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엄 스토퍼드는 영국 최고의 육아전문가이다. 그는 여섯 명의 자식과 수많은 손자 손녀를 두고 있다. 자신이 쓴 <인생의 오후, 사랑할 시간입니다>라는 책에 이런 글을 소개한다.
"나는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또다시 가슴 뛰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첫 손자를 안는 순간 나는 내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것을 들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어떤 목사님은 말한다. "손자 손녀를 가슴에 안아보기 전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우리 형님도 그랬다. 더할 수 없이 착한 심성을 가진 분이다. 그렇지만 가족들에게 잔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분이다. 그런데 첫 손자를 보더니 놀랍게 변했다. 손자 사진을 찍어서 카톡에 올리고 야단났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형님에게 말했다. "형님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어요."
형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네도 손자 손녀를 보면 알게 될 거야!"
주변에 계신 분들을 보면 진짜 그런 것 같다. 손자 손녀를 보는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다.
손자 손녀를 길러야 하는 부담만 없다면 가능하겠지만, 손자 손녀가 기쁨을 주는 선물만은 아니다. 손자 손녀 때문에 울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 일어난 사건이다. 50대 후반의 한 여성이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 왜? 만삭인 며느리를 죽인 혐의로. 도대체 만삭인 며느리를 왜? 손자를 돌보는 문제 때문에. 손자가 어쨌길래?
시어머니는 손자를 돌봤다. 며느리가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그러면서 며느리와의 갈등도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가 막힌 형편이다. 사실 지금도 시어머니는 우울증 증세를 보일 정도로 힘겨운 지경이다. 그런데 또다시 시작해야 한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 문제 때문에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여러 차례 다퉜다. 하지만 해법이 없었다. 결국 시어머니는 생각의 종지부를 찍었다. '며느리를 죽이고, 나도 목숨을 끊자.'
서글프게도 시어머니는 생각의 극단을 선택했다. 어느 날 저녁,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먹을 국수에 수면제 두 알을 몰래 탔다. 며느리가 잠들자 시어머니는 스카프로 출산을 한 달 앞둔 며느리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범행 동기를 우울증으로 변명했다. 사건 초기에는 재판부에서도 시어머니가 우울증이 심해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황혼 육아에 대한 갈등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더 이상 손자를 돌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현대 젊은 층들이 맞벌이를 하지 않고 사는 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다. 더구나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사교육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우리 교회를 봐도 그렇다. 젊은 층들이 필요한 교회 사역이 어려움을 겪는다. 생활 현장으로 나가니까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자녀양육의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자녀양육을 남의 손에 맡기다 보니, 듣고 싶지 않은 소문들이 들린다. 먹이는 것도 그렇고, 돌보는 것도 그렇고. 마음 놓고 아이들을 맡길 수가 없다.
결국 아이 양육은 양가 부모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들끼리 서로 (외)손자들을 등 떠미는 기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 부부도 아이들에게 '우리가 손자 손녀들을 봐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교회 안에 어른들을 보면서 큰 소리를 접수하고 말았다. 자신이 없어서였다. 한 걸음 내달아 우리 부부 간에 말한다. '우리가 좀 더 건강할 때 아이들 결혼을 시켜야겠다.' 그것도 우리 생각대로 될지?
손자 손녀들을 돌보는 분들을 보라. 자신들의 인생이 사라졌다. 육체적으로도 너무 진이 빠진다. 몸이 따라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부비면 힘들어 죽겠단다. 허리에 디스크가 찾아오고, 무릎관절에 이상이 생긴다. 어깨가 아파서 고통을 호소한다.
어디 그 뿐인가? 정신적인 고통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루종일 아이들 뒤꽁무니를 따라다닐 수도 없다. 그런데 어쩌다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자식들은 속상해서 퍼붓는다. 그럼, 할머니가 어쩌란 말인가? 자기가 돌보면 이런 사단이 나지 않으란 보장이 있는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런 욕을 먹으니 서운하기가 짝이 없다. 그래서 '니 자식 니가 길러라!"라고 퍼붓고 집을 뛰쳐나온다.
