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이들은 분쟁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위하고 정의를 위한다는 이유로 분쟁을 일으킵니다. 잘 믿는다는 이유와 정당성을 핑계로 분쟁을 일으킵니다. 어떤 때에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선동해서 예배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태클을 겁니다. 이들에게는 책임은 없고 오직 권리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일에 헌신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쟁을 일으키지 아니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뒷전에서 팔짱만 끼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여러분 이단들은 그런 사람들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찾아냅니다. 이단이라 하면 한자어로 다를 이(異) 끝단(端)이라 하여, 처음은 같은데 끝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처음은 비슷한데 종국에 가서는 지옥으로 가는 게 이단입니다. 이들은 구원에 확신이 없거나 예수를 적당히 믿는 사람들을 귀신같이 찾아가서 선동하기 시작합니다.‘교회가 당신에게 너무 심하지 않느냐’,‘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없지 않느냐, 아무리 교회에 다녀 보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 않느냐’라고 선동합니다. 혹시 마음에 불평이 있는 분들은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불평과 원망의 마음이 들 때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은 마귀의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평이 변하여 감사가 되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마귀는 불평만 쫓아다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단들의 구호는 ‘교회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하나님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렇게 멋있는 말을 하면서 불평을 합니다.‘우리 교회에 오면 병을 고칠 수 있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우리 교회에서는 진짜 회개를 가르친다’라고 선동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섭섭하고 불평하고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에 넘어가게 됩니다. 결국 그들의 목표는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게 하고 분쟁을 만드는 것입니다.

셋째, 이들은 의도적으로 거치게 하는 자들입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는 척하다가 나중에 본색이 드러나면 정면으로 교회가 하는 일을 반대하고 나섭니다. 교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하나님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 정면으로 부딪히기 시작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뻔뻔해지기까지 합니다. 거짓말을 쉽게 합니다. 아부도 간단하게 합니다. 그들은 수단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교회를 힘들게 하고 성도들의 영혼을 약탈해 갈 때 두 가지 고민을 합니다. 17절 마지막부분을 보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하게 하는 자를 가리켜 ‘살피고 떠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기꾼들은 말을 잘합니다. 일확천금을 얻어주겠다는 사람은 절대로 믿지 마십시오. 그들은 말을 잘 합니다. 재치가 있고 사람들을 잘 웃깁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지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희생당하는 사람은 순진한 자들입니다. 사기꾼들은 상대방이 자기의 말을 믿는 것 같지 않으면 당장 떠나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붙들고 있는 이유는 가능성이 있는 바로 순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순진한 사람의 문제는 이단에 쉽게 빠진다는 것과 이단에 빠지고 나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단에 들어갔다가 눈물 흘리고 정신병에 걸리고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러한 미혹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잘 지켜야 합니다. 절 마지막 부분에서 17 이런 자들을 살피고 떠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값싼 동정심에 이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까이 해야 할 사람과 멀리 해야 할 사람을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자 19절을 보십시오.“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이 세상은 우는 사자가 먹을 것을 삼키려 하듯이 성도들을 집어 삼키려 합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지만 세상에서 사는 동안 악한 세속적 구조와 육신의 정욕과 사단을 행해서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주일날 관공서에서 시행하는 시험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 키우다 보면 태권도 승단시험이다. 수영 시합이다 야구시합이다 등등으로 주일을 지키기 힘들게 만듭니다. 어떤 때는 졸업식을 주일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목사님은 아들 졸업식에도 못 갔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회의 구조적 풍조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방해하는 세력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성도들은 주일날 시험을 보러 가야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갈등합니다. 자녀들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의 활동이 장애를 받으면 부모에게 원망을 가집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부모로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예수 믿기 좋은 세계로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데는 미련 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로마정부에 비하면 얼마나 괜찮은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로마정부에서 예수 믿는 것과 노예의 신분으로 예수를 믿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방인으로 예수 믿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우리가 현재 힘들어하는 것은 그들에 비하면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고통과 고문과 처형과 사자 이빨 속에서도, 화형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것입니다. 역사에 의하면 당시 로마의 유명인사 가운데 기독교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인으로 발각이 되어서 남편은 사형을 당하고 아내는 섬에 유배되어서 굴속에서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로마의 집정관- 폴라비오 클레멘이요. 아내는 베스파시안 황제의 손녀요 당시 황제 도키티아누스의 조카인 도마틸라 라고 합니다. 이들의 두 아들은 도미티아누스의 대를 이어 황제가 되기로 내정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를 믿고 순교를 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그런 자리를 버리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 궁금하지요?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배경에는 바로 자기 집에 종이었던 네레오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그는 로마 귀족이 이 가정에서 종으로 지내면서 주인을 전도한 것입니다. 이 이름 없이 자신의 사명을 다한 네레오를 바울은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15절)

저마다 자신의 서야할 위치를 잘 지킨 성도는 결코 주님이 잊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이 험난한 세대에서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의 권면입니다. 세상에서 살 때 지혜롭게 살지 않으면 우리가 살기에 세상은 너무 어려운 곳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20절을 보십시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타협하지 마시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나아 가시기 바랍니다. 악한 자들이 승리하는 것 같고 사기꾼들이 잘 사는 것 같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여러분은 승리합니다. 승자는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자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단을 우리의 발밑에 놓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나를 신뢰하라’ ‘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정부도 이겼습니다. 복음은 타락한 카톨릭의 권세에서 개혁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어떤 악한 세력도 복음은 물리칩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21절과 22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다시 자신의 동역자를 소개합니다. 디모데와 친척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편지를 대필해 주었던 더디오, 주방장을 맡았던 가이오, 재무를 맡았던 에라스도나 형제 구아도에게 문안을 전해 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의 마지막 복음으로 돌아옵니다. 25부터 27절을 보십시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는 타나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게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도 바울을 사도 바울 되게 한 것은 복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생애를 뒤바꾼 것도, 로마서를 쓰게 한 것도 복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25절에서 ‘나의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를 목사를 만들고, 이 자리에 있게 하고 주를 위하여 살게 한 것도 ‘복음’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것이 복음인 줄로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이라는 말을 7번 했습니다. 복음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의 시작이 복음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바로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이며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입니다. 복음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복음 때문에 완전히 그의 삶을 희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16절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복음은 구원의 능력을 주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복음에 사로잡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위해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존재하는 교회요, 말씀을 전하는 부족한 종도 복음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고, 여러분들도 다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존재하는 사람일뿐입니다. ‘

26절을 보면 첫째 복음은 영원 전부터 있었던 것이며 그것은 하나의 비밀이었고 감춰졌던 것인데 이 복음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계시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이 복음을 말하게 했고 이방인들로 믿어 순종케 하는 구원의 역사를 만든 것이 복음이었다는 것입니다.

26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 복음은 우리를 견고케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며 능력 있고 지혜롭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저주받은 자를 축복의 자녀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복음을 모두 여러분 것으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을 가진 사람은 견고케 됩니다.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영원 전부터 있었으나 이제는 복음은 나타났고 복음 안에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은 이 복음을 자랑합니다. 복음의 찬미가 27절에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끝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와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삶이 계속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저 자신이 많은 은혜를 체험 하였고, 모든 강의가 마치게 되면서 제가 깨닫게 된 것은 이 엄청난 말씀을 설교하기엔 제 능력이 부족하고나 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강해를 애독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