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AP=연합뉴스)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없애자는 취지로 1980년대 도입된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이라는 용어가 흑인들에게 점차 외면당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구성원이 다양해지면서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의 자손'이라는 뜻을 담은 완곡한 표현에 괴리감을 느끼는 흑인들이 늘어난 것이다.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지브레 조지(38)는 페이스북에 '나를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부르지 마세요'라는 페이지를 열어 지지자를 확보해나가고 있다. 조지는 "아프리카에서 온 조상으로부터 세대가 벌써 몇 대째 내려왔다"며 "아프리카 혈통을 존중하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용어는 나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미국인이고 전쟁이 나면 미국을 위해 싸울 것"이라며 "흑인들이 언제까지 아프리카라는 족쇄에 묶어야 하느냐"고 항변했다.


중남미 섬나라인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민 온 조앤 모건도 자신을 '캐리비안계 미국인'으로 표현하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불리길 거부한다. 모건은 미국인들은 흑인 사이에도 다양한 인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고 지적했다. 전통적 흑백 분리의 개념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종차별적 용어로 여겨져 공식석상에서 사용을 꺼지던 '흑인(black)'이라는 표현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흑인'은 스페인어로 흑색을 뜻하는 '니그로(negro)'에서 비롯된 말로, 1619년 미국에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가 도착한 이후 수백년간 비하의 뜻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미국 흑인들은 지난 1960년대 민권운동 과정에서 억압에 항거하는 뜻으로 이 용어를 받아들여 대중화시켰다.


다시 한번 변화를 일으킨 것은 흑인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였다. 잭슨 목사는 지난 1988년 대선 출마 과정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용어를 제안했고, 이는 24년간 통용됐다.


흑인들의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 2008년 케냐 출신 유학생의 자손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다. 지난해 NBC와 월스트리트저널이 흑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지칭어로 '흑인'을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42%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선호하는 응답자(35%)보다 많았다. 지난 1991~2007년 조사에서는 용어에 대한 선호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흑백 혼혈인데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오바마 대통령의 출신 성분 논란이 이어지면서 그가 반(half)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해프리간 아메리칸(halfrican-american)'이라는 말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인구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미국 흑인 10명 중 1명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며,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백인 미국인에 대한 지칭 문제도 있어 한동안 '지칭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