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땅에서 취업의 치열한 경쟁에 목을 매느니 미국 직장을 찾아 건너온 김종윤은 미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스티브 김’이라는 미국 이름을 가지게 되는데 나중에 아시아의 빌 게이츠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첫 직장은 시간당 2불75센트로 하루 종일 일해 봐야 일당 2,3만원에도 못 미치는 박봉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미국을 건너왔나 하는 갈등도 들었지만 그러한 잡일에도 성실하게 일했습니다.결국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대학원 졸업 후에는 대기업 엔지니어로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신입연봉은2만 5천불로 우리 돈으로 약2,500만원. 그러나 20여 년 전의 일이므로 꽤 높은 연봉입니다. 반드시 대기업을 들어가겠다는 그의 꿈을 이루고 만 것입니다.

얼마 후 주변에서는 대기업에 들어간 것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으나 그는 그러한 안정적 대기업보다는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결심합니다. 인원은 비록 3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회사이지만 자신이 그 기업의 핵심엔지니어로서 활동하게 된 것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됩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연봉도 기존 대기업보다 높은 5만 불의 연봉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서서히 키워온 경영자로서의 꿈을 그리면서 5만불의 연봉을 포기하고 창업을 합니다. 첫 번째 기업이었던 파이버먹스는 광섬유를 통한 통신을 돕는 광케이블 사업으로 성공하여 창업 투자자에게 25배의 수익률을 남기며 ADC텔레콤에 자신의 기업을5,400만 불에 매각합니다.

그동안에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랜사업에 도전합니다. 컴퓨터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 사업으로 창업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처음의 창업 때보다 보다 적극적으로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사업을 시작합니다. 결국 3년 만에 나스닥 상장에 성공합니다. 사업 첫 해 300%의 성장을 일구며 지속적으로 고속성장을 해온 덕분에 초기 투자자에게 1백배의 수익을 안겨주며 프랑스 기업 알카텔에 2억불(2조원)에 기업을 매각할 수 있게 됩니다.

그에게서 몇가지 배울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성공할 기회가 부족했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스티브 김은 오히려 ‘가난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꼭 성공해야겠다는 의지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가난과 싸워 이겨본 사람은 그 과정에서 강한 정신력과 의지를 몸에 익히게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위기의식이 있다면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어떤 일에서든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어려운 환경을 타고나는 건 한 개인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환경을 어떻게 이겨내고 극복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단 한 푼의 유산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가난한 부모님으로부터 돈보다 훨씬 값진 것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스티브 김은 직장인 시절부터 책임감 있게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보다 더 많은 책임을 가질 수 있는 중소기업으로 이직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도 커졌지만 그는 그 책임감을 즐겼습니다. 경영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능한 인재도 좋아했지만 책임감 있는 인재를 더 좋아했습니다. 결국 책임감 있는 인재들이 자신의 몫을 다해낸다는 것을 오랜 사업 경험을 통해서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고객사와의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유능한 한 엔지니어에게 일요일 전화를 했다가 ‘주말에는 전화하지 말라’는 엔지니어의 태도에 큰 실망을 하고 직원과 결별한적도 있습니다. 책임감은 타고난 성품일 수도 있지만 노력을 통해서도 충분히 배양시킬 수 있다고 스티브는 말합니다. 어떤 일에서든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책임감이 습관처럼 몸에 배이게 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일즈를 천박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고 특히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일수록 그러한 마인드가 큽니다. 그러나 스티브 김은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성공 요인으로 ‘베스트 세일즈맨’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만일 자신이 대기업 R&D 파트에만 계속 있었다면 제조 파트나 영업, 마케팅을 경험할 기회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소기업으로 옮긴 후 엔지니어로서 뿐 아니라 영업 전담 사원들과 동행하며 영업 활동을 나가면서 자연스레 세일즈 기술과 마인드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회사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와 대우도 달라졌고 연봉도 두 배가 올랐지만 더 기쁜 것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뿌듯함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일즈 일선에서 익힌 세일즈 마인드는 그가 창업을 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공요인이 되었습니다.

GE의 잭 웰치는 “만약 한 가지만 남겨야 한다면 그것은 열정이다. 열정은 천재의 재능보다 낫다”라고 열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스티브 김은 좀 더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도전하고 싶어 계속해서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첫 창업때 그가 가진 돈은 1만 달러뿐이었지만 그는 동료들의 투자를 받아 10만 달러로 첫 사업을 시작합니다.

친구의 차고에서 시작한 작은 사업이었으나 초기 투자금의 25배의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시켜 매각합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좀 더 큰 기업을 일궈보고 싶다는 열정으로 자일랜을 창업하며 새로운 사업에 도전합니다. 이번에는 보다 국제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나스닥 상장에 성공합니다.

그는 항상 높은 목표를 세우고 열정을 다해 일에 매진해왔습니다. 덕분에 그가 경영자로 있던 60분기 연속 흑자를 실현합니다. 무려 15년 동안 흑자를 기록한 것입니다. LA타임스 캘리포니아주 최고 고속 성장기업상, 어니스트&영 선정 ‘올해의 최고 벤처기업인상’을 수상했습니다. 동양인으로는 드물게 미국 최고의 CEO로 인정받았고, 자수성가한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이처럼 열정과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열정과 도전의 과정은 숨 막혔지만 그 열매는 달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