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세상에 나와 제일 잘한일이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거라 말하고싶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게해주고, 끊임없이 주어도 성이 차지 않는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해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효도를 바라지 말라고, 7살 이전에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효를 다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눈도 뜨지 못하는 갓난아이때부터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고 하나하나 성장해 나가는 그 주옥같은 시간들이 이미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부모님들은 다 아실것이다. 처음으로 “엄마” 하고 아이가 불렀던 그 순간을 다들 기억하시는지….
우리 둘째 아들 유진이는 올 4월 12일이면 만으로 6살이 된다. 나는 아직 유진이가 나를 쳐다보며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우리 유진이는 자폐증을 가진 아이이다.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그 진단명을 우리 유진이는 3살 8개월에 받았다.
유진이가 생후 4개월이 되었을때부터 나는 직장일로 미국내 여기 저기 출장을 다녔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3주일이 걸리는 출장이었다. 그 당시에는 시부모님이랑 같이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게 그리 큰 타격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이라는 굴레가 넉넉치 않아 직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유진이는 내가 출장 가있는 내내 감기로 아팠다. 큰아이인 어스틴도 걸리지만 갓난아이 유진이가 정말 마음에 걸렸다. 내가 출장에서 돌아오면 몇시간이 지나야 나에게 안기곤 했다. 유진이가 엄마에게 익숙해 질만하면 나는 또 출장을 가야 했다. 아이들은 시계를 모르지만 엄마가 직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본능적으로 안다고 한다. 그 아이들만의 시간에 엄마가 들어오지 않으면 아이들마다 그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 유진이는 말을 안하는거로 화를 냈던거 같다. 게다가 한번 호되게 중이염을 앓았던 적이 있다. 그때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고 집에 와 아침에 잠든 아이를 보고 출근을 했다.
한살이 지나고 두살이 지나도 유진이는 여전히 말을 안했다. 어른들은 말이 늦는 아이라고 하셨다. 당시에는그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을 것이다. 말 이외에는 눈치도 빠르고 잘웃고 ..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데다 소아과 의사도 괜찮다고 하니…게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무런 의심도 하질 않았다.
주중에는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는 집안일을 하니 누구를 만날 시간도 없고 신문이나 티비를 볼 시간이 없으니 아이의 문제에 대해 눈뜬 봉사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던 귀머거리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다 유진이가 3살이 되었을때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의사한테 뭐라도 해달라고 하여 청각 검사부터 하기로 했는데, 유진이가 얼마나 우는지 검사는 하지도 못했다. 그 의사가 school district에 가보라고 하였다.
School District에서 총 6시간의 assessment 를 통해 한달뒤 Autism 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그 단어를 처음보는거라 사전을 찾았더니 자폐증 이라고 나왔다.
이게 뭘까? 영화나 소설에서 간혹 보든건데…?? 얼마나 무식한 엄마였는지…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유진이의 특이한 점들이 주욱 있었다. 세상이 무너진다는게 이런건가, 하늘이 노래지고 내머리속이 하얗게, 모든 배경이 지워져 버리고 백지가 되는 느낌… 게다가 ‘평생 완치가 불가능한 장애”라는 글 앞 에서는 아예 내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아닐거야, 우리 유진이는 괜찮아 질거야… 그러나 심각한 언어 딜레이와 전혀 소셜이 없는 가장 두드러진 그 두가지를 보면서 유진이의 자폐증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기 까지 피를 말리는 6개월이 내인생에 가장 아픈 때였다. 당장 직장을 바꾸고, 그렇다면 이제 내가 쓸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인 한도내에서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 자료를 모으고 학교 미팅을 요청하고, 사립 테라피를 알아보면서 고군분투했다. 그러던 와중에 인터넷을 통해 우리 큰아이가 ADD/Learning disability 라는걸 발견했다.
영특한 아이가 왜 학교 공부는 못따라갈까 항상 그게 문제 였는데 바로 attention 의 문제였던것이다. 의사도 선생님도 아무도 꼭 집어 내질 못한걸 이제야 엄마인 내가 발견한것이다. 또 한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얘는 또 뭘 어떻게 해야하는데?
하나님 왜 이렇게 저에게 많은숙제를 한꺼번에 주십니까? 유진이 일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어스틴 IEP 미팅을 하고 의사들을 찾아보고 책을 보고 인터넷을 서치하며 서서히 어스틴의 장애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장애 외에 어스틴은 항상 코막힘이 있었고, 유진이는 아토피가 심하다. 어스틴은 항생제을 먹이기에 앞서 죽염을 미지근한 물에 녹여 밤마다 코속을 씻어냈다. 한 달을 하고나서 말끔히 낳았다. 물고문도 아니고 어스틴이 고생이 많았다. 유진이의 아토피는 정말 용서할 수 없는 무법자이다. 밤마다 잠을 못잘 정도이고, 아침에는 이불에 피가 군데 군데 묻어나올 정도이다. 꾸준하고 철저한 식이요법과 청결이 최우선이라 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이고 일주일에 한번씩 이부자리를 세탁하고 100% 면으로 된 옷만 입힌다. 아울러 보조 영양제 섭취로 면역체계를 강화시켜주는 근본적인 치료요법을 택했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지만 스테로이드 연고 사용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서이다.
