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산이 처음으로 대기업으로부터 제대로 된 수주를 따냈을 때의 일입니다. 그 과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1973년 중동 전쟁이 발발하면서 원유 생산이 축소되어 원유 가격이 두배로 오르는 바람에 경제적인 충격이 엄청났고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면서 에너지 절감 운동이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소비자 물가지수가 20%이상 오르면서 세계적인 충격속에 경기 침체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전산이 창업한 시기는 이런 경제적인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오일쇼크’의 경제 침체기에 기업들을 상대로 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일쇼크를 하나의 기회로 보았습니다. 각 기업들이 에너지 효율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것을 포착한 것입니다. 다른 모터 전문 기업들이 신제품 개발보다 긴축과 매출유지 쪽으로 관심을 가질 때 일본전산은 대기업과의 정면 대결보다 어렵고 까다로운 기술 개발로 승부를 내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에너지 효율을 낮춘 모터의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름도 없는 회사 직원이 대기업 담당자를 만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렵사리 만나도 “이미 거래하고 있는 회사만 15개가 넘는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거래처를 줄이려고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 보는 회사의 모터라니 가당치도 않다.” 한결같이 실망스런 반응 뿐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말 한마디에 믿고 일을 맡길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대기업 담당자들에게 기존 거래처들이 못하겠다는 것, 어렵고 힘든 것 아무도 못하는 고민거리를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찾아와 문제를 해결해드리겠다는 나가모리 사장의 모습에 감동받은 담당자가 “지금 당장은 안되지만 거래를 원한다면 회사 소개 자료를 가져와봐라. 처음부터 거래 트기는 어렵다.” 회사 소개 자료를 준비하려고 해도 할 것이 없었습니다. ‘1973년 7월 창립,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 나이 28세’…, 이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런 자료를 보여주면 “아이고, 사장님이 우리 아들 뻘이네”라고 농을 던질 정도였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끈질지게 찾아가던 어느날 ‘그렇게 자신있으면 우리 회사 연구소를 가보라. 거기서 몇가지 일거리를 받아보라.’는 언질을 받았습니다.

연구소를 찾아간 나가모리 사장에게 담당자는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이 모터의 크기를 반으로 줄여 달라. 석달 안에 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당신 회사와 거래를 하겠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나가모리 사장은 대뜸 ‘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몰랐기 때문에 쉬워 보였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거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겁없는 이십대였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그 섣부른 대답이 일본전산의 정신이 되었다고 나가모리 사장은 회고합니다. ‘세상에 없는 것,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일’이 주는 매력은 묘한 것이었습니다. 당장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연구해 보면 풀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직원들은 물고 늘어지는 것에는 자신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힘든일만 가져온다고 불평하지 않고 머리를 맞대면 어떤 문제든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이 도전을 가능케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본전산은 처음으로 대기업으로부터 일을 받아 밤낮을 안가리고 3개월 동안 전직원이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몇달만에 해낼 일이 아니라는 것,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 기업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시험삼아 속는 셈 치고 맡겨 보자’는 심산으로 맡긴 것이었습니다.

열일을 제쳐두고 한 가지 프로젝트에 전원이 매달리다 보니 회사 운영도, 직원들 건강도 엉망이 되게 생겼습니다. 며칠동안 직원들의 의견을 모은 결과, ‘여기까지밖에 못하겠다’고 약속을 못지킨 것을 사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기업 담당자를 찾아간 나가모리 사장을 만난 담당자는 만나자마자 “나가모리 사장, 못하겠다고 찾아왔나? 어차피 자네들도 어려울거라고 생각했네. 규모가 있는 다른 회사들도 다들 ‘못하겠다’고 손을 들었어. 고생했네 다른 일거리나 찾아보게”라고 결론을 내리듯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가모리 사장은 마음을 바꿔 “무슨 말씀입니까, 별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담당자는 믿기는 커녕 기대도 안한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돌아온 나가모리 사장은 “어차피 우리만 남았다. 승산은 높아진 것이다. 한번 끝까지 해보자.” 여기서 물러서면 그렇고 그런 하청 업체로 전전하는 신세로 끝난다는 비장한 각오로 두배 이상 시간을 투자하면서 몰입했지만 당초 약속대로 절반 수준으로 만들지는 못하고 18% 정도 낮추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경과 보고와 함께 시제품과 자료를 전달했습니다. 하루가 지났을까? 그 대기업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담당자는 ‘설마 크기를 줄일수 있을까 기대도 안했는데, 3개월만에 18% 축소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놀랐습니다.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의뢰했고 그나마도 일본전산만이 최후까지 남아 기록적인 성공을 이뤘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발주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일본전산이 대기업과의 첫 거래였으며, 상당히 규모있는 기업들을 물리치고 따낸 대단한 결과였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전산 조직 전체에 엄청난 자신감을 불어넣는 기폭제가 되었고 ‘불가능이라는 것은 핑계’라는 문화가 자리잡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설비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새파란 젊은이 네명이 모여 만든 소기업이 내노라 하는 큰 기업들을 물리치고 하루 아침에 혜성처럼 등장하게된것은, 불가능을 모르고 도전한 배짱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