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황혼을 맞아 여생을 즐겨야 할 할아버지ㆍ할머니가 맞벌이 자녀가 맡긴 손자ㆍ손녀를 돌보느라 등골이 휘고 있다. 조부모들은 짧게는 주 5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내내 하루 6∼12시간씩 손자녀를 돌보면서도 위로나 감사의 말을 듣기보다 양육방식과 관련해 자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은 지난해 8월 한 달간 도내 맞벌이 가정 중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 300명을 찾아가 '손자녀 양육실태'를 조사했다. 맞벌이 가정을 대상으로 노인의 손자녀 양육실태를 조사한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25일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조부모 300명이 돌보는 손자녀는 390명이고, 이 가운데 친손은 55.4%, 외손은 44.6%로 나타났다. 손자녀 나이는 만 0세 23.1%, 만 1세 33.1%, 만 2세 26.7%로 생후 36개월 이내의 영유아가 전체 손자녀의 82.9%를 차지했고 만 3세 이상은 17.1%에 그쳤다.
손자녀 양육기간은 1년 미만이 41.4%로 가장 많았고, 1∼2년 미만이 31.3%, 2∼3년 17%, 3년 이상 10.6% 순이었다.
주당 양육일수는 '5일을 돌본다'는 조부모가 50.9%로 절반을 넘었고, 6일 29.7%였으며 '일주일 내내 돌본다'는 조부모도 18.6%로 나타났다. 390명의 손자녀 중 72명은 할머니가 일주일 내내 돌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루 중 손자녀를 돌보는 시간은 9∼11시간이라는 응답이 46%로 가장 많았고, 6∼12시간과 12시간 이상이 각각 21.7%, 5시간 이하가 10.6%로 나타나 조부모 10명당 8명 이상(89.4%)이 최소 하루 6시간 이상 손자녀를 돌보고 있음을 보여줬다.
조부모들이 이처럼 손자ㆍ손녀를 돌보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를 돌봐달라는 자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기 때문'(25.5%)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손자녀를 남에게 맡기는 게 불안해서'(19%), '손자녀가 귀엽고 보고 싶어서'(15%)라고 답했고, '자녀가 주는 생활비나 용돈의 대가로 돌본다'(1.3%)는 응답은 매우 낮았다.
대신 '자녀가 빨리 경제적으로 안정할 수 있게 하려고'(18%), '자녀가 마음 놓게 직장생활 하도록 도우려고' (13.3%), '보육시설에 맡기는 비용 절약을 위해'(5%)로 답해 맞벌이하는 자녀의 경제에 보탬이 되려고 희생하는 조부모의 마음을 나타냈다.
힘든 손자녀 돌보기를 하는 조부모가 바라는 것에 대한 질문(복수응답)에 가장 많은 47.3%가 '손자녀 돌보느라 힘들 때 자녀가 위로해 줬으면'이라고 답해 조부모는 '돈을 바란다'(19%)기 보다는 자녀의 따뜻한 관심과 위로를 더 갈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는 손자녀에 대한 양육방식(39.7%)과 양육시간(32.2%)을 두고 자녀ㆍ며느리와 갈등을 빚는 것으로 조사됐다.
손자녀를 돌보는 것에 대한 사례비를 받는 조부모는 78.3%였고, 사례비는 한 번에 평균 39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자녀를 언제까지 맡아 돌봐줄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35.3%가 '맘 놓고 보육시설에 보낼 수 있을 때까지'라고 답했고, 다음으로 '초등학교 갈 때까지'(31.7%), '딸이나 며느리가 원할 때까지'(15.7%)라고 응답했다.
연구를 담당한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 백선정(38ㆍ여) 연구위원은 "조부모들이 손자녀를 돌보느라 엄청난 중노동을 하고 있다"면서 "황혼기에 쉬지도 못하는 노인을 위해 사회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