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다며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에 이은 원전폭발 등에 대해 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일본은 분명히 죄악을 범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800만이 넘는 신들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것이 우리가 일본을 미워해도 된다는 성경적인 근거가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돈이 우상이 아니었습니까? 명예가 우상 아니었습니까? 우리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우상이 아니었으며, 좋은 직업 또는 더 나은 살림살이와 더 나은 아파트 더 좋은 승용차가 우상 아니었습니까? 아니 더 예쁘고 건강한 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를 정죄할 만큼 거룩하고 의로운가요? 간음한 여인을 끌고 사람들을 향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그 여인을 향해 나도 정죄하지 않을 것이니 가서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하시며 보내셨습니다.

저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회심한 후에도 여전히 일본을 미워했었습니다. 친 할아버지가 일본인들에게 매 맞아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 일본을 미워하는 이유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인 아리가 목사님이 1995년 95세계선교대회(GCOWE95)에서 공개적으로 저에게 사죄하였습니다. 그 날에 저는 용서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괴로워 몸을 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내가 용서한 일본인을 너는 용서할 수 없느냐?‘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일본인을 사랑할 수 없느냐?”고 재차 물으셨습니다. 일본인 전체를 말씀하시거나 일본을 말씀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상이 그 땅에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별된 성도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일본인들을 싸잡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죄악은 엄연한 죄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말씀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이나 불신자들도 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에게 그런 수준을 뛰어넘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적어도 그 땅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교회가 있고 목회자가 있으며 성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아들을 기꺼이 못 박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하나님의 보좌에 앉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우리를 향해 크리스챤이라고 부르는 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따른다’ 혹은 ‘닮았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을 따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북한도 그런 각도에서 선교를 감당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담요 한 장이라도 상처받은 일본의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에게 보내야 하고, 이들의 필요를 위해 무엇이든지 해야만 합니다. 사실은 그들이 예수쟁이가 아니더라도 용서하고 축복하고 도와야 한다고 믿습니다. 뛰어가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가야 합니다. 저는 오래 전에 일본교회로부터 4월 8일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일본에 갈 때 성도들에게 얼마만이라도 필요한 헌금을 하고 돌아오고자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행할 바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기회가 되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원수를 사랑하는 데까지 자라나는 기회가 되기 위해서, 일본에 머무는 한인 선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범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