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한국인들이 총기 참사에서 보여준 아미쉬들의 처신을 따라간다면,우리는 미국내의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습니다.

아내와 나는 지난 달 한국을 방문했을때 오랜 친분을 쌓아왔던 성시화운동을 이끄시는 전용태장로님을 만났었습니다. 전장로님은 4월에 있을 라스베가스의 모임에서 100여명의 한국인 목사님들과 함께 "어떻게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한국인들이 바꿀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이번 주에 있었던 미국 역사상 최대의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 이민자임이 밝혀지면서 더욱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미국신문상에 게제된 몇 가지 범인에 대하여 미국인들이 쓴 덧글을 싣겠습니다.

"911처럼 또 다른 이민자가 우리 나라의 미국인들을 죽였다. 내가 확신하건데 그는 미국 정부로 부터 등록금 지원을 받았을 것이고, 그는 무감각하게 32명의 우리 아이들을 죽였을 것이다."

"누구든지 개를 먹는 인간들은 의심해 봐야 한다."

"더이상 아시안 이민자를 받지않는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덧글들은 미국인의 심경들을 다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미국인의 시각을 미국의 다른 언론사를 통해서 접하실수 있습니다.

이 비극이 "인종적 편견이나 대립으로 발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담은 한국 정부의 공식 발표가 보도된 후, 그리고 버지니아 공대의 한국인 학생들이 캠퍼스에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그룹으로 모여 있다는 보도후에 몇몇의 미국인들은 이러한 덧글을 달았습니다.

"범인이 확인된 후 한국인들과 전 지역의, 특별히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인종 편견이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불심 검문을 걱정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우습게 들린다"

한국인들이 총기 참사에 대해 "우리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지만 한국인들에게 분노를 표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할 때, 미국인들에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 한국인의 어느 누구에게도 분노를 표출하지 않기를 우리는 바란다."라고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미국인들에게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보호하려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만 생각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미국내에서 한국인들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버지니아 공대의 한국인들이 그룹으로 모여 있다는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미국인들이 인종적 편견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한국정부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종류의 말과 행동들이 미국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추어지느냐 하는 문제인데, 그들의 눈에는 한국인들이 이 참사에 대해 애도하고 희생자의 가족과 학생들에게 다가가려는 방법을 찾는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들을 보호하는데 급급한것으로 비춰지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시간을 한국인들과 보내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한국인들이 이번 참사로 말미암아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학생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에 대해 깊은 애도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도 더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미국인으로서 "행동은 말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라고 미국인들이 인용하기 좋아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미국인들은 이번 참극에 대하여 한국인들이 어떻게 말을 했느냐로 평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이번 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어떻게 행동으로 도왔느냐로 한국인들을 평가할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지금 한국 커뮤니티가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가까이서 지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합니까? 한국인들이 피해자의 슬픔을 말로만 표현할 것입니까? 아니면 한인 자신들만 보호하려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행동을 통해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을 제대로 보여줄 것입니까?

2006년 10월 2일, 찰스 로버츠라는 우유 트럭배달부가 아미쉬 학교에 들어가 5명의 어린 여학생들을 쏴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때 아미쉬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했을까요?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아미쉬사람들은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에게 종종 오해를 받았던 인종이기 때문입니다. 2006년 총기사건이 있기 이전에 아미쉬 사람들은 지금의 한국인들과 똑 같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미쉬 사람들은 다른 것 보다도 자기 자신들을 보호하는데만 급급하다고 미국인들은 믿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아미쉬 사람들은 그들의 현대사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 보인 아미쉬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비록 아미쉬 사람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살인자에게 잃게 되어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졌지만 그들 자신들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살해당한 날, 희생당한 소녀들 중의 한 명의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의 악함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살해당한 날, 아미쉬 사람들은 그 살인자의 아내에게 가서 그녀를 용서하고 위로했습니다. 30 여명의 아미쉬 사람들은 그 살인자의 가족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장례식에 갔었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총을 맞아 죽었지만 아미쉬 사람들은 사랑으로 응답을 했습니다. 말 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그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지금, 한국인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다른 이에게 큰 피해를 끼친 사건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에 대해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촛점을 맞추는 것은 우리의 위험을 더욱 자초할 뿐입니다. 지금은 피해자들을 돕고 살필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잡아 말이 아니라 용감하게 행동으로 처신할 때입니다.

아미쉬 사람들이 2006 총기 사건 이후에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였을 때 미국인들은 그들의 아미쉬들에 대한 편견을 바꾸었습니다. 지금 미국인들은 그들을 중요한 모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지금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번 참사에 어떻게 한국인들이 대처하느냐에 따라 미국인들은 한국인에 대해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 다음에 공적인 성명서를 만들어야 합니까? 아니면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그들의 가족들을 위로해야 합니까?

버지니아 공대의 한인 학생들에게 이번 사건으로 혼란스러워하고 공포에 떠는 학생들을 도와주도록 격려해야 합니까? 우리 개개인이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의 희생자 추도장에 꽃을 보내어 우리의 마음을 보여야 합니까?

아미쉬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희생당했을 때 말 이상의 것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벌써 몇 일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말 이상의 처신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다른 이들을 살피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우리만을 돌볼 때 가장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글 / 에릭 폴리 목사

피스메이킹 미니스트리외 다수의 NGO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 사역과 미국내 한국인 2세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