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앙의 관점에서 ‘갈등’과 ‘본질’이라는 명제를 놓고 해마다 열띤 담론을 펼쳐온 ‘열린말씀컨퍼런스’가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열려 ‘소통’이라는 화두를 놓고 씨름했다.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한길교회(노진준 목사)에서다. 올해로 미 서부지역에서 여덟 번째를 맞는 ‘말씀 축제’다.


열린말씀컨퍼런스는 2002년 동부에서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출신의, 개혁주의 말씀운동을 표방하는 소수의 뜻있는 목회자들에 의해 시도된 새로운 형태의 말씀사경회다. ‘열린말씀연대’라고도 불리우는 이 운동은 초기 구성 멤버의 대부분이 동부지역에서 목회하고 있던 탓에 지리적 여건상 서부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목회자의 목회지 이동에 따라 자연히 서부에도 불이 옮겨 붙기 시작해 지금은 동부와 서부를 오가며 활발한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부에서는 노진준 목사(LA 한길교회)를 비롯해 김한요 목사(세리토스장로교회), 박영배 목사(풀러튼 뉴라이프선교교회), 한성윤 목사(나성남포교회)가 주요 멤버다. 동부에서도 박성일 목사(필라델피아 기쁨의교회,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변증학 겸임교수)를 비롯해 김태권 목사(필라델피아 임마뉴엘교회)와 최정권 목사(첼튼햄장로교회)가 강사로 나섰다. 이들 강사진들 대부분이 1.5세 목회자로 이중언어에 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거룩한 소통: 복음적 대화를 회복하라’라는 주제 하에 주요 강사진들이 ‘소통’을 성경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이는 지난 4월 동부에서 열린 제10회 모임의 주제와도 동일하다.


집회 첫날 강의에선 김태권 목사와 김한요 목사가 소통의 관점에서 본 복음적 원리에 대해 소개했고, 이튿날 오전 박영배 목사가 복음적 원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해, 마지막 날 순서에선 김태권 목사와 한성윤 목사가 각각 세상과의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풀어냈다. 이번 집회의 코디네이터 박성일 목사는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를 ‘소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늘날 겉으로 드러난 개신교의 이미지는 ‘뻔뻔한, 막무가내식 집단’이다. 과거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에서 무리하게 선교를 강행함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또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배너를 들고 공격적인 방법으로 전도를 하는 이들로 인해 믿지 않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을 지금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심지어 불교 사찰에서 ‘땅 밟기’ 해프닝을 벌여 세상의 지탄과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교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화려하면서도 값비싼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으며, 기업을 상속하듯 교회를 아들들에게 물려주는 ‘세습’까지 더해 그야말로 오늘날 교회의 권위가 끝없이 실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방어적 자세를 갖기 보다는, 과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모습이 무엇이었는가를 돌아보고, 교회의 본질을 다시금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과의 소통에 있어 기독교적 신앙의 본질을 통한 성육신적 접근법을 재발견하길 바란다.”

성경적 관점에서 본 소통
성육신의 원리가 핵심


맨 첫 강연을 맡은 최정권 목사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 거룩한 소통과 낮아짐의 원리’(눅9:19-27)라는 제하의 설교에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셨는지, 또한 그것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소개했다. 최 목사는 “성경은 소통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 구절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소통을 위해 얼마나 애쓰셨는지 알 수 있다”면서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소통이란 단순히 ‘통한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라고 운을 뗏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결정적인 방법으로, 마지막 때에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성육신’의 방법을 택하셨다”면서 “특히 4복음서 가운데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과 소통하신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소통의 문제를 말하자면 우선 ‘죄’의 문제를 잘 봐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진정한 소통을 가로 막는 건 언어나 자세의 문제가 다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죄악의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했다. 그는 (교회의) 세상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함정으로 ▷기독교 승리주의에서 비롯된 무례한 자세를 예로 들었고 ▷어떻게든 소통해야 한다는 ‘소통 제1주의’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성경 중 소통의 관점에서 죄악의 문제를 바로 보고 소통의 신비를 가르쳐 주는 책이 누가복음인데, 특히 9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고백’과 ‘제자도’는 인류가 갖고 있는 죄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핵심을 말해주고 있다.


