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여러 인권 침해사례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으나 20세기, 인권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파키스탄의 여성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남성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그들의 단 한가지 희망은 시집을 가는 것이다. 결혼에 의해 그들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파키스탄은 “여성은 있지만 여성의 얼굴은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여성으로써의 삶이 힘들다.
시어머니의 학대로 분신을 기도한 여성. 이웃 남자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후 분신을 기도한 여성 등. 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높일 마지막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에서는 하루에 한명 분신 기도를 하며 그 중 80%가 사망한다고 한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의 중심에는 70여명의 여성들이 갇혀있는 여성교도소가 있다. 그 곳엔 집이 싫어 도망온 여성, 남편의 신고로 구속된 여성, 남편에게 납치되어 다른 곳으로 팔려간 여성들이 살고 있다. 감옥에 갇혀있지만 자유로운 그들, 그들에게 감옥은 지옥같은 세상에서의 피난처이다.
인도의 경우, 탈레반 정권의 붕괴이후에도 카스트제도가 여전히 지배적인 제도로 남아있다. 계급이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나누어져있으며 한번 천민으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천민으로 살아야하는 그들.
이와 같이 아랍 여러 지역 사회적 약자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이 계속되고있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에는 십자가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힌두, 이슬람의 지배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특히 이슬람 문화의 여성은 사람이라 볼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인권이 완전히 묵살된 나라, 오히려 감옥을 택할 만큼 끔찍한 그 곳에서 신음하는 여성들과 사회적 약자들.
그들은 이대로 운명에 갇혀 살아갈 수 밖에 없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기독교는 기본적 인간존중사상을 가지고 있다. 인간안에는 모두 하나님 형상이 있으며 우리는 그 형상으로 인해 함부로 다른 이를 해할 수 없다. 서로 사랑하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진리에는 모순이 없으며, 사람들의 공감을 낳는 법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가 나의 구원만을 위한 것처럼 보일 지 모르나 사실 알고 보면,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인종과 종교가 서로 다를 지라도 그들은 나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어둠속에 있는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다름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들을 품고 나아가는 마음일 것이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빛을 알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그들을 하루 라도 빨리 구원키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미움이 아닌 사랑이며,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시각으로 넓은 포용력을 가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자리에서 더욱 담대하게 빛되신 주님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 큰 믿음의 확신과 포용력을 가진다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파키스탄의 여성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남성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그들의 단 한가지 희망은 시집을 가는 것이다. 결혼에 의해 그들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파키스탄은 “여성은 있지만 여성의 얼굴은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여성으로써의 삶이 힘들다.
시어머니의 학대로 분신을 기도한 여성. 이웃 남자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후 분신을 기도한 여성 등. 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높일 마지막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에서는 하루에 한명 분신 기도를 하며 그 중 80%가 사망한다고 한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의 중심에는 70여명의 여성들이 갇혀있는 여성교도소가 있다. 그 곳엔 집이 싫어 도망온 여성, 남편의 신고로 구속된 여성, 남편에게 납치되어 다른 곳으로 팔려간 여성들이 살고 있다. 감옥에 갇혀있지만 자유로운 그들, 그들에게 감옥은 지옥같은 세상에서의 피난처이다.
인도의 경우, 탈레반 정권의 붕괴이후에도 카스트제도가 여전히 지배적인 제도로 남아있다. 계급이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나누어져있으며 한번 천민으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천민으로 살아야하는 그들.
이와 같이 아랍 여러 지역 사회적 약자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이 계속되고있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에는 십자가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힌두, 이슬람의 지배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특히 이슬람 문화의 여성은 사람이라 볼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인권이 완전히 묵살된 나라, 오히려 감옥을 택할 만큼 끔찍한 그 곳에서 신음하는 여성들과 사회적 약자들.
그들은 이대로 운명에 갇혀 살아갈 수 밖에 없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기독교는 기본적 인간존중사상을 가지고 있다. 인간안에는 모두 하나님 형상이 있으며 우리는 그 형상으로 인해 함부로 다른 이를 해할 수 없다. 서로 사랑하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진리에는 모순이 없으며, 사람들의 공감을 낳는 법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가 나의 구원만을 위한 것처럼 보일 지 모르나 사실 알고 보면,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인종과 종교가 서로 다를 지라도 그들은 나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어둠속에 있는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다름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들을 품고 나아가는 마음일 것이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빛을 알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그들을 하루 라도 빨리 구원키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미움이 아닌 사랑이며,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시각으로 넓은 포용력을 가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자리에서 더욱 담대하게 빛되신 주님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 큰 믿음의 확신과 포용력을 가진다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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