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세상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종말 상황속에서 위로와 소망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 하고 있다. 가정문제, 경제문제, 국가적인 비극 등 우리는 온갖 불행한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만사를 주권적으로 섭리하신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통제하신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성경이 바로 창세기다. 창세기는 온갖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증언한다. 창세기 1장이 말하는 대로 태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무에서 창조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주인이시다. 다음에 창세기 3장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죄가 침투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통제하지 못하셨다는 증거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죄가 세상에 들어온 상황에서도 죄와 죽음을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다.
다시 창세기 6, 7장을 보자. 당시 인류는 돌이킬 수없을 정도로 부패하고 사악했다. 하나님은 홍수로 땅 위의 생명체를 모두 심판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이 통제력을 상실하셨다는 증거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을 구원해 세상에 다시 사람들을 퍼뜨리셨다. 노아의 가정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였다. 홍수시대가 지난 뒤에 인류는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그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살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한 곳에 모여 살려고 했다. 그들은 높은 탑을 쌓아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에 닿으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상실되었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곧 이들에게 개입하셨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 그들의 계획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나님은 일단 계획을 세우시면 인간의 불순종과 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신다. 그와 같은 패턴은 성경시대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혼란, 의심,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든 상황을 통제하신다. 거의 모든 사람이 실망, 의심, 두려움, 외로움을 느끼며 고통가운데서 인간적인 하소연으로 밤을 지새웠던 경험이 있다. 세상 친구와 달리 믿음의 친구는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충고로 격려한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고 역경이 아무리 심해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이 만사를 주관하신다는 진리 안에 굳게 닻을 내려야 한다. 아무리 심한 시련에 직면하더라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확신한다면 마음 속에서 큰 능력과 믿음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신앙의 선조들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명확히 깨달았고 그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었다.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그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다는 식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사실 하나님을 옹호할 의도를 가진 사람도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 아닙니다. 그분의 동의없이 그냥 일어난 사건일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식의 논리는 우주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왜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에 소극적일까? 첫째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가르치는 성경말씀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가 상상하는 대로 짜 맞추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의를 자신들의 의로 대체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이들은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사건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그것과 상관이 없는 인위적인 이유에 국한시킨다.
하나만 물어보자. 만일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지 않으시면 누가 그 사건의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 아무도 통제하는 존재가 없으면 모든 사건은 우연에 의한 것이란 말인가? 심지어 기독교인들조차 ‘운수’나 ‘행운’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만물을 우연에 맡기지 않고 친히 다스린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운으로 대체할 경우에는 우주에는 아무 목적이나 질서가 없고, 우리는 우연의 희생물이 될 수 밖에 없다. 만일 그렇다면 이따금 행복할 뿐 대부분은 불만족스럽고,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세상만사를 온전히 통제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만사를 섭리하신다.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하나님의 주권을 언급하는 구절을 보라. 하나님이 만물을 상대로 직접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시는 증거가 성경 맨 첫 구절에서부터 명시되어 나타난다.
즉 창세기 1장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무에서 창조하셨다. 지구와 다른 행성들은 물론 은하계, 태양계, 중력, 시간, 공간 등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것을 누가 유지관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뿐이시다. 인간이 농사를 짓더라도 자연 환경과 기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허락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자연을 다시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다. 종말이 가까워 오면서 천재지변과 전쟁과 테러와 온갖 재해가 인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주와 세계와 열방을 그 분의 계획아래 통제하고 계신다. 그분의 계획은 성취된다. 그 분의 계획을 위해 쓰임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다시 창세기 6, 7장을 보자. 당시 인류는 돌이킬 수없을 정도로 부패하고 사악했다. 하나님은 홍수로 땅 위의 생명체를 모두 심판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이 통제력을 상실하셨다는 증거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을 구원해 세상에 다시 사람들을 퍼뜨리셨다. 노아의 가정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였다. 홍수시대가 지난 뒤에 인류는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그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살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한 곳에 모여 살려고 했다. 그들은 높은 탑을 쌓아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에 닿으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상실되었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곧 이들에게 개입하셨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 그들의 계획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나님은 일단 계획을 세우시면 인간의 불순종과 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신다. 그와 같은 패턴은 성경시대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혼란, 의심,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든 상황을 통제하신다. 거의 모든 사람이 실망, 의심, 두려움, 외로움을 느끼며 고통가운데서 인간적인 하소연으로 밤을 지새웠던 경험이 있다. 세상 친구와 달리 믿음의 친구는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충고로 격려한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고 역경이 아무리 심해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이 만사를 주관하신다는 진리 안에 굳게 닻을 내려야 한다. 아무리 심한 시련에 직면하더라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확신한다면 마음 속에서 큰 능력과 믿음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신앙의 선조들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명확히 깨달았고 그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었다.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그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다는 식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사실 하나님을 옹호할 의도를 가진 사람도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 아닙니다. 그분의 동의없이 그냥 일어난 사건일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식의 논리는 우주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왜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에 소극적일까? 첫째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가르치는 성경말씀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가 상상하는 대로 짜 맞추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의를 자신들의 의로 대체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이들은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사건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그것과 상관이 없는 인위적인 이유에 국한시킨다.
하나만 물어보자. 만일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지 않으시면 누가 그 사건의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 아무도 통제하는 존재가 없으면 모든 사건은 우연에 의한 것이란 말인가? 심지어 기독교인들조차 ‘운수’나 ‘행운’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만물을 우연에 맡기지 않고 친히 다스린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운으로 대체할 경우에는 우주에는 아무 목적이나 질서가 없고, 우리는 우연의 희생물이 될 수 밖에 없다. 만일 그렇다면 이따금 행복할 뿐 대부분은 불만족스럽고,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세상만사를 온전히 통제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만사를 섭리하신다.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하나님의 주권을 언급하는 구절을 보라. 하나님이 만물을 상대로 직접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시는 증거가 성경 맨 첫 구절에서부터 명시되어 나타난다.
즉 창세기 1장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무에서 창조하셨다. 지구와 다른 행성들은 물론 은하계, 태양계, 중력, 시간, 공간 등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것을 누가 유지관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뿐이시다. 인간이 농사를 짓더라도 자연 환경과 기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허락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자연을 다시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다. 종말이 가까워 오면서 천재지변과 전쟁과 테러와 온갖 재해가 인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주와 세계와 열방을 그 분의 계획아래 통제하고 계신다. 그분의 계획은 성취된다. 그 분의 계획을 위해 쓰임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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