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한국에서는 "공자가 죽어야 한국이 산다."라는 책이 많이팔렸다. 그 이후 남편이 죽어야 가정이 산다. 아내가 죽어야 남편이 산다. 교회에서도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장로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심지어는 사모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가정을 위해 사회와 교회를 위해 죽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험한 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원인인가?
우리들은 모두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존재였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그의 피로 씻어주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지시고 죽으신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편하게 살기를 원하고 장수하기를 원하지만 예수님은 33세 젊은 나이에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다.
십자가형은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고통을 다맛보게하고 죽이는 비참한 형벌인데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운명하시기까지 모든 고통을 다 체험하셨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완전히 실패자의 생애를 사신 것이었다. 이처럼 비참하게 산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실패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않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이면 끝나는 줄 알았다. 사탄은 예수님을 무덤에 넣고 돌로 무덤 문을 막으면 그것으로 승리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님은 사탄의 권세, 죽음의 자리를 박차시고 부활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승리의 모습이요 우리 성도들에게 소망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 우리가 구원을 받는 역설적인 삶을 사셨다. 예수님의 비참한 생애는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기 위한 희생이었고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주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부활의 주님이 만나주신 사람들은 당시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던 여인들이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힘없이 돌아가신 것을 보고 실망해서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의심 많은 제자 도마도 만나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호수로 내려가서 자신을 부인하고 배반했던 고기 잡는 제자들을 만나주셨다.
슬피우는 여인들, 실망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 그리고 의심하는 도마, 배반한 제자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일지 모른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을 만나주시고 용기주시고 새 힘을 주셨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던지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새 힘과 용기를 주실 줄로 믿는다. 부활의 주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