최 목사는 “교회가 자칫 세상 혹은 사람과의 소통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과의 소통을 간과할 수 있는데 기도를 통한 ‘거룩한 소통’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거룩한 소통’을 계속하셨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소통에 있어 기도를 제하거나 소통의 원리에서 기도를 약화시키는 것은 소통하신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참된 소통을 위해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메고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일상의 삶 속에서 자아를 철저히 죽이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두 번째 강의는 김한요 목사가 맡았다. “변천하는 세상과 소통하는 영원한 말씀”(행2:1-13, 36-41)이란 제하에서 김 목사는 “성경에 기록된 소통하지 못하는 상태, 소위 ‘불통’의 첫번째 사건은 바벨탑 사건”이라면서 “이런 저주의 모습을 뒤집어 놓은 것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인데, 여기서 소통의 중요한 한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 ‘방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방언의 역사에 담긴 상징적 의미 즉, ‘복음의 평이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당시 각자 자기의 난 곳 방언으로 복음을 들었다는 것은 복음이 어느 한 민족이나 언어에 갇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권능으로 임하면, 복음은 문화·인종·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계속해서 전진한다”면서 “복음을 참된 진리로 받아들일 때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듯한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 역시 ‘성육신의 원리’, ‘낮아짐의 원리’가 소통의 핵심임을 재차 강조했다.


“우리 안에 뿌리 깊은 죄성인 교만을 내려놓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소통을 가로막는 죄의 담을 헐어야 한다. 예수님은 철저히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저 높이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한계와 고난을 체휼하시고 우리의 목마름과 괴로움과 아픔을 한 몸에 받으시며 우리를 대신해 그 죄의 값을 치르심으로 성육신의 원리, 즉 낮아짐의 원리를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다. 결단코 소통은 교만한 자에겐 이뤄지지 않는다. 겸손한 마음으로 낮아지는 복음적 원리를 통해 진정한 소통의 역사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한국교회 내 논란이 되고 있는 ‘세습문제’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했다. 그는 “’세습’이란 이름을 붙이는 데엔 나름 거기에 힘이 있고 권력이 있고 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지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선교하는 이들에겐 ‘세습’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돈이나 권력 등 세상이 추구하는 요소가 이들에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면서 “만약 기독교(교회)에 힘과 권력, 재력이 모이기 시작한다면, 더 이상 진실된 기독교로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결국엔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실 것이다”고 했다.


그는 바울의 복음 전파의 철학을 언급하면서 ‘눈높이의 원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고전9:19-23)’라는 구절에서 나타나듯, 바울은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했다. 이것이 얼마나 복음적인 원리인가?”


끝으로 그는 “한 분이신 주님을 믿고 한 성령 안에서 세례받고 한 교회에서 1-2년도 아니고 십여년을 신앙생활 했음에도 불구하고 통하지 않는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죄의 ‘벽(교만)’ 때문”이라면서 “주님이 낮아지셨던 것처럼 낮아지고 내려가자”고 권면함으로써 강연을 마무리했다.


건강한 공동체 위한 소통의 원리
복음적 대화를 회복하라


이튿날 새벽 6시. 세 번째 강의를 맡은 박영배 목사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소통의 원리’(살전5:12-28)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피스메이커 사역을 15년째 이어 오고 있는 박 목사는 이날 강연에서 올바른 언어 사용을 통한 소통의 회복에 초점을 맞춰 복음적 원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해 소개하면서, ‘타인과의 소통의 원리’, ‘자기 자신과의 소통의 원리’, ‘하나님과의 소통의 원리’ 등 세 가지 측면에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구체적이고도 매우 실천적인 방법론들을 제시했다.


