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30일 오전 이른 시간 새벽강단 취재를 위해 찾은 한길교회(노진준 목사)다. 이 교회는 지난해 LA 소재 헤브론교회와 세계로교회가 통합하기로 결의하고 12월 5일 통합 예배를 드리고 새롭게 시작된 이래, 아름다운 통합의 새 모델을 보여주고자 몸부림치고 있다. 변화된 영혼을 통해 변화된 세상,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득찬 세상을 꿈꾸는 노진준 목사는 이날 새벽강단에서 고린도후서 2장 12절부터 17장을 본문으로 '그리스도의 냄새'라는 제하에 설교를 하면서, "교인의 냄새가 아닌,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성도들이 되자"고 권면했다. 다음은 노 목사의 설교 요약.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기록할 당시의 정황이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기독교가 너무 허황하고 바울의 선교로 인해 당시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의 생업에 지장을 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 의한 폭동이 일어나 결국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게 되는데, 떠나기 전에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로 가서 거기서 디도를 만나 지난번 편지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반응을 듣기를 원했으나, 디도는 기대한 시간에 오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염려 때문에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을 것입니다.(13절) 마음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바울이 드로아에 있을 때 결국 복음의 문이 열리긴 했지만, 끝내 디도를 만나지 못하여 드로아에서 더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마게도니아로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혹자는 복음의 문이 열려서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렇게 빨리 떠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여러분의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자녀 중에 한 명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주님의 사역에 더 헌신해야겠다 하면서도 당연히 마음이 그쪽으로 쓰이게 되고 신경이 쓰이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사역에 헌신할 수 있도록 좋은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고, 평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면서 1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냄새이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구원으로 이르게 하는 생명의 냄새가 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납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만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내게서 나는 냄새가 과연 그리스도의 냄새인가, 아니면 교인의 냄새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도 목사로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내게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고 있는가, 그렇지 않고 그저 '목사 냄새', '교회 냄새'만 풍기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설교 시간 외에는 일체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법도 없고, 교회와 관련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주에 대한 사랑과 복음의 역사와 은혜가 우리에게 어떻게 임했는지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맡을 수 있는 건 '교회 냄새' 일 것입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냄새라는 것이 '교회 냄새' '목사 장로 냄새'와 섞여서라도 좀 나면 좋겠는데, 아예 그리스도의 냄새는 안 나고 그냥 목사 냄새, 장로 냄새, 교인 냄새가 난다면... 그건 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심각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 냄새를 맡고 너무 지나친 교회 냄새를 역겨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냄새를 역겨워하는 게 아니라 교회에서 나는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비지니스에서 나는 냄새를 역겨워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나는 냄새들이 세상 기관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이제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을 위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했다면, 그 냄새가 뿜어져 나와야 합니다. 냄새라는 것은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베어나오는 것이 향기입니다. 냄새라는 것은 없애려고 해도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오기 마련입니다.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냄새가 난다면, 전 교인과 장로 목사가 그리스도의 냄새를 뿜어낸다면, 그 교회는 그리스도를 존귀케하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7절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이 구절을 볼 때 2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설교자들이 보통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런 식의 이해는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라고 하는 것은 설교자로서의 권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서, 설교자로서의 권위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했다면, 교인들은 목사가 전하는 말씀에 대해 의의를 제기하거나 부당하게 생각하게 생각하거나, 또는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졸거나 하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욕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적어도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 처럼 말한다"고 하는 것은 청중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이가 하나님의 말씀처럼 조심하고 신중하게 다루어서 전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의 말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말이 아니라,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만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사는 그 권위를 어떻게 세울 수 있겠습니까.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가 되도록 하는 권위는 말씀에서 오는 것이지 직분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권위도 없게 됩니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징계 받는다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전권을 그 대언자에게 주신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것으로 생각해서 순전한 것으로 전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목사나 교인들이나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놓고 깊이 고민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말씀 앞에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진지하고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진지하게 그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그 말씀에 우리의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말씀 중심이라 하면서도 그 말씀에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인지라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다면서 합리화 시키는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말씀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말씀에 대한 진지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말고 그 말씀 앞에 진실되고 성실하게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인 줄 알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