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꿈에도 그리던 남한 땅을 밟은 탈북자 주경배(43) 씨는 이제 어엿한 방송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매주 두 번, 극동방송 스튜디오에 나와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녹음한다. 매일 새벽 3시부터 1시간 동안 방송되는 이 방송은 작년 4월부터 시작돼 청취자들의 인기 방송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북한 동포들을 주 청취자로 삼고 있지만, 그들의 청취율은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지난 10년 이상 북한 땅에서 새벽마다 극동방송을 몰래 들었던 주경배 씨 자신의 경험으로만 추측할 뿐이다.

“저는 확신합니다. 많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제 방송을 듣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방송은 저에게 고향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되고, 고향 사람들에게는 남한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지요. 수렁에 빠진 내 동포에게 자유와 생명을 전할 수 있다는 것보다 귀중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지 산골에서 방송 들어

▲매주 <두고온 고향을 그리며>를 진행하는 주경배 씨(오른쪽)와 윤재희 PD

주 씨가 남한방송을 처음 들은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북한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열여섯 살 무렵이었다. 우연히 전기설비일을 하는 친구 집에 갔다가 때마침 라디오를 수리하는 것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던 중 남한방송을 듣게 됐다. 당시의 놀라움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반동 방송’을 듣는 것 자체가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더 컸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주 씨의 관심은 남한방송 청취에 쏠리게 되었다. 난세에 살아남기 위한 아버지의 권유이기도 했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함경북도 오지 산골에 근무하기를 자원한 것도 비교적 자유로운 방송 청취를 염두에 둔 일이었다. 당시 제법 큰 돈을 들여 중국에서 들여온 고급라디오를 한 대 구입하면서 그는 상부의 제약을 받지 않고 남한방송을 새벽마다 청취할 수 있었다.

그 때 주로 듣게 된 방송이 바로 극동방송 프로그램이었다. 그 방송은 선명하게 들려올 뿐 아니라 내용이 감동적이어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가장 감명깊게 들은 방송은 새벽을 여는 기도가 담긴 ‘새벽을 깨우며’라는 프로였다. 찬송의 잔잔한 음률이 가슴을 파고들었고 기도의 염원이 가슴에 다가왔다. 목사님들의 설교도 인상적이었다. 또 민족을 이끌고 광야로 나간 모세와 여호수아 이야기는 특히 감동적이었으며, 주씨 가슴에 북한 동포를 이끌어내어 살려야 한다는 비전을 안겼다.

이처럼 매일 방송을 들으며 주 씨는 서울의 극동방송을 방문하는 것이 평생 소원이 됐다.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성전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꿈꾸는 것 같았던 방송국 방문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0년 4월 초, 주 씨는 마침내 극동방송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는 시편 126편 1절의 말씀대로 그는 정말 꿈꾸는 것 같았다. 당시 탈북길에 있던 아내와 둘째 딸과 막내아들의 생사를 몰라 애타하던 때, 주 씨에게 도움을 준 탈북 프리랜서 방송기자인 김명성 씨 소개로 극동방송을 찾게 된 것이다. 마침 극동방송은 프로그램 개편을 하고 있어 새로운 탈북자 출신의 진행자를 찾고 있었다. 주 씨는 그 과정에서 프로그램의 책임을 맡은 윤재희 PD에 의해 발탁돼 일약 방송 MC로 데뷔했다.

주경배 씨는 극동방송에 첫 발을 디디며 “아, 내가 마침내 반동의 소굴에 들어왔구나” 하는 감회를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방송국 로비에 진열된 라디오 수신기들을 보며 가슴이 쿵쾅거리는 흥분을 더욱 감추지 못했다. ‘북한으로 들여보내는 이 라디오를 통해 북한 동포들이 자유의 소리를 듣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극동방송국은 그에게는 마치 고향과 같았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한없이 편안했다고 한다.

첫날 방송 테스트를 겸하여 주 씨는 아무 준비 없이 윤재희 PD와 대담을 가졌다. 두려움도 떨림도 없었다. 마치 친정집에 다니러 온 새색시같이 차분하게 방송을 마쳤다. 북한을 탈출하게 된 이야기와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난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보름쯤 지나 방송 일을 잊을 무렵 방송국에서 새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것이 바로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라는 프로였다.

북한은 지금 무너지고 있어

▲북한으로 전파를 보내는 극동방승의 안테나를 바라보고 있는 주경배 씨(오른쪽).

매주 7일간 꼬박 윤재희 PD와 함께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성경 이야기, 국내외 정세 소개, 남한 문화 알아가기, 탈북자의 남한 정착 이야기, 주말 드라마, 찬송교실’ 등으로 편성됐다. 그런데 새벽 3시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남한 청취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무엇보다 북한 사람이 북한 말투로 진행하는 것이 색다르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낯설고 이상하기만 한 북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지고, 구수하고 순수한 말투가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청취자 전화도 온다. 지난달 극동방송 창립기념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참석한 주경배 씨에 대해 세미나 참석자들이 방송을 잘 듣고 있다는 인사를 계속 하기도 했다. 기독교 방송계에서 주경배 씨는 더 이상 나약한 탈북자가 아니라 이제 남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리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로 인해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그래서인지 주 씨는 끊지 못해 고민이 많았던 담배도 벌써 몇 달째 끊었다고 털어놓는다. “혹시라도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자신을 청취자들이 발견한다면 무어라 변명하겠는가?” 라며 손사래를 쳤다. 더구나 그는 세계로교회(서승원 목사)의 집사이기도 하다.

그는 방송을 진행하면서 많은 은혜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방송 과정에서 만나는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인해 눈물을 감출 수 없고, 그럴 때마다 윤재희 PD는 성령이 임한 증거라며 격려하곤 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개인적으로 방송 진행 자체가 은혜로운 신앙생활이라 고백한다.

손과마음의 선교사역도 맡아

북한에서 방송을 통해 자유의 빛을 발견하고 또 은혜의 빛을 누려온 그에게는 남다른 포부가 있다.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집중 조명하여 알려주는 것과 북한 사람들에게 자유와 생명의 소식을 더 많이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북한 동포를 위한 방송 프로그램이 더 넓게 확장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지금 북한 내부는 무너지고 있어요. 겉으로는 미사일도 쏘고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도 공격하지만 다 공갈에 불과합니다. 속으로는 다 썩어 무너지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김정일과 김정은으로부터 떠나고 있어요. 이제 하나님의 때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북한 동포를 응원하는 남한 동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주경배 씨는 아내와 두 딸, 그리고 막내아들까지 모두 다섯 가족이 무사히 남한에 들어와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현재 방송진행과 함께 ‘손과마음선교회’의 사업담당자로 북한선교 사역에 봉사하고 있다. 다른 탈북자들처럼 탈북 과정에서 겪었던 온갖 고통스런 일들을 잊을 수 없지만, 그는 이제 모두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꿈과 비전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그는 북한 땅에서 북한 동포들과 함께 세워갈 새 나라, 새 세상의 일들을 남몰래 꿈꾸고 있다. 그것이 그가 남한에서 살아가는 의미이며 기쁨이다.

/손과마음선교회 제공