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최영돈

회장 선출 시기 및 방법 : 1993년 9월 9일 오후 4시 최영돈 회장 후보와 우성구, 오홍식 부회장 후보가 한 팀으로 한인회장단 후보로 등록하였다. 이 팀이 단독으로 등록함으로써 최영돈 회장 후보는 애틀랜타 차기 한인회장으로 확정되었다.

임원진 : 회장 최영돈, 부회장 2명(우성구, 오홍식), 사무총장 전종명(1995년 3월 13일 이후 오태석), 사무차장 박경상, 총무부장 미정, 행사부장 김민정, 재무부장 채수만, 부녀부장 미정, 체육부장 선우대영, 봉사부장 김훈식, 홍보부장 이숙영, 청소년부장 조혜정, 대외섭외부장 정호승, 사회복지부장 최인숙, 이사진 26명(김경자, 김경환, 김도현, 김동문, 김예순, 김태호, 김훈, 박명자, 양용삼, 엄수나, 엄영일, 오춘길, 오홍식, 우성구, 은종국, 이국자, 이상춘, 이영구, 이윤태, 이정우, 이진, 임석남, 조상진, 최영돈, 최응호, 한성희) 4인 미정.

특기 사항 및 활동 : - 1993년 12월 28일 집행부와 이사회를 구성하여 발표하였다.
-1994년 2월 27일 영락 장로 교회에서 애틀랜타 한인회는 삼일절 기념 행사를 거행하였다.
-1994년 3월 8일 애틀랜타 한인회 부회장과 조지아 대한 체육회장을 함께 맡아온 오홍식씨가 모든 공직에서 전격 사퇴하였다. 그는 “회사의 신규 사업 구상에 따른 가족들의 권유로 사퇴한다.”라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1994년 6월 4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럼비아 시 리치랜드 노스웨스트 고교에서 개최된 동남부 한인 종합 체육 대회에서 애틀랜타 선수단이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다.
-1994년 7월 4일 미국 독립 기념일에 애틀랜타 한인회는 도라빌 아레나 체육관에서 제1회 애틀랜타 한인 대잔치를 개최하였다. 7월 3일 오후 4시부터 전야제에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수만세와 교민 노래 자랑이 있었고, 7월 4일 오전 10시부터 개회식, 다양한 놀이와 운동 경기, 무술 시범, 한복쇼와 고전 무용, 성가제, 사진 전시회 등이 진행되었다.
-1994년 8월 14일 영락 장로 교회에서 애틀랜타 한인회는 광복절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이 날 행사에는 참석 인원이 70여 명에 불과하여 한인회의 무성의한 행사 추진을 비난하는 여론이 있었다.
-1994년 9월 8일 오전 9시 30분부터 한인회 사무실에서 단체 시민권 시험 1차 신청자 39명을 대상으로 시민권 시험을 보았다.
-1994년 10월 1일부터 애틀랜타 한국 학교가 최영돈 한인회장의 중재로 귀넷 카운티 군수의 협조를 얻어 노크로스 고등학교 교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95년 3월 13일 애틀랜타 한인회 최영돈 회장은 신임 사무총장에 오태석 총무이사(40세)를 임명하였다.
-1995년 3월 중 애틀랜타 한인회, 한인 식품협회(회장 이석희), 청소년 센터(회장 이승남)등은 대학 입시(SAT Ⅱ)의 외국어 선택 과목으로 한국어를 채택시키기 위해 연구 기금 모금 운동을 활발히 펼치기로 하였다.
-1995년 3월 24일 강서회관에서 20여 명의 한인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애틀랜타 한인회는 최선호 영사 환송식과 주종운, 오낙영 영사 환영식을 개최하였다.
-1995년 5월 8일 강서회관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1995년도 사업 계획과 함께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1995년 5월 19일 동남부 한인 체육 대회를 애틀랜타 한인회가 주최하였다.
랄리가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고, 콜럼비아가 2위, 그린빌이 3위를 차지하였다.
-1995년 8월 12일 오후 7시 귀넷 시빅 센터에서 한인회 주최로 ‘광복50주년 기념 열린 음악회’가 개최되었다.
-1995년 10월 5일 애틀랜타 한인회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김종구)는 신문 광고를 통하여 “차기 한인회장단 선거에 후보 등록자가 1명뿐이고 하자가 없으므로 무투표 당선되었다.”고 공고하였다.
-1995년 12월 15일 도라빌 시청에서 (8월 한인회에서 치룬) 시민권 시험에 합격한 41명은 다시 한번 우리말로 충실한 미국 시민이 되겠다고 선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