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모처럼 홈레스 사역을 나가는 팀과 동행을 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홈레스 형제들에게 조금 특별한 선물을 주는 날이니 동참해달라는 장로님의 특명을 받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간 것이다.

언제나처럼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홈레스 형제들에게 성탄절 멧시지를 전하고 특별 찬양, 식사, 선물 증정 등으로 진행되었는데 순서마다 따뜻한 사랑과 은혜가 넘쳤다. 나는 모처럼 홈레스 형제들에게 영어로 멧시지를 전하고 그 영어 멧시지를 스페니쉬를 하는 박집사님이 통역을 했는데 톱니바퀴가 잘 맞아 돌아가는 기계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고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설교를 시작할 때 무표정 무관심으로 서있던 홈레스 형제들도 점차 말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역이 끝나고 오는데 한 집사님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아 오늘 집회모임을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어 성도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하며 아쉬워했다.

이 좋은 사역의 모습과 섬김의 장소에서 느꼈던 그 은혜들을 다른 성도들과 나눌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느끼신 것이었다. 그런 집사님의 말을 들으니 내가 조금 미안했다. 이렇게 좋은 일을 이렇게 오랜 기간 해오면서도 변변히 홍보 한 번 해드린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십 이년 동안 매주 토요일 꾸준히 홈레스 봉사를 해왔다. 크고 작은 교회들이 한바탕 떠들썩한 행사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말없이 꾸준히 봉사를 해오는 경우는 내가 아는 한 별로 없다. 그리고 이는 틀림없이 온 성도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자랑거리다. 그럼에도 심지어는 교회 성도들조차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몇몇 분이 매주 토요일 양로병원을 방문해서 노인들을 위로하고 예배하는 일도 거의 비슷한 기간 동안 계속해오고 있는데 그 또한 사실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주중에 있는 수요 여성 예배를 통해서도 많은 은혜와 신령한 열매 들이 맺어지고 있다.

은혜로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을 누리는 것은 물론 이후 교제를 통해 믿지 않는 분들을 전도하고 낙심 가운데 있는 분들이 새 힘을 얻고 있다. 어디 그 뿐이랴? 교회의 구석구석에 이런 은혜로운 열매들과 결실들이 적지 않은데 우리가 이를 격려하고 함께 나누는 일에 너무 소홀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봉사나 섬김을 누구에게 알리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고 주님 말씀대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할 것이지만 적어도 교회 안에서 만큼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자성을 했다. 주중에 모인 전도 새가족 모임에서도 비슷한 얘기들이 오고 갔다.

수 년간 홈레스를 섬기다가 만난 와일리라는 흑인은 섬기는 분들을 통해 은혜를 받고 매주 정성껏 헌금을 보내오고 있는데 이제는 밥도 안 먹으면서 토요일만 되면 찾아와 헌금을 전하고 가고 섬기는 분들과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 홈레스 사역을 하는 다른 분은 집 가까운 곳에서 대니라는 한 홈레스를 보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생겨 일주일에 한 번씩 밥을 해다 주고 사랑을 베푸는 가운데 그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기쁜 소식을 나누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목사인 나도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은혜가 되고 도전이 되었 다. 생명이 변화 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우리 코 앞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먼 곳만 바라보면서 무덤덤하게 있었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다. 영혼을 구원하는 역사는 분명 선교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선교지의 한 생명 만큼이나 이곳에서 건지는 한 영혼도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즉 우리도 다시 한 번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펴보자. 그리고 영혼을 섬기는 일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격려하자. 금년이 가기 전에 내 주위 에는 와일리와 데니가 없는지 다시 한 번 눈을 씻고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