이러한 모든 노력과 함께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주는 밀알 선교단 산하 사랑의 교실을 알게 되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 아이들을맡아 주는 학교다. 1년전 처음 방문했을때 다른 아이들을 보고 너무 겁이 나고 무서워서 발을 끊었다가 다시 내발로 돌아왔다. 나는 몇달을 인터넷과 씨름하며 얻는 정보들이 이곳에서는 단 몇시간만에 다 나온다.
이곳의 엄마들의 지식과 경험은 박사 수준이다.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영양제는 무엇을 먹이고, 공부는 어떻게 시키고, 행동교정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등등….내 아이, 다른 집 아이 할거 없이 똑 같은 사랑으로 같이 기뻐해주고 걱정해 주는 부모님들이 모인 엄청난 resource 가 있는곳이다.
또한 목사님, 사모님 아래 간사님들과 특수 교사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 천사 같은 자봉들… 친구들이랑 놀고, 공부하기에도 바쁜 시간을 틈내 우리 아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돌봐주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얼마나 기특하고 예쁜지….
이제는 나혼자 가는 외롭고 힘든 길이 아니라 같이 가는 “우리”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나의 보석, 어스틴과 유진이로 인해 아름답고 거룩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며
우리 아이들도 그들처럼 장차 남을 돕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 아이들을 하나님에게 받아서 울기보다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유진이가 “I want rice” 라고 말했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자기 이름을 썼을때, 코끼리를 그렸을때 이 세상이 모두 내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갈림길에서 나를 돌아보며 나의 지시를 기다렸을때, 차가 오니 뒤로 물러섰을때…. 밤에 한번도 안 긁고 잠을 푹 자고 났을때 편식이 너무도 심해서 섬유질은 전혀 안먹는 아이가 고구마를 처음으로 베어 물었을때 과일은 사과 밖에 안먹는 아이가 귤을 씹어 삼켰을때….
나에게는 기쁜 일이 너무도 많다. 너무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만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우리 유진이 밤마다 유진이의 온 몸을 맛사지하고 두드려 주며 “우리 유진이 최고” 하면서 두 엄지를 치켜 세우면 유진이도 똑 같이 나에게 해 준다. 어스틴은 내 뒤에서 내 어깨를 두드려 주며 “엄마 시원해요?” 한다. 남편은 옆에서 “엄마는 내꺼야” 한마디 하고….
그 순간만은 이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행복한 가정이 된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게해주고, 끊임없이 주어도 성이 차지 않는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해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효도를 바라지 말라고, 7살 이전에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효를 다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눈도 뜨지 못하는 갓난아이때부터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고 하나하나 성장해 나가는 그 주옥같은 시간들이 이미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부모님들은 다 아실것이다. 처음으로 “엄마” 하고 아이가 불렀던 그 순간을 다들 기억하시는지….
우리 둘째 아들 유진이는 올 4월 12일이면 만으로 6살이 된다. 나는 아직 유진이가 나를 쳐다보며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우리 유진이는 자폐증을 가진 아이이다.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그 진단명을 우리 유진이는 3살 8개월에 받았다.
유진이가 생후 4개월이 되었을때부터 나는 직장일로 미국내 여기 저기 출장을 다녔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3주일이 걸리는 출장이었다. 그 당시에는 시부모님이랑 같이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게 그리 큰 타격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이라는 굴레가 넉넉치 않아 직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유진이는 내가 출장 가있는 내내 감기로 아팠다. 큰아이인 어스틴도 걸리지만 갓난아이 유진이가 정말 마음에 걸렸다. 내가 출장에서 돌아오면 몇시간이 지나야 나에게 안기곤 했다. 유진이가 엄마에게 익숙해 질만하면 나는 또 출장을 가야 했다. 아이들은 시계를 모르지만 엄마가 직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본능적으로 안다고 한다. 그 아이들만의 시간에 엄마가 들어오지 않으면 아이들마다 그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 유진이는 말을 안하는거로 화를 냈던거 같다. 게다가 한번 호되게 중이염을 앓았던 적이 있다. 그때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고 집에 와 아침에 잠든 아이를 보고 출근을 했다.
한살이 지나고 두살이 지나도 유진이는 여전히 말을 안했다. 어른들은 말이 늦는 아이라고 하셨다. 당시에는그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을 것이다. 말 이외에는 눈치도 빠르고 잘웃고 ..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데다 소아과 의사도 괜찮다고 하니…게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무런 의심도 하질 않았다.
주중에는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는 집안일을 하니 누구를 만날 시간도 없고 신문이나 티비를 볼 시간이 없으니 아이의 문제에 대해 눈뜬 봉사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던 귀머거리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다 유진이가 3살이 되었을때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의사한테 뭐라도 해달라고 하여 청각 검사부터 하기로 했는데, 유진이가 얼마나 우는지 검사는 하지도 못했다. 그 의사가 school district에 가보라고 하였다.
