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출간된 기독교계 최고의 스테디셀러 『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주인공 안요한 목사가 지난 12일(금)부터 14일(주일)까지 애틀랜타를 방문, 크리스탈한인교회(담임 류성진 목사)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새빛복지재단 이사장이자 새빛맹인선교회 회장으로 사역하고 있는 안요한 목사는 엘에이와 보스톤, 워싱턴DC, 조지아 콜럼버스 등을 거쳐 애틀랜타에 도착했으며 이후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미주투어 일정을 마무리한다.
과거,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면 땅끝까지라도 달려가 증거하겠다고 서원했던 안요한 목사는 지금까지 80여개국을 다니며 복음을 증거했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두 달여간에 걸쳐 미주투어을 소화하고 있다.
긴 여행에도 불구하고 지난 12일 말씀을 전하는 안요한 목사의 얼굴에선 지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30년 넘게 맹인 사역을 해 오며 장애마저 웃음으로 승화시켜낸 안 목사는 이날 밝은 모습과 유쾌한 메시지로 성도들의 가슴을 적셔냈다.
다음은 이날 전한 안요한 목사의 간증.
아버지는 큰 부자였다. 그런데 한 선교사에게 전도되면서 가진 재산 모두를 내어 놓았다. 늦게 신학공부를 하게 됐고 30여개 교회를 개척했다. 아버지가 목회자란 이유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놀림이나 부담을 받는 것이 싫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믿었고 그것이 교만의 시작이었다.
출근을 몇 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족 중 눈 나쁜 사람도 없는데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좋다는 병원은 다 가봤다. 바늘로 등에 구멍을 뚫어 눈을 뜨게 한다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곳에는 가지 않으려 했는데 큰 딸의 ‘아빠가 장님이면 친구들이 같이 안 논데’라는 말에 결국 치료 받으러 가게 됐다. 그곳에서 4시간에 걸쳐 307군데 구멍을 뚫었다. 결국 눈을 못 떴다.
당시 사회 인식에 시각 장애인은 ‘저주 받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친구들도 다 떠났고 아내도 떠났다. 두려움과 외로움, 좌절, 절망이 몰려왔다. 죽고 싶은데 죽어지지가 않았다.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살아야 할 이유가 되셨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겠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다. 존재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었다.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몰아내셨다.
한번은 연변과기대에 가서 집회를 한 일이었었다. 그곳에는 부모님은 이혼하고 동생은 사고로 죽어 졸지에 고아가 된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이 여학생은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을 날을 정해 놓았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이 성령의 도움으로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얼마누 삶의 의미를 회복해 살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름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 시각장애인이 되고 난 후 배가 고파 남의 집 문을 두드리면 소금을 부려댔다. 당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눈뜬 거지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너무 아프고 허기져 있는데 지나가던 한 중년부인이 근처 약국에서 약을 지어 주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땅의 천사이다. 이후에도 이런 천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계속 걸어가다가 서울역에 도착하게 됐다. 그곳에서 만난 구두닦이와 넝마주이들이 나를 돌봐줬다.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들이었지만 돌봐줬다.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고민해 봤다. 그들에게 ‘너희들 하나님 아니, 예수님과 십자가는 아니’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들에게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해야 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
시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뀐다. 나는 무능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가 왜 맹인이 되고 넝마주이 아이들을 만나게 됐나 고민하던 것들은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그 때 하나님께 약속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이면 땅끝까지라고 가서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그간 80여개국을 다녔다. 애틀랜타도 LA와 보스톤, 워싱톤DC, 콜럼버스 등을 거쳐왔다. 나는 복음에 빚진 자 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년에 10만명이 행방불명 된다. 나는 시각장애인이 되고 얼마든지 누군가에게 잡혀갈 수 있었지만 잡혀가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감기셨다. 여러분도 인생 살아오며 힘든 일이 있을 것이다.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감사를 회복하면 새로운 감사의 제목을 주신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새빛복지재단 이사장이자 새빛맹인선교회 회장으로 사역하고 있는 안요한 목사는 엘에이와 보스톤, 워싱턴DC, 조지아 콜럼버스 등을 거쳐 애틀랜타에 도착했으며 이후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미주투어 일정을 마무리한다.
과거,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면 땅끝까지라도 달려가 증거하겠다고 서원했던 안요한 목사는 지금까지 80여개국을 다니며 복음을 증거했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두 달여간에 걸쳐 미주투어을 소화하고 있다.
긴 여행에도 불구하고 지난 12일 말씀을 전하는 안요한 목사의 얼굴에선 지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30년 넘게 맹인 사역을 해 오며 장애마저 웃음으로 승화시켜낸 안 목사는 이날 밝은 모습과 유쾌한 메시지로 성도들의 가슴을 적셔냈다.
다음은 이날 전한 안요한 목사의 간증.
아버지는 큰 부자였다. 그런데 한 선교사에게 전도되면서 가진 재산 모두를 내어 놓았다. 늦게 신학공부를 하게 됐고 30여개 교회를 개척했다. 아버지가 목회자란 이유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놀림이나 부담을 받는 것이 싫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믿었고 그것이 교만의 시작이었다.
출근을 몇 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족 중 눈 나쁜 사람도 없는데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좋다는 병원은 다 가봤다. 바늘로 등에 구멍을 뚫어 눈을 뜨게 한다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곳에는 가지 않으려 했는데 큰 딸의 ‘아빠가 장님이면 친구들이 같이 안 논데’라는 말에 결국 치료 받으러 가게 됐다. 그곳에서 4시간에 걸쳐 307군데 구멍을 뚫었다. 결국 눈을 못 떴다.
당시 사회 인식에 시각 장애인은 ‘저주 받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친구들도 다 떠났고 아내도 떠났다. 두려움과 외로움, 좌절, 절망이 몰려왔다. 죽고 싶은데 죽어지지가 않았다.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살아야 할 이유가 되셨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겠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다. 존재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었다.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몰아내셨다.
한번은 연변과기대에 가서 집회를 한 일이었었다. 그곳에는 부모님은 이혼하고 동생은 사고로 죽어 졸지에 고아가 된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이 여학생은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을 날을 정해 놓았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이 성령의 도움으로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얼마누 삶의 의미를 회복해 살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름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 시각장애인이 되고 난 후 배가 고파 남의 집 문을 두드리면 소금을 부려댔다. 당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눈뜬 거지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너무 아프고 허기져 있는데 지나가던 한 중년부인이 근처 약국에서 약을 지어 주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땅의 천사이다. 이후에도 이런 천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계속 걸어가다가 서울역에 도착하게 됐다. 그곳에서 만난 구두닦이와 넝마주이들이 나를 돌봐줬다.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들이었지만 돌봐줬다.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고민해 봤다. 그들에게 ‘너희들 하나님 아니, 예수님과 십자가는 아니’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들에게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해야 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
시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뀐다. 나는 무능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가 왜 맹인이 되고 넝마주이 아이들을 만나게 됐나 고민하던 것들은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그 때 하나님께 약속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이면 땅끝까지라고 가서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그간 80여개국을 다녔다. 애틀랜타도 LA와 보스톤, 워싱톤DC, 콜럼버스 등을 거쳐왔다. 나는 복음에 빚진 자 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년에 10만명이 행방불명 된다. 나는 시각장애인이 되고 얼마든지 누군가에게 잡혀갈 수 있었지만 잡혀가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감기셨다. 여러분도 인생 살아오며 힘든 일이 있을 것이다.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감사를 회복하면 새로운 감사의 제목을 주신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