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와 달리 미국에서는 구두를 닦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음식점 입구에서 구두를 닦고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내 아내가 "여보, 구두 좀 닦으세요."하는 말을 들었는지 그분이 우리를 쳐다보면서 "구두를 벗어놓고 가세요. 이 식당에 오신 분들은 다 공짜로 닦아 드립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공짜로 구두를 닦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아내가 "식사하고 나올 때 팁을 드리면 되지요."하면서 제 옆구리를 쿡 쳤습니다.


남자들은 구두가 반짝거리면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오랜만에 내 구두에 빛이 났습니다. 가죽이 부드러워서 내 재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렇게 광을 내본 적이 없던 구두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특별한 재주가 있는가. 봅니다. 내 구두뿐만이 아니라 이미 닦아놓은 구두들도 한결 같이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 날 오후 내내 식당 앞에서 구두를 닦던 그 분을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을까? 하루에 수입은 얼마나 될까? 구두 닦는 일을 천직처럼 생각하며 그렇게 정성스럽게 구두에 약을 바르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그곳에서 구두를 닦게 된 연유에 대하여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다음은 사실이 아닌 단순한 상상력의 작품입니다.


하루는 키가 왜소한 초로의 아저씨가 식당주인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사장님, 제가 이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들의 구두를 닦아드리면 안될까요?" 영문을 모르는 사장이 처음에는 거절했을 것입니다. "사장님,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손님들의 구두를 제가 공짜로 닦아드릴께요. 그러면 소문이 나서 더 많은 손님들이 이 식당을 찾아오실 겁니다." 여전히 계산이 서지 않고 믿음도 가지 않아 망설이는 사장에게 그 아저씨는 또 한 번 다짐을 줍니다.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식당에서는 한 푼도 받지 않을 겁니다. 그냥 식당 입구 옆의 공간만 사용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한 주간만 시험적으로 해보세요." 그렇게 해서 오늘처럼 구두 닦는 일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 식당이 가까운 곳에 있었더라면 나도 한두 번 더 찾아갔을 것입니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습니다. 식당주인은 더 많은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고, 손님들은 식사하는 동안에 깨끗한 구두를 돌려받을 수 있고, 그 아저씨는 자릿세를 내지 않고도 구두 닦는 일로 수입을 얻을 수 있고, 생각해보면 두루두루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성을 다하여 구두를 닦으시던 그 아저씨의 모습이 진지하다 못해 숭고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