School District에서 총 6시간의 assessment 를 통해 한달뒤 Autism 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그 단어를 처음보는거라 사전을 찾았더니 자폐증 이라고 나왔다.
이게 뭘까? 영화나 소설에서 간혹 보든건데…?? 얼마나 무식한 엄마였는지…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유진이의 특이한 점들이 주욱 있었다. 세상이 무너진다는게 이런건가, 하늘이 노래지고 내머리속이 하얗게, 모든 배경이 지워져 버리고 백지가 되는 느낌… 게다가 ‘평생 완치가 불가능한 장애”라는 글 앞 에서는 아예 내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아닐거야, 우리 유진이는 괜찮아 질거야… 그러나 심각한 언어 딜레이와 전혀 소셜이 없는 가장 두드러진 그 두가지를 보면서 유진이의 자폐증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기 까지 피를 말리는 6개월이 내인생에 가장 아픈 때였다. 당장 직장을 바꾸고, 그렇다면 이제 내가 쓸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인 한도내에서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 자료를 모으고 학교 미팅을 요청하고, 사립 테라피를 알아보면서 고군분투했다. 그러던 와중에 인터넷을 통해 우리 큰아이가 ADD/Learning disability 라는걸 발견했다.
영특한 아이가 왜 학교 공부는 못따라갈까 항상 그게 문제 였는데 바로 attention 의 문제였던것이다. 의사도 선생님도 아무도 꼭 집어 내질 못한걸 이제야 엄마인 내가 발견한것이다. 또 한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얘는 또 뭘 어떻게 해야하는데?
하나님 왜 이렇게 저에게 많은숙제를 한꺼번에 주십니까? 유진이 일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어스틴 IEP 미팅을 하고 의사들을 찾아보고 책을 보고 인터넷을 서치하며 서서히 어스틴의 장애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장애 외에 어스틴은 항상 코막힘이 있었고, 유진이는 아토피가 심하다. 어스틴은 항생제을 먹이기에 앞서 죽염을 미지근한 물에 녹여 밤마다 코속을 씻어냈다. 한 달을 하고나서 말끔히 낳았다. 물고문도 아니고 어스틴이 고생이 많았다. 유진이의 아토피는 정말 용서할 수 없는 무법자이다. 밤마다 잠을 못잘 정도이고, 아침에는 이불에 피가 군데 군데 묻어나올 정도이다. 꾸준하고 철저한 식이요법과 청결이 최우선이라 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이고 일주일에 한번씩 이부자리를 세탁하고 100% 면으로 된 옷만 입힌다. 아울러 보조 영양제 섭취로 면역체계를 강화시켜주는 근본적인 치료요법을 택했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지만 스테로이드 연고 사용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서이다.
이러한 모든 노력과 함께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주는 밀알 선교단 산하 사랑의 교실을 알게 되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 아이들을맡아 주는 학교다. 1년전 처음 방문했을때 다른 아이들을 보고 너무 겁이 나고 무서워서 발을 끊었다가 다시 내발로 돌아왔다. 나는 몇달을 인터넷과 씨름하며 얻는 정보들이 이곳에서는 단 몇시간만에 다 나온다.
이곳의 엄마들의 지식과 경험은 박사 수준이다.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영양제는 무엇을 먹이고, 공부는 어떻게 시키고, 행동교정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등등….내 아이, 다른 집 아이 할거 없이 똑 같은 사랑으로 같이 기뻐해주고 걱정해 주는 부모님들이 모인 엄청난 resource 가 있는곳이다.
또한 목사님, 사모님 아래 간사님들과 특수 교사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 천사 같은 자봉들… 친구들이랑 놀고, 공부하기에도 바쁜 시간을 틈내 우리 아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돌봐주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얼마나 기특하고 예쁜지….
이제는 나혼자 가는 외롭고 힘든 길이 아니라 같이 가는 “우리”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나의 보석, 어스틴과 유진이로 인해 아름답고 거룩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며
우리 아이들도 그들처럼 장차 남을 돕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 아이들을 하나님에게 받아서 울기보다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유진이가 “I want rice” 라고 말했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자기 이름을 썼을때, 코끼리를 그렸을때 이 세상이 모두 내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갈림길에서 나를 돌아보며 나의 지시를 기다렸을때, 차가 오니 뒤로 물러섰을때…. 밤에 한번도 안 긁고 잠을 푹 자고 났을때 편식이 너무도 심해서 섬유질은 전혀 안먹는 아이가 고구마를 처음으로 베어 물었을때 과일은 사과 밖에 안먹는 아이가 귤을 씹어 삼켰을때….
나에게는 기쁜 일이 너무도 많다. 너무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만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우리 유진이 밤마다 유진이의 온 몸을 맛사지하고 두드려 주며 “우리 유진이 최고” 하면서 두 엄지를 치켜 세우면 유진이도 똑 같이 나에게 해 준다. 어스틴은 내 뒤에서 내 어깨를 두드려 주며 “엄마 시원해요?” 한다. 남편은 옆에서 “엄마는 내꺼야” 한마디 하고….
그 순간만은 이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행복한 가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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