회 본질을 회복하고 사회의 신뢰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 '단기선교'란 용어-> '비전여행'이나 '현지답사' 등으로 순화 필요
그는 '단기선교' 용어의 재정비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아프간 사태 직후 주요 교단, 교회연합운동이 앞다퉈 '단기선교'의 체질 개선과 용어 전환을 요청했으나 현재 목회자나 일반 성도들은 다시 예전처럼 단기선교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어떤 명칭이든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도 선교사는 "단기선교라는 용어는 1년 이상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단기선교사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라며 "선교지 탐방, 지역조사와 연구, 선교 비전을 추구하는 여행은 '비전여행', '현지탐사' 등으로 다시 제자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의료봉사, 교육, 도로보수 등 지역개발 업무, 농사일 돕기, 교회당 건축보조 등의 지원 사역은 포괄적으로 '단기봉사'로 부르고, 일부 사역적 요소가 있더라도 분쟁지역이나 창의적 접근지역에서의 모든 방문사역팀은 '단기봉사팀'이라는 용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선교가 자유로운 지역에서 주일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노방전도, 전도지 배포, 찬양사역 등 비교적 사역적 요소가 많은 봉사를 하는 경우에도 '단기봉사'나 '단기사역'으로 용어를 통일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장기선교사들도 공격적 이미지가 담긴 '선교'란 용어 대신 다른 표현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1~2주의 초단기 방문활동에 '선교'란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짧은 방문 기간 실적을 나타내려 하기보다 섬김을 통해 현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복음적 영향을 미치는 '성육신적 선교 원리'를 체득하는 한국교회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현지 선교단체와의 협력과 위기관리교육 중요
도 선교사는 세 번째 방안으로 단기봉사를 할 때 전문 선교단체와 협력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샘물교회 아프간 단기봉사팀은 현지 사역단체의 의견보다는 교회 단기봉사팀이 주도하여 여정이 정해졌다"면서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볼 때 출발 전 이미 불안정한 구조 속에 놓여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교회 단기봉사팀이 현장을 방문할 때는 현지 선교팀과 사전에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고 필요한 준비를 갖추며 현지 선교팀은 현지 사정에 정통하고 방문팀이 해야 할 역할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실행 지침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분쟁지역, 제한지역에서 봉사 활동을 할 경우 현지 선교팀이 세심한 위기관리 체제나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미리 점검할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위기관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프간 사건 이후 외교통상부 산하 사단법인체제로 공식 발족된 한국위기관리재단이 선교사와 선교단체, NGO단체, 지역교회를 위해 위기관리시스템 구축 및 위기관리 교육 훈련을 담당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역자들은 고통의 신학과 위기관리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이해해야 하며 위기관리의 원리와 구체적 실행 방법론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며 "현지 선교팀은 물론이고 방문팀도 자체 위기관리체제를 구성하고 사전 교육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