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복서 출신 오페라 가수로 '동양의 파바로티'라 불리는 조용갑 테너가 애틀랜타를 방문, 지난 9일(주일) 오후 2시 안디옥교회(담임 허연행 목사)에서 간증 집회를 가졌다. 이날 조용갑 테너는 프로복서에서 오페라 가수가 된 극적인 이야기를 간증하고 다양한 곡들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타향살이를 시작, 온갖 궂은일을 닥치는대로 하다가 프로복서로 데뷔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오페라 가수로 성공한 그의 삶은 이날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조용갑 테너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반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다가 패거리들에게 엊어 맞은 이후 청량리에 있는 권투도장을 찾아갔다. 복수를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서울기계기술고등학교 전자과에 다니면서 신문팔이, 자장면 배달, 호떡장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해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다.

서울에 올라와 힘든 타향살이를 하며 예수님을 만나게 됐다는 조 테너는 “절망적인 내 삶에 소망이 생기고 기적이 일어났다. 십자가 사건이 나를 위한 주님의 희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회개하게 됐다. 하루 하루의 삶이 감사로 바뀌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니 삶이 즐겁고 행복했다”고 간증했다.

그는 27살에 치룬 마지막 시합에서 패배한 후 5년 동안의 복서생활을 마치게 됐다.

이후 당시에 섬기고 있던 교회 담임 목사의 지원과 권유로 유학의 길에 오른 그는 조수미 등 세계적인 성악가를 배출한 산타 체칠리아(Santa Cecilia) 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성악공부를 시작했다. 하루 8시간 이상씩 계속된 연습으로 목에 결절이 생겨 위험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조 테너는 “권투 했던 스타일로 무식하게 하루 종일 연습했다. 성대 양쪽에 결절이 생겨 병원에서는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기도 소리가 나오지 않아 흐느껴 눈물로만 기도했다. 그 때 기도를 통해 ‘소리를 돌려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찬양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6개월 후 다시 찬양 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통해 한층 성숙하게 되었다는 그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도하면서 나아가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더 많은 성과를 이루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