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여서 일까요? 교회에는 말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은 다름아니라 목사인 저 일겁니다. 쉬지않고 30분만 말을 해도 머리에 쥐가 날만큼 말이 없던 제가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말쟁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변명같기도 하고 자화자찬같기도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거기에 기초한 저의 생각 외에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목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설교도 심혈을 기울여서 작성한 설교원고에 있는 말만 하려고 하고, 사석에서도 왠만하면 말을 하기보다는 들으려고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 대화하고 겪어보면서 깨달은 지혜가 몇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으뜸가는 것은 단연코 잘 말하기 전에 반드시 잘 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많은 경우 소통이 불통되는 것은 잘듣지 않아서, 또는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골라 들어서 (selective hearing)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눈을 쳐다보고 맞장구를 쳐가면서 들어야 합니다. 모든 성숙한 대화의 시작은 듣는데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다음에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면서 말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형편과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내 생각과 입장대로 말하다보면 그 말 속에는 반드시 상대방에 대한 판단과 정죄의 표현이 가득차게 됩니다. 급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약간 과격한 성품 또는 이것저것 많은 것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분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 판단과 정죄입니다. 자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쉽게 재면서 가십 (험담)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데 이것은 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아서 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진실하고 겸손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고, 돌아오는 말을 곱게 하는 비결이 바로 진실하고 겸손한 말입니다. 여기서 진실하고 겸손한 말이라고 할 때 입에서 나오는 언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하고 겸손한 말은 언제나 온 몸에서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눈빛과 눈꼬리, 눈썹과 입술모양, 목과 어깨, 손으로 하는 제스쳐와 서있는 자세등등에서 나오는 말은 입에서 나오는 말 못지않은 전달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하고 겸손한 말이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의 생각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되고 얼굴표정과 몸의 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속담도 있고 사람이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격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부단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덕을 세워주는 말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말, “잘해봐라”는 비꼬는 말, “그건 해도 안된다”는 소극적인 말, “네가 뭘 아느냐”는 식의 무시하는 말, “잘 하고 있는데 뭐하러 바꾸려 하느냐”는 식의 안일한 말 등등을 공해처럼 품어내는 교회가 아니라 “잘 될거야,”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멋있습니다, 훌륭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해드리겠습니다” 등등의 맛있고 향기로운 말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개인과 주변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지고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번 잘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