그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지 못하는 요소는 자기 마음대로 하길 원하는 욕구다. 타인을 무시하려는 욕망이 내 마음 깊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도 원하지 않는 말들을 실수로 내뱉게 되거나, 때로는 고의적으로 가시 돋힌 말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적인 모습이 있다. 혀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봐야 한다. 그런데 좋은 소통의 시작은 경청에서부터 나온다”면서 올바른 복음적 대화법을 훈련함으로써 건강한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먼저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있어 ▷복음적 대화의 원리를 소개하면서 “언어의 내용뿐 아니라 태도가 중요하다. 대화할 때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는지, 아니면 무시하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이어 ▷경청의 원리 ▷(교회 내 섬기는 자들을) 세워주는 원리 ▷인내의 원리를 복음적 대화를 위한 기술적인 원리로 꼽았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내 마음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예수 믿고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신다’는 (성도의 견인) 말씀처럼, 결국엔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케 하시며 강건케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어 강연 말미에서 “앞서 언급한 복음적 대화법을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아무리 잘 사용하고 있다 해도,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지 않는 한 올바른 언어 사용을 할 수 없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회 , 세상과 소통하려면…
복음의 핵심 붙들어야


여기까지 소통에 대해 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본 복음적 원리와 이를 교회 내에서 구체적으로 실천 가능한 복음적 대화법에 대해 조명했다. 그렇다면, ‘교회 혹은 기독교가 세상과의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란 문제가 남았다.


이에 대해 김태권 목사는 ‘세상과 소통하기: 비판적 연대성의 실천’이라는 주제의 설교를 통해 “소통의 기본 문제는 단순히 말이나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이며, 본질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말이 안 통해도 진정한 소통은 이뤄질 수 있다. 하나님은 소통의 문제를 말로 해결하시지 않으셨다. 빌립보서 2장에 나오듯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낮아지시되 끝까지 낮아지신 종의 형체를 띠셨다. 그것도 모자라 십자가에 달려 몸소 죽기까지 우리와 소통하길 원하셨다”면서 소통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십자가에 있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베드로전서 3장 13-16절을 본문을 근거로 “구원받은 백성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은 선행에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자세를 통해 세상은 복음을 향해 소통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고난받기를 거부하고, 세상적인 축복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를 담대히 선포하고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또 하나의 원리로, ‘그리스도의 주(主)되심을 인정하는 자세’를 들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붙들고 살 때 세상사람들이 거룩한 경외감을 갖고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것”이라면서 “과연 오늘날 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고 도전했다.


지식 넘어 고백적 신앙으로


사흘간 이어진 이번 컨퍼런스에서 대미를 장식한 한성윤 목사. 그는 ‘정보적 신앙이 아닌, 고백적 신앙을 향하여’(요6:22-29)라는 제하의 설교를 통해 ‘소통’이라는 개념을 창조와 타락,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에 각각 대입시켜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가미해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대한 소통이 시작됐다.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서의 아름다운 소통 작업은 첫 사람 아담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타락 이전의 인간에겐 눈에 보이며 느껴지는 ‘정보적 사실’와 그 뜻을 해석한 ‘진실적 고백’이 일치했다. 그러나 타락 이후 사실과 진실이 갈라지면서, 사실상 인간은 진실로부터 소외받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나님과의 소통도 멀어지게 됐다”면서 ‘소통은 곧 창조요, 구원(재창조)’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 소통을 풀어내면서 “사랑할 때 진정한 소통이 일어난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일어나야 하는데, 우리 안에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헛된(거짓된) 지식에 불과하다. 정보적 지식과 고백이 하나되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길 바란다”고 권면했다.


한편, 사흘간의 뜨거운 담론에 이어 집회 마지막날엔 소통을 주제로 한 행사답게 참가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좌담회 순서가 마련돼 청중과 소통하는 장이 마련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