탤런트 사미자 씨가 마음에 담아둔 이런 고백을 했다. "우리 며느리가 손자를 낳고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기쁜 나머지 덥석 손자를 안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머니 손 닦으셔야죠' 라는 며느리의 한 마디가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결국 며느리가 보는 앞에서 손을 씻긴 했지만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생각 차이다. 얼마든지 벌어지는 일이다. 이러니 어떻게 손자손녀를 기른단 말인가?
"김치를 입으로 쪽쪽 빤 뒤 손으로 찢어서 먹인다. 행주로 입을 닦아준다. 행주가 눈에 안 띄면 걸레로 닦아준다.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손으로 때려잡는다. 밥을 입에 넣어 씹었다가 먹여준다. 진한 사투리(경상도, 전라도 또는 제주도)로 정겹게 대화를 나눈다. 빠다(버터), 빤스(팬티)등 토속적인 발음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조기교육 삼아 고스톱을 가르친다. 일요일 아침에는 새벽기도를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그대로 외출을 한다."
이게 무슨 소린지 알만한가? 손자 손녀를 떠맡지 않기 위한 할머니들의 고도의 전략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신세대 할머니가 있다. 그런데 그가 꼼짝 없이 집에 묶여있게 생겼다. 손자를 돌봐야 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황혼을 즐겁게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에서 애만 봐야 하다니.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너무 속상하고 억울했다.
그래서 꾀를 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직장을 다니던 며느리가 금세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렇담, 도대체 어떤 전략이었기에 그렇게 효과가 좋았단 말인가? 손자에게 걸쭉한 사투리를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할머니에게 배운 손자가 엄마 앞에서 말했다. "어무이~"
사투리를 쓰는 아이를 본 며느리는 기겁을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보는 앞에서 밥알을 질근질근 씹었다. 그리고 손자를 불렀다. "어이구~ 내 새끼." 할머니는 씹고 있던 밥알을 손자 입에 넣어주었다.
어디 그 뿐이랴. 손자를 불러 앉혔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화투를 가르쳐 주었다. 엄마가 오자 아이는 능숙한 화투 솜씨를 자랑했다. 머지 않아 며느리는 직장을 그만 두었다.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할머니에게 안 맡기기 위해. 아이의 장래를 위해.
기가 막힌 전략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지 않는가? 살려고 발버둥치는 자식들을 보고 차마 눈감아 버릴 수 없다. 자식들이 겪는 갈등을 보면 도저히 그럴 수도 없다.
직장 생활을 하던 한 여성이 있다. 직장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녀를 친정 어머니에게 맡겼다. 다행히 친정 어머니는 딸집에서 함께 살면서 외손자를 돌봐주었다. 대신 매월 일정액을 양육비로 받았다. 그런데 남편은 그게 못마땅했다.
"장모님은 외손자를 봐주면서 그 돈을 꼭 받아야 하냐?" 이런 문제로 부부는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남편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처가를 자주 폄하했다. 그러다 친정어머니가 부상을 입어 아이를 돌볼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시부모가 자녀를 키우게 됐다. 이쯤 되자 화가 난 남편은 아예 집을 나갔다. 결국 이들 부부는 가정법원을 찾게 되었고, 법원에서는 두 사람의 이혼을 허락해 주었다.
자식들이여, 늙은 부모의 노동력을 착취하려 들지 말라. 지금까지도 당신을 위해 고생할 만큼 다 했다. 그런데 결혼해서까지 부모 등골을 빼 먹으려는가? 당연히 부모에게 응분의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어쩌면 마음은 있는데, 생활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져야지. 자기 자식 사교육비를 줄이거나 생활비를 줄여서라도 부모님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부모들이 대수롭지 않게 저지르는 실수에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아이들을 돌봐도 그런 실수쯤은 다 하기 마련이다. 24시간 아이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서는.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화장실에 갈 때 사고를 치는데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